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 못내면 아웃"…정의선 부회장의 현대차 인사, 냉정해지고 빨라졌다
입력 2019.11.05 07:00|수정 2019.11.06 11:26
    피츠제럴드 제네시스 사업부장 사의 표명
    GV80 곧 출시에도…”제네시스 사업 실패 문책성 인사” 평가
    정기 인사 한달가량 앞당길 듯
    지영조 전략기술본부 사장 “M&A·JV 3~4건 준비중”
    빨라진 인사 속도에 부담감의 표현 평가도
    •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 부회장이 냉정해졌다. 정 부회장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미래차와 관련한 전문가들을 빠르게 영입하는 반면, 성과를 내지 못하는 임원은 최측근 인사라도 과감하게 쳐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다른 완성차 업체들보단 다소 늦었지만 미래차 시장에 발맞춰 나가려는 움직임과 함께 인사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의선 부회장의 최측근으로 분류됐던 맨프레드 피츠제럴드(Manfred Fitzgerald) 제네시스 사업부장(부사장)은 지난달 29일 사의를 표명했다. 제네시스의 첫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SUV)인 GV80의 출시를 한 달도 채 남기지 않은 상황이었다. 완성차 시장 진입이 가장 어렵다는 유럽에서 제네시스 현지 법인(Genesis Motor Europe)이 설립된 지 한 달 만이기도 했다.

      현대차의 예상과 달리 제네시스 사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피츠제럴드 부사장은 임기를 6개월 이상 남긴 채 자리를 내어줘야 했다. 회사는 “피츠제럴드 전 부사장이 자진 퇴임 의사를 밝힌데 따른 인사”라고 발표했으나, 사실상 사업 실패에 따른 문책성 인사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정의선 부회장 체제에 돌입하면서 현대차그룹이 각 분야에 걸쳐 전문 인력을 흡수하는 속도는 굉장히 빨라졌다.

      정 부회장이 직접 영입한 외국인 인사들은 각 사업부의 주요 보직을 차지했고, 지난해 알버트 비어만(Albert Biermann) 사장이 현대·기아차의 R&D를 총괄하는 연구개발본부장에 임명되면서 외국인 인사는 ‘용병’이라는 인식도 사라지게 됐다.

      최근엔 ‘플라잉카’ 개발을 위해 미국항공우주국(NASA) 항공연구본부장 출신의 신재원 박사를 영입했고, 닛산(NISSAN) 출신의 클라우디아 마르케스(Claudia Márquez)를 영입해 멕시코법인장(CEO)으로 선임했다. 지난 4~5월엔 닛산 출신의 호세무노즈 (Jose Munoz)와 랜디 파커 (Randy Parker)를 각각 글로벌 최고운영책임자(COO) 겸 최고경영자(CEO)로, 미국판매담당 부사장으로 선임했다. 이달 1일엔 중국사업 최고 담당자를 교체하며 중국 사업의 회복을 위한 의지도 나타냈다.

      인재 영입과 더불어 정기 인사의 속도도 다소 빨라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현대차그룹은 매년 12월 정기인사를 발표했으나 최근엔 한 달가량 앞당기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올해 정기 인사를 한 달 정도 앞당겨 진행할 가능성이 크다”며 “회사 전반적인 사업 방향성이 조정되고, 이에 따른 조직 개편 및 인적 쇄신이 필요하다는 판단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현대차의 사업 기조는 과거에 비해 다소 달라졌다.

      최근까지만 하더라도 현대차그룹이 모빌리티 프로바이더(Mobility Provider)를 지향했다면, 최근엔 솔루션 프로바이더(Solution Provider)로서의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기조가 임직원들에게 전달되고 있다.

      플라잉카 상용화를 위해 인재를 영입하고, 고성능 전기차 개발업체 리막(Rimac)과 투자협정 체결,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업체 앱티브(Aptiv)에 40억달러(4조8000억원) 투자 등은 이 같은 기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현대차 M&A의 핵심 부서인 ‘전략기술본부’는 여느 때보다 바쁘다.

      200여명이 조금 넘는 조직으로 구성된 전략기술본부는 동남아시아 그랩(Grab)과 인도의 올라(Ola)를 비롯한 카쉐어링 분야에 크고 작은 지분 투자를 진행했다. 전략기술본부는 투자은행(IB), 사모펀드(PEF), 각 증권사 애널리스트 등을 비롯한 금융권 인사들과 미래차와 관련한 전문 인력을 가장 많이 수혈하고 있는 조직이기도 하다.

      그룹에서 거는 기대가 가장 큰 조직인 탓에 실무진들이 느끼는 부담도 상당하다. 외부에서 수혈되는 전문가들도 1~2년을 버티지 못하고 회사를 떠나는 경우도 많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관련업계 종사자들이 전략기술본부에 대거 합류했으나, 오랜 기간 버티지 못하고 다시 돌아오는 일도 상당하다”며 “사업 기조 변화에 따른 조직의 개편과 인적 쇄신의 속도가 굉장히 빠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전략기술본부를 이끄는 지영조 사장은 최근 “현대차그룹이 신사업 분야에서 M&A 또는 JV(조인트벤처) 설립 등 3~4건의 대규모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실 현대차그룹의 창사 이래 가장 기대감이 큰 투자로 평가받는 앱티브와의 JV 설립은 김걸 사장 이끄는 본사 기획조정실에서 진행됐다.

      지난해 8월 지영조 사장은 “6개월 내 삼성전자와의 협력방안을 마련하겠다”고 공언했으나, 1년을 훌쩍 넘긴 현재까지 이렇다 할 방안은 보여주지 못했다. 이례적인 지영조 사장의 M&A 준비 발표가, 현대차그룹의 인사 속도가 한층 빨라진 것에 대한 부담감의 표현일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