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노트]
오해·불신받는 국민연금 기금위, 주주권행사 재점검한다는데
정낙영 기자 | naknak@chosun.com | 2019.12.0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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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능후 장관 "가이드라인 고쳐 우려 불식하겠다"
가이드라인 아닌 시장의 기금위 불신이 본질
기금위원, 전문성 보완 요구에 "재벌과 결탁했나"
기금위 스스로 경영계 우려의 핵심근거 역할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가 29일 경영참여 목적 주주권 행사 가이드라인을 재논의하기로 결정했다. 경영계 반발로 기금위가 한 발 양보한 모양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장관이 경영계의 불필요한 오해가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기금위가 변화하지 않는 이상 우려를 잠재우긴 어려워 보인다.

이번 가이드라인은 지난해 7월 도입한 스튜어드십코드 후속 조치다. 국민연금이 지분을 보유한 '나쁜 기업'에 대해 이사 해임, 정관변경 등의 주주제안을 가능케 하는 내용이 담겼다. 주주권 행사의 내용과 절차를 투명하게 밝혀 시장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게 당초 취지였지만 경영계에선 기업 길들이기라며 크게 반발했다.

박 장관은 "가이드라인을 구체화해 우려를 불식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사태의 핵심을 파고든 답변이라 보기 어렵다. 가이드라인이 구체적이지 못해서 경영계가 반발한 게 아니라, 기금위를 믿을 수 없다는 게 본질이다.

시장이 기금위를 신뢰할 수 없는 이유는 기금위 회의록을 보면 명확해진다.

"기금운용위원회가 봉건주의와 계급주의 사이에 살고 있는가. 부모 잘못 만나 학교 많이 못다니고 그러면 기금위도 못 들어오는 구조인가?"

기금위 전문성 보완을 위한 운영개선안을 두고 근로자 대표가 한 말이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홈페이지에 올라온 회의록에 따르면 해당 위원은 위촉위원의 자격요건 기준 강화가 "재벌과 결탁해 노동자와 가입자 대표가 기금위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취지"라고 말했다. 결국 기금위는 금융·투자분야에 3년 이상 종사해야 한다는 위촉위원의 자격요건을 없애버렸다. 대신 상근 전문위원직을 신설해 3명의 외부전문가를 선출하되 의결권은 주지 않겠다는 '땜질처방'을 내놨다.

이는 불과 한 달 전의 일이다. 이번 가이드라인에 포함된 주주제안 방안도 주체는 기금운용본부지만 실질적으로 주주제안의 추진여부와 내용은 기금위가 결정한다고 나와 있다. 경영계가 과도한 우려를 표해도 반박하기가 어렵다.

현재 기금위는 총 20명으로 구성된다. 이 중 위촉직은 사용자 대표 3명, 근로자 대표 3명, 지역가입자 대표 6명, 외부 전문가 2명 등 총 14명이다. 나머지 당연직 6명은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포함한 장·차관급으로 정부 측 인사다.

700조원 규모 공적 연기금의 운용을 결정하는데 전문가가 2명 뿐이다. 비전문가로 구성된 노사정 형태 사회적 합의기구가 운용하는 것에 가깝다. 이해관계자가 추천한 전문가가 아니라 이해관계자가 직접 기금운용에 관여하는 경우는 국민연금이 유일하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에 관여했던 한 관계자는 "경총이랑 민주노총 관계자가 기금운용에 어떤 전문성을 가지고 있느냐"며 "민간펀드였다면 돈을 맡길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마찬가지로 이들이 주주활동을 통해 기업가치를 제고할 만한 역량이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장·차관이 기금위에 당연직으로 포함돼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에서 정부 존재감을 지우기도 힘들다. 정부가 관여하는 이상 국민연금의 행보가 기업가치 제고 목적이 아니라 기업을 옥죄는 모습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대통령 공약 때문에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한다고 한 시점부터 투자 기업의 주주로서 활동 명분이 퇴색했다고 볼 수도 있다.

결국 기금위 지배구조가 재벌보다 못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경영간섭, 연금사회주의 등 경영계 반발의 핵심 근거를 기금위 스스로가 제공한 셈이다. 기금위 스스로가 변화하지 않는 이상 어떤 형태의 주주권 행사 가이드라인도 시장의 신뢰를 이끌어내기 어렵다.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11월 29일 16:05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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