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손보사, 채권 팔아 이익 충당...'내년엔 뭐 먹고 살지'
입력 2019.11.11 07:00|수정 2019.11.12 09:17
    순이익 크게 감소…채권 매각해 이익보전
    시장 반응은 '싸늘', 이익 불안정해 주가 계속 빠져
    • 손해보험사들이 3분기 우울한 성적표를 받았다. 주요 손해보험사 순이익이 큰 폭으로 감소했다. 손해율이 크게 늘은 데다 경쟁심화로 사업비율도 늘었다. 이를 메우기 위해 채권 매각을 통해 이익을 실현했다. 이마저도 없었으면 사실상 ‘어닝쇼크’에 해당하는 실적이다.

      채권 매각을 통한 이익 실현은 장기적인 실적과 운용안정성을 고려하면 선택하기 어려운 카드다. 당장 내년에 또 손해율이 치솟았을 때 손보사가 수익 방어를 위해 쓸 수 있는 카드가 줄어든 셈이다.

      KB손해보험을 필두로 3분기 손해보험사 실적발표가 이어지고 있다. KB손해보험은 전년동기 대비 순이익이 7% 하락한 677억원을 기록했다. 자동차 및 장기 보험 손해율이 상승하고, 사업비가 증가한 탓이다.

      이는 아직 발표하지 않은 다른 손보사에 비하면 양호한 실적이다.

      신한금융투자에 따르면 다른 주요 손보사들은 KB손보보다 훨씬 큰 폭의 실적하락이 예상된다. 업계 1위 삼성화재는 전년동기 대비 21.2% 감소한 1868억원의 순이익 감소가 예상된다. 2위권 손보사인 현대해상은 29% 감소한 716억원의 순이익이 DB손해보험은 18.7% 감소한 1232억원의 순이익이 예상된다.

      심지어 한화손해보험은 전년 동기대비 순이익이 80% 감소했다. 장기위험손해율이 100%를 넘어섰다. 이는 보험을 팔면 팔수록 손해란 의미다. 다른 손보사에 비해 기업의 규모가 작아 비용이 많이 들었을 것이라는 평가다. 한화손보의 주가는 올해 3년내 최저수준으로 떨어져 액면가 이하인 3000원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PBR은 0.24배다.

      한화손해보험 관계자는 "기초체력이 약해서 그렇다고 생각된다"라며 "실손보험 등 손해율이 예상보다 커지며 업계 전체적으로 실적이 악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 주목할 부분은 이들의 순이익 감소를 상당부분 운용수익률로 메웠다는 점이다.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는 상황에서도 일부 보험사는 사상최고의 투자수익률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실제 운용을 잘했다기 보다는 채권매각을 통해서 투자이익을 실현했기 때문이다.

      회사별로 살펴보면 DB손해보험은 투자영업이익률이 4%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3년 중 최고치다. 보험영업에서 부진을 채권매각 등을 통하 투자수익으로 메운 탓이다.

      DB손보 관계자는 “수익을 내기 힘든 상황에서 채권처분 등을 통해 투자이익을 낼 것 같다”라고 말했다.

      현대해상은 투자영업이익률이 전년대비 0.7%포인트 오른 3.8%, 메리츠화재는 전년대비 1.1%포인트 오른 5.3%의 투자영업이익률이 예상된다. 메리츠화재의 경우 다량의 채권매각을 통해 투자 수익률을 끌어올린 것으로 파악된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삼성화재, 현대해상, DB손보, 메리츠화재, 한화손보 등 주요 손보사들이 우호적인 금리 환경을 반영해 상반기 대비 공격적으로 채권 매각 이익을 실현했을 개연성이 높다”라며 “이들의 투자영업이익률은 지난해 대비 0.3%포인트가 오른 3.6%가 예상된다”라고 말했다.

      보험사들이 궁여지책으로 보유채권까지 팔아가면서 순이익을 끌어올렸지만 시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삼성화재 주가는 최근 3년중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한때 30만원을 오가던 주가는 현재 22만원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올해 상반기 손보업계 논란의 주인공인 메리츠화재 주가도 하반기에 들어서면서 주춤거리고 있다. 올해 상반기 2만5000원 선을 오가던 주가는 현재 1만8000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상반기 다른 보험사들의 실적이 하락할 때 나홀로 선방했지만, 3분기엔 대규모 채권매각이익을 통해서 순이익 방어에 나섰다는 점에서 이익의 안정성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이 크다.

      문제는 채권매각이란 단기처방으로 앞으로 상황이 좋아지기 힘들다는 점이다. 경쟁은 치열해지고,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면서 보험을 팔아서도, 자산운용을 통해서도 이익을 내기 힘든 상황이다. 당장 보험업계를 둘러싼 환경이 나아지기 힘든 상황에서 또다시 채권매각을 통해 미래의 수익을 가져오는 과거의 패턴을 반복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천수답식 영업행태가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라며 “중장기 안정성보다는 당장의 순이익에 급급한 경영이 이어지고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