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판매 이슈로 KPI 도마위…금융사, 개선책 내놔도 한계
입력 2019.10.24 07:00|수정 2019.10.25 09:31
    5년전 KPI 고객수익률 항목 신설
    금융혁명이라더니 리스크 되레 키워
    금융감독원, 일부 은행의 KPI 공개
    DLS 상품 불완전판매 조장 드러나
    상품 리콜제 등 은행사 대책 '한계'
    CEO 제재 조치·취급 상품 제한 등
    지주체제 문제…회장도 나서야
    • 지난 2014년 자칭 '금융 혁명'이 일어났다. 신한금융을 필두로 국내 금융사들이 너도나도 '핵심성과지표'(KPI)에 고객수익률 항목을 신설하며 '혁명급 변화'라고 자화자찬했다. 중량급 경영자들이 미디어 앞에 나서서 '우리 고객', '고객 행복 그 하나를 위해'라며 너도나도 '고객 만족'을 외쳤다.

      5년이 지난 지금, 이 혁명이 오히려 금융사 리스크 관리에 큰 구멍을 냈음이 드러났다. KPI의 고객수익률 항목은 중수익 고위험의 파생상품을 고령의 고객들에게 팔아치우는 주요 원인이 됐다. '영업비밀'인 KPI가 금융당국 보도자료에 가감없이 공개되고, 불완전판매가 국민적 이슈로 부각하며 은행장들이 직접 나서 대국민 담화 발표하듯 KPI 손질을 공언하고 있다.

      시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본질은 회피하고, 지속 불가능한 공약(空約)이라는 것이다. 무너진 신뢰의 틈을 타 정부와 정치권은 금융회사로 쏠린 '무게추'를 되돌리려 하고 있다. 자유시장경제 체제에서 상상하기도 힘든 'KPI 공시 제도'까지 언급되는 상황이다. 정치 도구화된 'KPI 시스템'이결국 금융시장의 전반적인 신뢰를 한 단계 더 후퇴시킬 거라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 1일 금융감독원이 파생결합상품(DLS) 불완전판매 중간 조사 결과를 내놓자 금융시장은 술렁였다. 이니셜로 처리하긴 했지만, 주요 은행의 일부 KPI 지표가 가감없이 공개된 까닭이다.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이 금융상품 판매만 독촉하고, '소비자 보호' 항목엔 오히려 감점을 부여했다는 사실이 눈으로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회사가 나서서 불완전판매를 조장한 것과 다름 없다는 증거가 나온 것이다.

      두 은행이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의 조정 결과를 이의 없이 받아들이겠다고  선언하고, KPI 개선안을 내놓겠다는 약속을 내놓으며 비난 여론에 납작 엎드린 데엔 이런 배경이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들이 내놓은 개선책 중엔  '투자상품 리콜제'까지 담겨있다. 리콜제는 상품판매 이후 불완전판매가 드러날 경우 투자원금을 보장하는 제도로, 전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극약처방처럼 내놓은 이들 은행의 KPI 개선책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단순히 KPI만 손본다고 해서 이런 문제가 없어졌다면 2014년 이후 이런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는 분석이 많다.

      해당사태에 얽힌 은행들이 수습책이라고 내놓는 수준의 KPI 개선은 이미 금융권에서 확산되는 분위기다. 정영채 NH투자증권 사장은 업계 최초로 올해부터 영업직원 평가 때 수수료 수익 등 실적 중심 지표를 모두 배제하는 새로운 평가지표를 제시했다. 고객과 소통하는 횟수 등 고객 만족 지표로만 영업점의 성과를 평가하는 방식이다. 신한금융투자는 KPI내 고객관련 항목 비중을 50%까지 늘리기로 했다. 재무재표 비중을 줄이는 대신 고객중심 가치 평가체계를 만들겠다는 취지다.

      정치권에선 이보다더 급진적인 방안을 요구한다. 여당 내에선  KPI ‘공시’를 통해 투자자 지향적인 KPI를 채택한 금융회사를 적극 알리자고 주장도 나온다. 금감원을 중심으로 KPI 기본 운영원칙을 정하고 이에 부합하는 금융회사 모범사례를 배포하며, KPI 중 투자자 이익에 긱결된 부분에 한하여 공시하자는 주장이다. 금융권에서 영업기밀사항을 공시하는 것이라 반발하지만 그만큼 정치권에서 느끼는 이번 사태의 심각성이 크다.

      당장은 금융회사들이 이런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여론은 금융회사들에게서 등을 돌렸다. 불과 6개월 전에 투자한 상품 8000억원 중 거의 전액이 이미 손실구간에 진입했고, 예상 손실률이 50%에 달하는 전대미문의 사태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번 사태가 조용해지면 또다시 과거의 관행으로 돌아갈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임기가 정해진 CEO 입장에서 성과가 불분명한 ‘소비자 보호’만을 내세우기 힘들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구조조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없이 KPI만 손보는 것만으로 이런 사태재발을 막기는 힘들다는 게 중론이다.

