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감 고개 드는 현대차 지배구조 개편… 달라진 선결과제
정낙영 기자 | naknak@chosun.com | 2019.11.21 07:00
Edited by 이도현 차장 | dohyun.lee@chosun.com
print인쇄 print공유하기
+ -
글로비스 지분 가치↓ 주주 눈높이↑
비용 증가 및 주주친화책 수정 불가피
투자자 납득할 만한 청사진 마련해야

현대자동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이 무산된지 1년6개월이 지났다. 최근 정의선 부회장이 현대차의 청사진을 잇따라 내놓자 시장에선 그룹 지배구조 개편에 대한 기대감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개편 재개에 대해 뚜렷한 입장을 내놓지 않은 상황이다. 시장에선 워낙 다양한 시나리오가 존재하고 현재로선 새 개편안의 내용을 특정할 수 없다. 다만 지난해와 달라진 상황을 두고 작업 재개를 위한 선결 과제들이 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3월, 현대모비스의 모듈 및 국내 AS부품 사업을 인적분할해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는 지배구조 개편안을 발표했다. 당시 개편안의 초점은 ▲현대모비스→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구조를 해소하고 ▲현대모비스 중심 지배회사 체제를 구축 ▲정의선 부회장의 그룹 지배력을 높이는 데 맞춰졌다.

구체적 방식에 대한 전망은 엇갈리지만 새 개편안 역시 순환출자고리를 끊고 정몽구 회장 일가의 현대모비스 지배력을 확보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평이다. 지난 10월 대신경제연구소에서 이같은 내용의 현대차 지배구조 관련 리포트를 내놓자 연이어 다른 의결권자문사들도 동참했다. 해당 의결권자문사에 따르면 기관투자가로부터 요청이 있었고, 일부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세미나를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그룹이 어떤 방식을 택하든 사전정지 작업이 필요하다. 지난해보다 지배구조 개편에 드는 비용이 증가하고 자본시장의 눈높이가 한층 더 높아졌기 때문이다.

지난해보다 높아질 비용…추가재원 필요성

우선 현대엔지니어링의 상장을 통한 정의선 부회장 보유 지분의 시가평가가 필요해 보인다.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대주주 일가가 보유한 현대글로비스 지분의 활용도는 떨어졌다. 이를 보완할 추가 재원으로 현대엔지니어링의 존재감이 커졌다.

현대엔지니어링은 현대건설의 비상장 자회사(38.62%)로 현대글로비스와 함께 정의선 부회장의 자금 확보 창구로 꼽힌다. 정의선 부회장은 현대엔지니어링 지분 11.72%를 보유하고 있다. 정확한 시가평가가 이뤄지진 않았지만, 현대엔지니어링의 장외가(73만5000원)를 기준으로 정 부회장 보유지분 가치는 약 6000억원 안팎으로 추정된다.

11면상단

상장하지 않고 지분을 활용하는 방법도 있지만 시가평가를 받는 게 가장 합리적이란 평가다. 현대차그룹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정 부회장의 현대엔지니어링 지분은 이미 한 번 주목 받은 카드"라며 "상장은 문제의 소지를 줄이는 동시에 활용도를 높이는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엔지니어링 상장 필요성이 높아진 건 현대차그룹이 지난해와 같은 안을 선택하더라도 합병비율에서 대주주가 손해를 볼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안상희 대신경제연구소 본부장은 "분할신설 현대모비스의 재상장 없이 합병을 시도한다면 주주들은 또 반발할 것"이라며 "합병비율에서 현대글로비스 대주주가 양보를 하더라도 주주 반발을 피하는 게 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룹 내 계열사가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을 직접 매입하면 비용은 더 늘어난다. 11월14일 종가 기준 24만6000원으로 계산했을 때 5조5000억원 안팎이 필요하다. 이 경우 정 회장 일가가 보유한 그룹 내 계열사 지분 모두를 동원해야 한다. 과거 주목받았던 현대글로비스의 CKD사업 매각 방식은 지난해보다 후퇴한 안이라는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정의선 부회장이 보유한 그룹 내 계열사 지분을 활용하는 방안도 거론되지만 현대위아, 현대오토에버 등 정 부회장이 지분을 보유한 계열사 대부분은 상장이 완료된 상태다. 결국 현대엔지니어링 상장 움직임을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출발점으로 볼 수 있다는 시각이다. 아직까지 IPO 시장에서 현대엔지니어링 상장 관련 움직임은 관측되지 않고 있다.

주주 납득할 만한 친화책 및 청사진 준비해야

올해 2월 현대모비스가 발표한 3년간의 주주친화 정책의 수정도 불가피해 보인다. 현대모비스를 둘러싼 주주와 시장의 눈높이가 그만큼 더 높아졌기 때문이다.

지난 2월 현대모비스는 이사회를 열고 향후 3년간 1조1000억원 규모의 배당과 자사주 1조원 매입 후 4600억원어치를 소각하는 내용의 주주친화 정책을 발표했다. 현대모비스에 따르면 오는 12월23일까지 자사주 130만주를 3230억5000만원에 취득해 이중 625억원을 소각한다는 계획이다. 자사주는 0.6%에서 약 1.6%으로 1%포인트 가까이 늘어날 전망이다.

현대모비스가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인적분할하게 되면 자사주를 활용하는 모양새로 비칠 수 있다. 현대차그룹 지배구조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자사주 매입 규모가 크지 않더라도 주주친화를 내걸고 대주주에 유리한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국내 의결권자문사 한 연구원도 현대모비스의 자사주를 주의깊게 관찰하고 있다며 "자사주 소각 없이 인적분할하게 된다면 문제를 제기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현대차그룹은 과거 의사결정에서 주주가 소외된다는 지적을 수차례 받았다. 지난해에도 문제가 터지자 뒤늦게 주주가치 제고방안을 내놨다는 지적이 있었다.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한 자산운용사 한 관계자는 "지난해 실패의 쓴맛을 본 만큼 새 개편안을 추진하려면 주주가치 제고방안도 미리 준비가 돼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지배구조 개편의 마지막 기회로 인식되는 만큼 지난해보다 나아진 미래 청사진도 마련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현대모비스가 지배회사로서 어떤 역할을 수행할 것인지, 분할합병을 한다면 그에 대한 명분과 기대효과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이다.

올 한해 현대모비스는 현대차그룹의 주요 투자활동에서 존재감을 키우며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지만 아직까진 그룹 미래사업을 주도하는 역할은 못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내부에서도 지배구조 개편이 절실한 사안인 만큼 시장에서도 납득할 수 있는 방안이 나오길 기대하고 있다.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11월 18일 07:00 게재]

기사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