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 바뀌는 두산家 경영지도…자리잡는 박정원 vs 흔들리는 박용만
입력 2019.11.11 07:00|수정 2019.11.12 09:16
    박정원 회장, 분할상장 마치며 '신사업 구축' 평가
    면세사업 철수로 박용만 회장 일가 타격 불가피
    과거와는 달라진 입지…추후 승계구도에도 영향
    '8000억원' DICC 소송 결과에 또한번 변화 전망
    • 두산그룹 오너일가를 둘러싼 경영능력 평판의 무게 추가 거듭 움직이고 있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은 안착까지 다소 시간이 걸리겠지만 ㈜두산 계열사 분할상장을 통해 그룹의 새 기틀을 마련해냈다는 얘기가 나온다. 반면 전임 회장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은 면세사업 철수로 본인뿐만 아니라 아들의 입지까지 흔들리고 있다. 두 사람의 엇갈리는 평가가 두산의 ‘승계 지도’에까지 영향이 미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최근 두산그룹은 지난 4월 인적분할 방안을 발표한 지주사 ㈜두산의 연료전지·동박·OLED등 사업부문의 재상장을 마무리했다. 해당 사업부문들은 연료전지 전문 회사 두산퓨얼셀과 동박·OLED 등 다른 사업부문을 고루 흡수한 두산솔루스로 명명돼 시장에 등장했다.

      상장된지 얼마 되지 않는 이들 기업가치에 대한 평가는 차치하더라도 두산이 새로운 그룹 포트포리오를 모색해냈다는 점에 대해선 당초보다 높은 점수가 부여되는 분위기다. 지난 2000년대부터 중공업 위주의 사업재편을 이뤄낸 이후 두산그룹은 건설장비와 플랜트에 절대적인 의존도를 보여왔다. 사업지주회사와 계열사를 포함해 유통과 광고, 바이오 등 폭넓은 사업을 하긴 했지만 이들의 실질적인 기여는 낮아 주목도가 떨어졌다.

      시장에선 새로운 상장사들이 정체된 두산의 수익구조를 타개하고 신사업 방향에 대한 가늠자 역할을 할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덩달아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의 성과가 부각되고 있다. 앞서 박 회장은 2016년 3월 취임사에서 “신규사업 조기 정착 및 미래 성장동력 발굴 등에 중점을 두겠다”며 특히 “연료전지 사업을 글로벌 넘버원 플레이어로 만들겠다”고 밝힌바 있다. 그룹 총수의 사업방향 제시에 따라 R&D투자와 공장 설립 등 준비를 거듭했던 양 사(社)는 증권가를 중심으로 높은 성장잠재력을 인정받으며 오는 2023년까지 각각 매출 1조원의 목표를 내세웠다.

      비슷한 시기 이뤄진 두산의 면세사업 철수를 두고 직전 그룹총수인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 일가는 평판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박용만 회장이 두산을 이끌던 지난 2015년 11월, 면세점 사업 진출이 결정된 이 때는 핵심계열사인 두산중공업과 두산인프라코어가 구조조정을 거듭하고 순차입금이 10조원을 상회하던 시기였다. 면세업 사업은 특히 박용만 회장이 ‘새 돌파구를 찾는다’는 명목 하에 사재 100억원을 출연해 동대문미래창조재단을 만들 정도로 진두지휘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 박용만 회장은 그룹 총수 임기를 4개월 남짓 남기고 면세사업 진출을 확정지었고 아들인 박서원 오리콤 부사장이 전면에 등장했다. 보직은 ㈜두산 면세점사업부문 유통전략담당 전무로 “유통과 마케팅이 중요한 면세사업 특성상 광고회사 임원을 선임했다”는 것이 지주사의 입장이었다. 하지만 당시 매출 전망치 8000억원에 이르렀던 ‘확실한 수익원’ 두타면세점을 기반 삼아 그간 외부에서만 경력을 쌓아온 박 부사장에게 적절한 수준의 ‘성공 스토리’를 부여하려 했다는 시장의 의심도 상당했다.

