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은 기본…‘지뢰 피하기’ 중요해진 금융사 수장 연임
입력 2019.10.25 07:00|수정 2019.10.25 14:12
    각종 위험 관리능력이 주요 척도
    법적 문제 불거지면 연임 빨간불
    • 금융회사 수장들의 임기 연장의 성패가 각종 재판결과 등을 비롯한 '변수'를 얼마나 잘 통제하느냐에 따라 갈릴 것으로 보인다. 금융사 대부분이 돈을 잘 버는 상황에선 실적만으론 변별력을 가지기 어려운 반면, 각종 법적 문제가 불거지면 안팎의 공격을 받기 십상이어서다.

      알려진 위험은 피하거나 최소화해야 하고 잠재 위험은 연임 결정 전까지 불거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올 연말부터 금융사 수장들의 임기 만료가 줄줄이 예고돼 있다. 다음달 허인 KB국민은행장을 시작으로 12월 김도진 IBK기업은행장, 이대훈 NH농협은행장의 임기가 끝난다. 내년엔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 김광수 NH농협금융지주 회장, 김지완 BNK금융지주 회장의 임기가 줄줄이 만료된다. 허인 행장은 24일 차기 KB국민은행장 후보로 선정됐다.

    • 금융사들의 성적표는 숫자상으로는 어쨌든 준수하다. 경기 위축과 더불어 금융회사들의 실적 전망은 부정적이지만 그래도 분기마다 ‘사상 최대’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목적을 이루지 못하거나 실적이 마뜩찮은 곳들은 ‘비경상적 요인’에서 명분을 찾기도 한다.

      이러다보니 실적이 수장들이 연임하기 위한 충분조건이 되긴 어렵다. 어느 한 곳이 아니라 모든 금융사들의 성적이 좋았기 때문. 사업 구조나 전략이 엇비슷하고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금융사들이 특출난 모습을 보이기 쉽지 않다. 당연한 과제인 M&A나 해외 진출 성공이 얼마나 가점이 될 지도 미지수다.

      자연스레 변별력을 가지기 어려운 실적보다는 감점 요소를 줄이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다는 평가다. 시끄러운 문제가 불거지면 수장들은 안팎의 공격에 노출되고 연임 가도에 빨간불이 켜지기 때문이다. 예상치 못한 지뢰를 밟는 경우엔 더 뼈아플 수밖에 없다.

      가장 부담이 되는 것은 역시 위법성이 문제됐을 때다. 금융감독당국에 견제의 빌미를 주고, 나아가 수사로도 이어질 수 있다. 채용비리, 시세조종, 횡령, 불완전판매 등 문제가 된 사유도 다양하다. 수장들로선 실제 혐의가 입증되든 그렇지 않든 장기간 평판 부담에 노출된다. 경쟁자들에겐 좋은 공격 목표가 된다.

      가뜩이나 이번 정부에선 여러 금융지주의 채용 비리 사건 등에서 체면을 구긴 사례가 많아 당국이 독이 올라 있다. 자금세탁 방지, 소비자 보호 등에서 금융사와 임원의 책임을 강화하는 추세라는 점도 부담스럽다. 실적 강화를 독려하다 임기 만료를 앞두고 불완전판매 등 문제가 터지면 비난의 화살을 피하기 어렵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금융사 수장 연임 문제는 표면적으론 각 회사의 자율에 달린 문제제만 현실적으론 정권과의 교감 및 위험 관리가 중요하다”며 “당국이 위법성 문제를 걸고 넘어지면 금융사 수장은 도덕성과 대외 역량에 의문 부호가 붙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조용병 회장은 올해 상반기 리딩뱅크 자리를 되찾아오는 등 성과를 내고 있지만 신한은행 채용비리 재판이 부담스럽다. 연말이면 1심 결론이 날 것으로 예상된다. 결과에 따라 입지가 급변할 수 있기 때문에 대형 법무법인의 조력을 받아 방어에 총력을 다해 왔다. 위성호 전 신한은행장은 ‘남산 3억원’ 사건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손태승 회장은 해외 금리 연계 파생결합상품(DLF)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주 전환과 M&A, 실적 개선 등 공이 많은데 예상치 못한 문제로 딱하게 됐다는 평가와 어느 정도는 자초한 면이 있다는 지적이 엇갈린다. 우리은행은 자산관리 혁신안을 내놓는 등 뒷수습에 총력을 다하는 모습이다. 형사 절차가 본격화하면 아무래도 내년 3월 판가름이 날 연임여부에도 득이 되지 않는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경영진과 실무 부서간 괴리가 나타나기도 한다.

      한 IB 업계 관계자는 “수장 임기가 가까워지는 금융사에선 임원들은 끝까지 목표를 독려하는 반면, 실무진들은 다음 수장이 누가 되고 어떤 생각을 가질지 모르기 때문에 미온적인 반응이 있다”고 말했다.

      관건은 금융감독당국의 시선이다. 당국이 지금까지 불거진 문제들이 지주 회장들의 책임이라고 확신한다면 부정적인 신호를 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은 올해 초 함영주 전 KEB하나은행장(현 부회장)의 3연임에 제동을 걸었고, 지성규 행장이 후임으로 왔다. 함 부회장 역시 채용비리 관련 재판 절자가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