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자본은 결국 기부금?"…탈출구 없이 투자만 장려하는 정부
이지은 기자 | itzy@chosun.com | 2019.10.24 07:00
Edited by 이도현 차장 | dohyun.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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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올해도 모험자본 투자 늘려…전년 대비 25%↑
'모험자본=버리는 돈' 인식에 엑시트 고민은 부재
美, 수익성 중시로 선회하는데 韓은 여전히 '성장성'

본문용

문재인 정부는 유니콘(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스타트업) 기업 양성을 목표로 모험자본 활성화를 유도하고 있다. 정부의 의지에 발맞춰 금융기관과 대기업, 다양한 투자자들이 동참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앞장 서다보니 스타트업 투자 목적이 유니콘 양성, 즉 규모의 경제 구축에만 치중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투자자들은 투자회수(Exit; 엑시트) 방안에 대한 논의를 꺼내기 어려워 모험자본이 사실상 '기부금'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와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올해 8월까지 신규 벤처투자는 2조7944억원, 벤처펀드 결성액은 2조1840억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벤처투자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2조2268억원)에 비해 25.5% 증가했다. 모험자본 규모 확대는 정부 주도 하에 이루어지고 있다. ‘청’에서 ‘부’로 격상된 중기부는 스타트업 창업 지원 예산을 2017년 5013억원에서 2019년 9월 기준 7249억원으로 매년 늘리고 있다. 정부의 모험자본 활성화 목표는 유니콘 기업 양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국책은행과 주요 금융지주사들, 대기업들이 '스타트업 덩치 불리기'에 동원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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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자본 규모는 앞으로도 늘 것으로 보인다. 시중에 유동성이 넘쳐나는 와중에 금리는 계속 떨어지고 있다.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는 자본들은 정부 의지에 발맞춰 이 시장으로 뛰어들고 있다. 관련업계와 금융시장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투자회수, 즉 엑시트 문제는 고려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투자은행(IB) 관계자는 "아직 큰 문제가 야기되고 있지는 않지만 지금 만들어지고 있는 펀드들이 청산되는 시점인 8년 남짓부터는 투자회수 여부가 큰 이슈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돈이 넘치다보니 투자 기준은 뒷전이다. 신사업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는 투자자들은 성장성이라는 장밋빛 전망에만 의존해 투자를 해야 한다. 스타트업 대표가 보유기술의 잠재적 가치를 바탕으로 매긴 밸류에이션을 인정해주는 등 사실상 구체적인 기업가치 산정 툴(Tool)은 없다. 주로 스타트업의 구성원을 고려해 투자를 결심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예를 들면 서울대 출신 3명이 모이면 20억원부터, 교수 1명이 추가로 붙으면 50억원부터 투자 규모가 산정되는 식이다.

스타트업 대표의 첫인상도 투자지표의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한 법무법인 스타트업 전문 변호사는 스타트업 창업자를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첫인상이 중요하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창업을 했는지 투자자에게 강하게 어필하지 못하면 다음 투자단계까지는 가지도 못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투자만 이어지고 회수가 오랫동안 불가능할 경우 시장에 자금이 묶여버린다. 모험자본 규모가 늘어나는 만큼 투자회수 우려도 커지지만 정부는 여전히 유니콘 육성 의지만 되새길뿐 방안 마련에 무관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투자자들의 모험자본 투자가 ‘기부금’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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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선 기업공개(IPO)가 사실상 모험자본의 유일한 투자회수 방안이지만 소수 기업에만 주어지는 기회다. 이에 금융위원회를 주도로 스타트업 기업들의 상장 요건을 낮추는 데 집중하고 있다. 기술특례 상장은 수익성은 크지 않으나 무한한 성장성을 가진 회사가 상장할 수 있도록 상장 기준을 완화해 주는 제도다. 이뿐만 아니라 테슬라 요건 상장, 성장성 특례상장, 사업모델 특례상장 등 특례상장의 루트도 다변화했다. 하지만 상장 이후에도 제대로 된 실적을 보여주지 못해 주가는 반등하지 못하는 기업들이 다수다. 외부에서 자금조달도 쉽지 않다보니 유동성을 확충하려면 결국 증자를 해야 하고 기존 투자자들의 엑시트는 더 멀어지게 된다.

투자금 유치가 절실한 스타트업 기업은 성장성을 증명하는 데 길들여질 수밖에 없다. 이는 스타트업 기업들이 수익성 제고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만드는 원인이기도 하다.

대형 회계법인의 벤처캐피탈 전문 딜 파트너는 "상장 이후에도 스타트업의 자금조달과 관련해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해 시장에선 논의가 많지 않다”며 “가장 쉬운 방법은 미래 사업에 대한 것을 잘 포장해 추가로 자금을 유치하는 등 증자를 받는 형태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모험자본 투자 경력이 오래된 미국은 최근 성장통을 겪으면서 투자자들의 의식도 바뀌고 있다.

차량 공유 스타트업 우버(UBER)와 리프트(LYFT)는 지난 상반기 나스닥 상장 이후 공모가 대비 주가가 크게 하락했고 사무실 공유 스타트업인 위워크(WeWork)는 지난해 16억1000만달러의 순손실을 내는 등 수익성 논란을 겪으며 상장을 무기한 철회했다. 이에 미국 실리콘벨리에는 스타트업의 수익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2014년 트위터에 인수된 탭커머스 등에 투자했던 미국 에니악벤처스(ENIAC Ventures)는 최근 포트폴리오 회사들의 매출총이익을 처음으로 수집하고 있다. 투자 시 수익모델과 재무상태를 요청할 것이란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아무리 밝은 미래를 약속하더라도 당장의 수익성을 담보하지 못하면 ‘무조건적 투자’는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쿠팡은 한국의 아마존이 될 것이란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로부터 총 30억달러를 투자받았지만 투자업계에선 올해 5월까지 6000억원에 가까운 영업손실을 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우버, 위워크와 더불어 비전펀드와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는 사례 중 하나가 됐다.

M&A로 엑시트 하는 경우는 극소수다. 한국 AI 벤처기업 수아랩 M&A는 특별한 경우다. 최근 미국 글로벌 AI기업 코그넥스는 2000억원을 투자해 수아랩을 인수하기로 했다. 국내 대다수 벤처캐피탈(VC)들은 해외에 비해 자본력과 역량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소액을 여러 기업에 출자해 투자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식으로 투자할 수밖에 없고 평균 투자액도 5억~10억원 정도에 불과하다.

모험자본 회수의 전제 조건은 독보적 기술 경쟁력을 갖춘 스타트업, 그 기술력을 필요로 하는 더 큰 자본 혹은 기업이다. 결국 일반 기업의 스타트업 투자와 M&A 여건을 마련해주기 위해서라도 CVC(Corporate Venture Capital; 기업형 벤처캐피탈)에 대한 규제 빗장을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금산분리 규제 탓에 대기업이 CVC를 계열사로 두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CVC 없이 모험자본을 회수하는 게 쉽지 않다는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중기부도 대기업의 지주회사가 CVC를 할 수 있도록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CVC 역할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동의하는 분위기다.

스타트업 관계자는 “정부의 역할은 의미없는 유니콘을 직접 만드는 것이 아닌, 유니콘을 필요로 하는 기업과 투자자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라며 “마땅한 투자회수 방안도 없이 시장에 돈을 넣기만 것은 정부의 치적 만들기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10월 22일 07:00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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