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턴도 찾는 국내 기관출자자?…글로벌 큰손 대접은 시기상조
입력 2019.10.29 07:00|수정 2019.10.30 09:37
    존볼턴 속한 론그룹 국내 주요 LP 방문
    기관들 고무됐지만 실질은 달라지지 않아
    해외 펀드의 한국 자금 유치 목적일 뿐
    마케팅 나선 볼턴…“펀딩 아니면 봤겠나”
    • 존 볼턴(John Bolton) 전 미국 백악관 보좌관의 한국 방문이 화제였다. 한반도 정세에 큰 영향을 미치던 유력 인사의 방문을 받은 국내 기관출자가(LP)들도 덩달아 주목을 받았다.

      국내 LP들의 달라진 위상을 나타내는 장면으로 볼 수 있지만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긴 어렵다는 평가다. 세계적으로 손 꼽히는 운용사들은 국내 자금에 큰 관심이 없고, 국내 LP들 역시 관심을 끌만큼 자금을 쓰기 부담스럽다. 펀드 결성에 나선 중소 외국계 운용사가 한국의 유동성을 활용하기 위해 영향력 있는 인사를 앞세운 정도 의미 이외에는 없다는 것.

      미국계 사모펀드(PEF) 운용사 론그룹(Rhône Group)의 관계자들은 지난 24~25일 국내 주요 LP를 방문했다. 24일 교직원공제회와 과학기술인공제회, 25일엔 농협중앙회 상호금융, 한국투자공사(KIC), 행정공제회 등을 찾았다. 존 볼턴 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은 고문 자격으로 로버트 아고스티넬리(Robert F. Ago stinelli) 론그룹 공동창업자와 함께 방한했다.

      론그룹의 한국 방문은 여섯 번째 블라인드펀드 자금 모집 목적이다. 론그룹은 1996년 설립돼 올해 상반기 50억유로(약 6조5000억원) 규모 자산을 운용 중이다. 미국과 유럽의 중견기업 투자에 집중하는데, 종결된 펀드들의 내부수익률(IRR)은 40.4%에 달한다. 새 펀드 결성 목표는 3조원대로 알려졌다.

      론그룹은 이런 성과와 함께 한국과의 인연을 알리는 데 공을 들였다.

      아고스티넬리 공동창업자는 한국전쟁 참전 용사인 아버지로부터 한국의 발전상에 대해 여러 차례 이야기를 들었다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존 볼턴 역시 대표적인 한반도 전문가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대북 정책에서 이견을 보인 끝에 물러나기 전까지 한반도 문제에서 비중있는 목소리를 냈다.

      국내 LP들은 이번 방문에 고무된 분위기다. 그간 해외의 운용사들로부터는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했는데, 접근하기 어려운 북미와 유럽에서 준수한 수익률을 내는 운용사가 손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한국과 인연이 있는 유력 인사가 방문단에 포함된 터라, 한국 LP의 위상이 높아진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냉정히 보면 이전과 상황이 크게 달라진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돈이 필요한 운용사가 여러 지역을 살피던 중 한국을 방문한 정도로 봐야 한다는 곳. 소위 ‘급’이 되는 운용사라면 굳이 발품을 팔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론그룹은 오랜 역사에 좋은 트랙레코드도 있다. 그러나 ‘글로벌 수준’이라고 보기엔 거리가 있다. 한국에서도 이름이 높은 편이 아니다. 전체 운용 규모래봐야 글로벌 운용사의 단일 펀드 규모를 따라가기도 벅차다.

      공동창업자가 한국과 연이 있고, 고문이 십 수년 전부터 한반도 문제에 밝았다지만 론그룹이 한국에서 자금을 모집하는 것 역시 이번이 처음이다.

      론그룹은 기존 펀드보다 규모를 키우다보니 출자자를 다변화할 필요가 커졌고 아시아로 눈을 돌렸을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유동성이 많고 해외 대체투자에 목말라 있는 한국의 기관투자가들은 다른 곳보다 접근이 편한 자금원이 될 수 있다.

      론그룹은 방한 전에 이미 일본도 거친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운용사들은 핵심 LP군을 확보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에까지 와서 출자 요청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의 국내 기관투자가들은 해외 대체투자 비중이 낮고, 운용사에 맡길 수 있는 자금 규모도 크지 않다. 거물 운용사들엔 오히려 LP들이 돈을 맡아달라고 읍소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 기관투자가 관계자는 “론그룹의 이번 한국 방문은 아시아 지역을 약간 배려하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본다”면서도 “펀드레이징 시즌이 아니고 출자자를 다변화하려는 목적이 아니었다면 경영진을 볼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존 볼턴 고문의 방한 역시 ‘마케팅’의 일환으로 봐야한다는 지적이다. 미국 국정을 책임지던 유력 인사가 투자업계로 갔다는 점은 눈길을 끌만하다. 그러나 볼턴은 백악관에 가기 전에도 10년 이상 론그룹의 고문 역할을 해왔다. 미국에선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친구가 경영하는 투자사 유카이파(Yucaipa)의 수석자문역을 맡는 등 정계와 투자계를 오가는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