      면세사업은 사드 여파와 업종 경쟁 격화라는 양대 악재를 겪으며 예상보다 빠르게 나빠졌다. 매출 전망치는 이듬해 5월 개점과 동시에 5000억원대로 떨어졌으며, 곧바로 적자 전환했다. 이 과정에서 박 부사장은 내부 반발을 뚫고 ‘심야형 면세점’ 콘셉트 등으로 반등을 꾀했다. 결과적으로 철수 시점에서 누적 적자규모 600억원을 남기며 경영능력에 대한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최근 ‘갑질 논란’에 휘말린 이상훈 ㈜두산 총괄기획 사장 역시 박용만 회장 일가의 영향력을 축소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상훈 사장은 2004년 두산에 입사한 인물로, 현재의 중공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할 것을 조언한 글로벌 컨설팅사 맥킨지 출신이다. 그는 입사 이래 줄곧 재무, 구조조정, 중장기 경영계획 수립 등 지주사 중추 업무를 담당하며 2000년대 그룹의 체질개선과 M&A를 주도했던 박용만 회장과 함께 동고동락했다.

      박용만 회장이 총수 역할을 이관하고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으로 내려오게 되고, 이상훈 사장이 총괄기획 사장으로 자리를 옮기며 지주사에서 박용만 회장의 복심(腹心)으로 남는 듯 했다. 하지만 이상훈 사장이 이웃 주민을 사찰하고 경비업체에게 두산건설을 동원한 압력을 가했다는 갑작스러운 '갑질' 논란에 휘말리며 입지가 흔들리게 됐다. 두산 관계자는 "사장 개인의 일이라 회사차원의 대응은 없는 상태"라며 "사퇴와 관련해서도 논의된 바 없다"고 전했다. 하지만 활동의 유무형 위축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 앞서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이 총수 역할을 이어받을 때 까지만 하더라도 양 측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지난 2015년 두산그룹 유동성 위기가 극에 달하자, 전임자 박용만 회장은 “지난 몇 년간 업무를 차근차근 이양해왔다”며 후선으로 물러나는 모양새를 취했다. 하지만 그룹의 유동성 위기를 불러온 근원이자, 현재 두산그룹의 가장 주요한 수익원이 된 두산밥캣의 모회사 두산인프라코어 만큼은 ‘남은 재무구조 개선’이라는 명목 하에 회장직을 유지하고 있다. 같은 기간 박정원 회장이 이끌던 두산건설은 2015년 한해 당기순손실 5207억원을 기록하던 시기였다. 때문에 ‘4세 승계’를 둘러싼 당위성과 구조조정 논란 등 남은 현안에 대한 부담은 박정원 회장이 그대로 짊어져야만 했다.

      두산그룹의 경영 실권(實權)은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박정원 회장에게로 기울고 있다는 평이다. 이상훈 사장 이외에도, 박용만 회장의 ‘오른팔’로 불리던 이재경 전 두산건설 회장은 35억원 상당의 고액 퇴직금 논란을 일으키며 현재 그룹을 떠난 상태다. 박정원 회장은 지난 7월 고(故)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의 지분을 절반가량 상속받는 등 지주 지분 5.81%를 보유하며 최대주주 지위를 유지하는 등 견제를 지속하고 있다.

      내년도 남은 DICC(두산인프라코어차이나) 관련 대법원 판결은 박용만 회장에게는 ‘마지막 쐐기’가 될 전망이다. 앞서 DICC의 지분 20%를 인수한 FI들은 기업공개와 공개매각 실패에 따라 "두산그룹이 협조 의무를 다 하지 않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8000억원에 이르는 규모와는 별개로, 2011년 거래를 주도한 핵심 인사들은 현재 이재경 전 회장을 제외한다면 대부분 각사로 모두 흩어져 승진했다. 차후 재편 결과에 따라 이들에 대한 책임론마저 부상하면, 당시 결과에 대한 최종적인 재가를 내린 박용만 회장은 차후 그룹의 승계구도를 짜는데 있어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 기업 지배구조 전문가는 “아직 두산그룹 실적이 안정됐다거나, 신사업 회사들이 성과를 내고 있다고 말하기는 이르지만 박정원 회장이 승계를 받던 당시에 비해서는 안착된 모습”이라며 “승계 후보군이 많은 두산의 특성상 예측이 힘들지만 이런 일련의 경영성과에 대한 평가는 시간이 지난 뒤 그룹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릴 때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