      이를 잘 알고 있는 금융당국도 KPI 개선만으로 이번 사태를 유야무야 지나가진 않을 분위기다. KPI 개선과 더불어 CEO 제재조치까지 꺼낸 데에는 소비자보호와 관련된 책임을 최고경영진에게까지 묻겠다는 의중이 담겨있다는 해석이다. 이번 사태로 금융권의 잘못된 영업관행에 철퇴를 가하는 것은 물론, 예전같지 않은 감독기관의 영(令)을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금감원은 지난해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의 연임을 앞두고 부원장이 사외이사와 접견하는 등 직접적인 연임 반대 의사를 전달하고도 연임을 막지 못했다. 시장 일각에는 이번 DLS 사태를 앞두고 이미 지난해 겨울 금감원이 하나금융 조사에 나섰다가, 김 회장의 항의에 유야무야 없었던 일로 덮었다는 소문까지 떠돈다.

      금융당국 입장에선 금융회사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지금이 '소비자 보호'를 내세워 영향력을 키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꼽힌다. 탐욕스런 금융기관에 대한 국민들의 원성이 높아지면서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정부뿐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감독당국에 강경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현 정부의 지지율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정국타개용으로 금융기관에 강력한 제재조치가 이뤄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금융권에선 금감원 제재 조치 결과에 따라 앞으로 금융사 관행에 변화가 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매년 불완전판매 이슈가 불거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CEO가 문제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사례는 없다. 시간이 흐르면 유야무야 넘어간다게 업계의 통념이었다. 그러다 보니 매년 이런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이를 바로잡고자 2014년 금융위원회는 금융사고를 막고자 CEO가 참여하는 내부통제위원회 운영을 의무화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2년 임기의 CEO들은 이런 문제에 대한 경각심이 높지 않았다. 이번 사태로 CEO에게 불완전 판매의 책임을 묻는게 관행이 된다면 임기 2년 짜리 CEO라도 연임 또는 금융권 재취업을 위해서라도 불완전판매에 더욱 신경쓸 수 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한 은행 고위층 인사는 “해외 분석사례를 보더라도 최고위층의 인식변화가 불완전판매 등 금융사의 모럴해저드를 막는데 매우 중요한 것으로 드러난다”라며 “불완전판매 이슈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커진 만큼 궁극적으론 이런 문제가 CEO의 선임 및 연임에 영향을 줄수 있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이번 일련의 사태로 금융권이 잃어버린 신뢰를 단시간 내 다시 되찾기는 어려워 보인다. 사기업의 평가 측정 시스템을 두고 감독당국과 정치권이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상황 자체가 금융업에 대한 신뢰를 더 악화시킬거라는 회의론 역시 존재한다. 당장 '투자상품 리콜제'만 해도 투자자의 모럴해저드를 부추기고 리스크에 따라 수익률이 갈리는 자본시장 체제를 위협할 수 있는 '폭탄'으로 꼽힌다.

      그럼에도 불구, 금융권은 금융당국의 조치와는 별개로 해답을 찾아 나설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KPI 공시제도 까지는 아니더라도, 금융업이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는 사태를 막기 위한 일정 규준이 필요할 수 있다는 지적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지금 KPI를 대대적으로 손질하더라도, 시간이 지나고 리더가 바뀌면 다시 이전같은 사례가 반복될 수 있으므로 이를 제도적으로 완충할 수 있게끔 하자는 것이다.

      선도적으로 KPI를 바꾼 NH투자증권 내부에서조차 '현 CEO의 임기가 끝나면 다시 예전 방식으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정영채 NH투자증권 사장의 조직 장악력 덕분에 KPI를 바꿀 수 있었던 것이지, 시스템화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너십'이 없는 정 사장이 퇴임하면 얼마든지 허물어질 수 있다는 평가다.

      은행이 취급할 수 있는 상품을 제한하자는 논의도 시작됐다. 여전히 은행은 예적금뿐만 아니라 각종 펀드, 파생결합상품 등 고위험 상품을 아무런 여과장치 없이 취급하고 있다. 은행실적이 곧 금융지주 실적이다 보니 금융지주에선 오히려 이를 독려하고 있는 상황이다. 은성수 금융위원장도 이런 부분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금융지주사들이 실적경쟁에 나서면서 은행 본연에 맞지 않는 상품을 팔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런 점에서 현행 금융지주회사 체제가 갖고 있는 문제점에 대한 공감대가 커지고 있다. 나아가 금융지주회사 전체를 총괄하는 금융지주 회장의 역할에 대해서도 문제가 제기된다. 이런 사태가 결국 은행뿐만 아니라 금융지주 평판을 악화시킨다는 점에서 금융지주회장이 뒤에서 팔짱만 끼고 있어선 안된다는 지적이다. 이런 사태의 본질적인 해결을 위해선 그 책임을 금융지주회장에 물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한 금융사 대표는 “모든 상품을 취급하는 현행 은행 중심의 지주회사 체제에서 이런 문제는 언제든지 재발 할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금융그룹 차원에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