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테마주'된 삼성전자, 반도체 가격은 '사상 최저'
입력 2019.10.29 07:00|수정 2019.10.30 09:38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 최근 사상 최고치
    5G 테마에 수요 회복 기대감에 자금 몰려
    반도체 거래 가격은 9월 이후 다시 급락
    투자자들은 '단기 투자' 양상...향후 주가 관심
    • "삼성전자 목표가를 6만원으로 제시한 레포트들이 나오고 있다. 액면분할 전 기준 300만원이다. 명확한 고점 징후다. 미국의 넘쳐나는 유동성과 기대감이 반도체 종목 주가를 단기간에 테마주처럼 밀어올렸다." (한 자산운용사 주식운용본부장)

      1년 5개월만에 5만원선을 회복한 삼성전자 주가는 더 오를 수 있을까. '업황 턴어라운드가 시작됐다'·'갤럭시폴드 인기가 심상찮다'며 장밋빛 전망이 부풀어오르는 가운데 단기 과열이라고 진단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유동성을 공급하며 주식시장이 반색했고, 유동성의 일부가 '5G'(5세대 이동통신) 테마를 타고 반도체로 유입되며 일어난 일시적인 상승이라는 것이다. 디램(DRAM)은 물론 낸드(NAND) 반도체의 가격은 여전히 매주 '사상 최저치'를 갱신하고 있다.

      글로벌 주요 반도체 제조사들의 주가 추이를 반영하는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SOX)는 지난 15일 1625.69로 마감하며 올해 7월 세웠던 사상 최고 기록을 다시 썼다. 지난 6월초를 저점으로 4개월간 30% 가까이 오른 것이다. 이 기간 대만 TSMC, 미국 텍사스인스트루먼트, ASML, 램리서치 등 반도체 관련 업체들의 주가가 급등했다.

      이런 온기는 반도체 대장주 중 하나인 삼성전자에까지 미쳤다. 6월 이후 국내 연기금이 삼성전자 주식을 2조원이나 매입하며 수급을 받치는 가운데, 9월 초 이후 외국인의 순매수가 1조1000억원가량 들어오며 정체돼있던 삼성전자 주가를 끌어올렸다. 특히 지난 21일 5만원을 돌파한 건 지난 11일 이후 외국인들이 순매수 강도를 높인 덕분이었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반도체주 주가 단기 상승의 배경으로는 반도체 업황 조기 회복 기대감과 5G 전환에 따른 반도체 수요 급증 기대감이 꼽힌다. 실제로 지난 3분기 영업이익이 다섯 분기만에 회복세로 돌아선 대만 TSMC는 실적 턴어라운드 배경으로 5G 관련 반도체 수요 증가를 언급했다.

      문제는 반도체 가격이다. 금융시장에는 이런 기대감이 팽배해있지만, 막상 반도체 거래 가격은 하락세를 멈추지 않고 있다. 삼성전자의 주력 생산품목인 8기가 디램의 23일 현물(Spot) 거래가격은 평균 2.94달러로 전 거래일 대비 0.58% 떨어지며 사상 최저를 기록했다. 불과 1년 전 대비 60% 가까이 낮은 가격이다. 같은 날 64기가 낸드 현물 가격 역시 평균 2.319달러로 약세를 유지했다.

      이런 가격 하락세는 10월 마지막주에도 멈추지 않았다. 28일 디램 현물 거래가격은 또다시 전일 대비 0.55% 하락하며 역대 최저치 행진을 이어갔다. 불과 1주일 사이 2%나 더 내렸다.

    • 가격이 급락하며 구매 문의가 소폭 늘어나고 견적가도 조금 올랐지만, 저가 제품 위주로 구매의사가 집중되며 거래는 여전히 부진한 상황이라는 평가다.

      무엇보다 현물과 고정(Contract) 가격 사이의 역(逆) 프리미엄이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대형 제조사의 계약 공급가인 고정 가격보다 현물 가격이 낮다는 건(역 프리미엄 상태) 업황 침체를 의미한다. 반대로 현물 가격이 고정 가격을 추월하면 업황 회복세로 본다.

      지난 9월 디램 현물 가격이 반짝 반등하며 현물 프리미엄이 20%대까지 치솟았지만, 지금은 이 프리미엄을 모두 반납한 상태다.

      낸드 역시 2018년 하반기 시작된 현물 가격 역(逆) 프리미엄이 전혀 해소되지 않고 있다. 지난 5월과 8월 디램처럼 현물 가격이 다소 상승하며 기대감을 주기도 했지만, 지금은 다시 지난해 하반기 수준으로 돌아간 상태다.

      종합하자면 반도체 수요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피어오르는 상황에서 지난 8~9월 반도체 가격 지표가 우호적으로 움직이며 반도체주에 글로벌 자금이 쏠린 것이다.

      여기에 지난 7월과 9월 미국 연준이 기준금리를 인하하며 시중 유동성이 늘어나고, 위험투자선호(Risk on)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도 영향을 미친 것도 배경 중 하나로 꼽힌다. 추가로 연준이 단기자금시장(Repo)의 경색을 해소하기 위해 9월에만 2000억달러(약 240조원)을 쏟아부으며 '작은 양적완화'가 이뤄진 것도 주요 원인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이 자금들이 '반도체 업황의 중장기 회복'에 베팅한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단기 테마주에 베팅한 전형적인 자금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다. 실제로 디램 현물 프리미엄이 '제로'로 돌아오며 업황 회복이 추세적이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 상황이다.

      '5G 회복'을 외친 TSMC의 주가는 실적 발표를 전후로 2.2% 하락했다. '업황 회복 선언'이 매수가 아닌, 매도의 트리거(방아쇠)가 된 것이다. SK하이닉스 실적 발표를 앞두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가 보수적인 방향으로 움직이기도 했다.

      반도체주들의 주가 움직임은 전형적인 '베팅'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변동성이 매우 크다는 평가다.

      지난 23일(현지시간) 미국 최대 반도체 제조사 중 하나인 텍사스인스트루먼츠가 실망스러운 실적을 내놓으며 반도체 회복론은 순식간에 회의론으로 돌아섰다. 텍사스인스트루먼트 주가는 이날 하루에만 7.5% 하락했다.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도 하루만에 1.9% 하락하는 등 단 2거래일만에 2.7% 떨어졌다. 그러다 지난 25일 무역분쟁 해소 기대감으로 미 증시가 일제히 오르자 텍사스인스트루먼츠 역시 2% 가까운 반등세를 보였다.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는 다시 역대 최고점을 돌파했다.

      반도체 업황 회복에 대한 주요 증권사 리서치센터의 관점은 여전히 갈린다. 지난 3분기가 이미 저점이었다는 관측이 있는 반면, 내년 2분기 저점을 지날 것으로 내다보는 시선도 있다. 최근 1달간 삼성전자 주가는 긍정론이 힘을 받으며 만들어졌다는 분석이다.

      삼성전자는 액면분할 전 '300만원의 저주'에 시달렸다. 주요 증권사 리서치센터가 업황을 밝게 보고 목표주가를 300만원 이상으로 끌어올리면 어김없이 200만원대 후반을 단기 고점으로 주가가 무너졌다. 액면분할 후인 현재 기준으로는 6만원이다. 현재 삼성증권, 미래에셋대우, SK증권이 삼성전자 목표주가를 6만원으로 상향 조정해 제시했다.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10월 24일 14:04 게재ㆍ28일 10:00 업데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