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 Column]
'재벌' 체제 한계 드러낸 CJ그룹, SK 수펙스 모델 도입한다면
차준호 기자 | chacha@chosun.com | 2019.11.0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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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해 연말이 다가오면 각 대기업들은 그룹 수장이 직접 주재하는 그룹 회의 사진을 앞다퉈 배포한다. 최태원 회장이 직접 TED를 본딴 공개 강연 형식으로 임원회의를 주재하는 SK그룹이 대표적이다. 반면 한류 문화를 이끌며 '젊고 역동적'인 기업으로 인식된 CJ그룹의 회의 모습은 다소 이질적이다. 외견상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발언을 각 주요 계열사의 CEO와 임직원들이 받아 적는 모습으로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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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CJ그룹의 가장 큰 과제는 ‘그레이트 CJ’ 비전 달성이었다. '그레이트 CJ'는 올해 30조원 수준인 그룹 매출규모를 내년까지 ‘100조원’까지 끌어올리라는 계획으로 이재현 회장의 독려 아래 각 계열사에 '하달'됐다. 의사결정자가 전면에 나서 이른시간 내 압축 성장을 독려하는 이른바 '재벌식 의사결정'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회자됐다.

적어도 사진으로 드러난 회의 분위기 속에선 당시 어느 CEO가 반대 의사를 낼 수 있었는지 불투명해 보인다. CJ그룹은 올해도 다수의 M&A를 공격적으로 추진하고 일부 단행했지만, 재무부담 우려에 이제서야 속도조절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투자업계에선 CJ그룹이 회장의 지시 아래 공격적으로 덩치를 키워온 배경으로 가장 먼저 '승계'를 꼽았다. 실제 M&A를 통한 외형 성장과 동시에 내부에선 지배구조 개편에도 속도를 냈다. 지난 2018년 CJ제일제당의 삼각합병을 통한 지배력 강화를 필두로 올리브네트웍스의 분할 및 주식교환, 후계자에 대한 신형우선주 발행 등이 대표적이다. 이번 정부 하에서 단행됐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과감하게 진행됐다. 삼성은 물론 LG·SK 등 재계순위 상위권 그룹이 지금 시점에 단행했다면, CJ처럼 잡음없이 해결됐을지 미지수란 평가도 나온다.

문제는 정작 다져진 운동장에서 ‘선수’로 뛰어야 할 이선호 부장이 마약 반입 문제로 스스로 그 기회를 놓아버렸다는 데서 시작됐다.

CJ올리브네트웍스

지배구조 개편과 승계 과정이 대주주에 유리한 구조로 진행됐다고 목소리를 높여온 투자자들도 혼란스럽다는 반응이다. 지금까진 그룹 승계 준비과정 속에서 대주주와 투자자 사이의 갈등이 투자심리 이탈의 주요 원인이었다면, 이젠 그룹 지속 가능성 자체를 가늠하기 불투명해졌다는 평가다. 이런 문제는 국내 특유의 ‘재벌(Chaebol)’ 체제의 첫 균열 사례로까지 해석되고 있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야간에 갑자기 택시를 타고 자진 출두 하는 모습 등이 그룹 혹은 아버지와 상의가 안 된 모습으로 보였다”라며 “오히려 아버지로부터 승계받기 싫다는 의사를 보이는 등 홀가분한 모습으로까지 느껴졌다”고 설명했다.

사실 자본시장에선 “아버지처럼 기름밥 먹기 싫다”며 사모펀드(PEF)에 회사를 팔고 투자자문사를 차리거나 부동산 투자에 뛰어든 중소·중견기업 후계자도 일상화됐다. 그렇다고 매출 30조원에 직원만 3만명에 달하는 데다 재계 10위권을 넘보는 CJ그룹에 대입할 순 없는 문제다. 대주주 지분을 통째로 외부에 넘기는(Exit) 방안은 불가능할 뿐더러 시장과 이해관계자들에 주는 혼선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이 때문에 CJ그룹이 더 이상 투자자의 신뢰를 잃지 않으려면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지금에서라도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과도기적인 방안으로라도 SK그룹의 수펙스(SUPEX)협의회 모델의 적용을 진지하게 고려해봐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SK그룹의 경우, 최태원 회장의 독단적인 결정보다 그룹 주요계열사들의 전문경영인이 위원장을 맡는 수펙스협의회를 통한 의사결정을 강조해 왔다. 특히 과거 최 회장의 부재시 수펙스가 그룹의 주요 의사결정을 주도하며 성공적으로 안착했다는 평가다.

최근 들어 조대식 수펙스 의장과 박정호 SK텔레콤 사장간 경쟁에서부터, 각 계열사 전문경영인의 성과 경쟁까지 치열한 견제와 균형을 통해 그룹의 방향성을 결정하고 있다. 한 쪽의 힘을 싣고 전권을 부여하기보다 끊임없는 경쟁을 통한 성과창출이 선순환을 이뤘다는 평가다. 최태원 회장이 현업보다 ‘사회적 기업’과 ‘행복 경영’ 전파에 사실상 전념하는 배경에도 이같은 수펙스 중심의 의사결정 구조가 어느정도 정착됐기 때문이란 해석이다.

반면 CJ그룹의 경우. 정작 스타 CEO는커녕 자기 색깔 혹은 목소리를 내는 CEO도 손이 꼽힌다. "'재무통' 중심의 내부인력들이 돌아가며 자리를 맡아 그룹이 벌인 일을 해결하는 데 급급하다"는 박한 평가도 나왔다. 경쟁사들이 앞다퉈 글로벌 기업의 인재를 모셔오려는 환경 속에서도, 여전히 삼성에서 옮겨온 은퇴를 앞둔 옛사람의 이직이 화제가 됐던 그룹이기도 했다.

투자자들 사이에선 내년도가 본격적으로 CJ그룹의 투심 회복의 갈림길이 될 것이란 지적이다. 물론 가장 표면적으로 드러난 위기는 단연 여기저기서 울리는 ‘빚 경고’다. 그룹 중추인 CJ제일제당의 재무부담. 다만 어디까지나 쉬완스 M&A에 따른 후폭풍이란 점에서 어느정도 눈에 보였던 위기라는 평가다. 오히려 내부의 지배구조 위기를 이른시기에 드러내고 개선 의지를 밝히는 게 더 시급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투자은행 관계자는 "점차 세대가 내려올 수록 삼성·현대차·LG그룹은 어느정도 자리잡았고, 한화그룹 등에도 현재 진행형인 문제"라며 "그룹 경영에 관심이 없는 인물이 무리해서 후계 구도를 이어받기보다 차라리 ‘주요주주’ 혹은 ‘가문’으로 남아 그룹 성장을 공유하는 방안도 장기적으로 고민해야 할 때"라고 설명했다.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10월 30일 07:00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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