거스를 수 없는 '제로금리'...금융그룹 사업계획 '골머리'
입력 2019.10.22 07:00|수정 2019.10.24 14:43
    사상 최저 1.0% 기준금리 눈 앞...제로금리 현실화
    NIM 3년만에 다시 하락세...이자 수익 추구 어려워
    DLS 사태로 상품 판매 드라이브도 '일단 멈춤'
    글로벌이 답? 리스크 관리 역량은 아직 부족해
    • 경기 침체 여파로 전인미답의 국내 '제로금리'가 가시권에 들어오며, 주요 금융그룹들이 사업계획을 세우는 데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자 수익을 늘리기 어려운 상황에서 파생결합상품(DLS) 사태로 인해 '상품 판매'로 대표되는 비이자 수익에 드라이브를 걸기도 힘든 까닭이다.

      결국 글로벌 외에는 마땅한 선택지가 없지만, 최근 호주 부동산 등 일부 사례가 보여줬듯 리스크 관리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 부담이다. 내년에는 수년만의 '역성장'을 대비할 필요도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재 국내 기준금리는 1.25%로 1년 11개월만에 다시 역사적 최저점 수준으로 돌아왔다. 보수적인 자세를 유지하며 2017년 이후 두 차례 천천히 기준금리를 올렸던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다시 이전 수준으로 금리를 되돌리는 덴 불과 3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기준금리는 앞으로 최소 한 차례 이상 하향 조정될 것으로 금융권에서는 전망하고 있다. 빠르게는 내년 1분기, 경기를 우호적으로 봐도 내년 하반기에는 사상 처음 기준금리 1.00% 시대가 열릴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이 경우 시장 금리는 한 차례 더 요동칠 수밖에 없다.

      정부마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4%에서 2.0%로 수정하는 암울한 경제 상황이 배경으로 꼽힌다. 18일 기준 국고채 20년물 금리는 1.563%로 10년물 1.586%보다 2.3bp(0.023%포인트) 낮았다. 이런 금리 역전 현상은 채권투자자들이 향후 국내 경기를 부정적으로 본다는 지표 중 하나로 꼽힌다.

      인구 구조, 잠재성장률을 볼 때 국내에도 제로금리가 머지 않았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KB증권에 따르면 정책금리(기준금리)가 1% 미만인 제로금리 국가의 경제 요인별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 금리와 가장 상관관계가 높은 변수는 고령화율로 나타났다. 고령화율이 잠재성장률을 낮추고, 낮아진 성장률이 시장금리를 끌어내린다는 것이다.

    • 한국은 2000년에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고, 2025년 65세 이상 고령 인구 비중이 20%를 넘어가는 초고령 사회가 될 전망이다. 이에 근거해 KB증권은 2023년 국고채 10년물 금리가 0%대에 진입하는 '제로금리' 사회가 시작할 것으로 내다봤다.

      시장 금리가 뚝 떨어지면 은행 및 은행 주력 금융지주사들이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 실제로 은행의 핵심 수익 지표인 순이자마진(NIM)은 시장 금리 주요 지표 중 하나인 국고채 10년물 금리와 비슷한 추세로 움직이고 있다.

      올 상반기 국내은행 평균 NIM은 1.61%로 3년 만에 하락 반전했다. 이자 이익 규모는 소폭 늘었지만, 이는 자산의 성장에 따른 것이다. 경기 침체가 본격화하며 자산 성장세까지 꺾이면 곧바로 수익이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최근 국내 주요 시장금리가 일제히 회복세를 보이긴 했지만, 당장 지난 8월만 해도 국고채 3년물 금리가 사상 처음으로 1.09%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주요 증권사 리서치센터는 올 3분기 국내 은행 평균 NIM을 1.55%안팎으로 예상하고 있다. 2016년 기록한 사상 최저치 수준이다.

      4분기 NIM이 반짝 반등한다고 해도, 내년엔 더 어려운 환경이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최근 금융지주사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된 고민이다. 경기 전망을 내년 사업 계획에 반영해야 하는데, 외부 지표만 보면 이익 성장은커녕 현상 유지도 버거울 수 있다는 것이다.

    • 한 금융지주 전략 담당 임원은 "안팎으로 녹록지 않지만 인수합병(M&A) 등 비유기적성장(Inorganic growth)까지 폭 넓게 고려해 사업 계획을 세우고 있다"며 "이자 수익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인 은행 영업 부문의 성장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2~3년간 은행 및 은행지주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해온 비이자·수수료 부문도 내년엔 공격적으로 계획을 세우기 어렵다는 평가다. DLS 사태 이후 사고에 연루된 은행은 물론, 주요 대형금융회사에 대한 전반적인 시장 신뢰가 떨어지며 일선 지점에 영업을 압박하기 어려운 상황이 된 까닭이다.

      실제로 은행 상품 판매 수수료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는 파생상품(ELS, DLS)의 10월 발행 규모는 20일까지 4조3000억여원에 그쳤다. 올해 4월 월 발행 규모가 13조원까지 늘었던 점을 감안하면 확연한 감소세다. 반면 2년 이하 만기 예적금 규모는 1130조원을 돌파하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결국 남는 건 글로벌 확장 정도다. KB금융그룹은 최근 미국 스티펠 파이낸셜과 전략적 제휴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고, 신한금융그룹은 글로벌 사모펀드 KKR과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하나금융그룹은 올 상반기 베트남 국책은행에 1조원을 투자했고, 올해 말부터 중국 관련 상품 라인업을 강화할 계획이다.

      마침 금융위원회에서 자기자본 3조원 이상 증권사인 종합금융투자사업자에게 해외 법인 대출 규제를 완화해주기로 하며 은행은 물론 증권 등 그룹 차원에서의 해외 진출이 좀 더 쉬워졌다.

      문제는 수익을 쫓다 더 감당하기 어려운 손실이 불거질 수 있다는 점이다. 해외에 공격적으로 진출하기에는 아직 국내 금융사들의 리스크 관리 역량이 충분치 못하다는 것이다. 호주 부동산 투자, 독일 헤리티지재단 DLS, 미국 뉴욕 20타임스스퀘어 등 국내 자금 수천억원이 투자됐다가 손실을 눈 앞에 둔 투자 프로젝트가 올해에만 한두 건이 아니다.

      한 금융그룹 계열 증권사 리스크 관리 담당자는 "내년엔 그룹 차원에서의 글로벌 진출이 더 늘어날 것 같은데 어느 선까지 리스크를 감당할 수 있을지 고민"이라며 "수익이 줄어드는 역성장을 감내하더라도 큰 사고가 터지지 않게 보수적으로 관리할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