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는 손 뗐는데…저금리에 '항공기 금융' 뛰어드는 은행
입력 2019.12.11 07:00|수정 2019.12.12 09:27
    투자 방식·협력 통해 항공기 금융 진출하는 은행
    증권사는 외면한 3% 수익률…은행에겐 '매력적'
    주도적 플레이어는 불가능…매물 부족·독점 시장
    • 낮아진 수익률을 이유로 증권사는 대부분 철수한 항공기 금융 시장에 국내 시중은행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증권사에게는 성에 차지 않는 낮은 수익률이, 상대적으로 은행에게는 매력적으로 다가오고 있는 탓이다.

      그러나 투자할 항공사가 생각보다 많지 않은데다, 과당경쟁으로 이어질 경우 수익률이 지금보다도 더 낮아질 부담이 있어 오래 지속되기 힘든 '단기 유행'으로 보는 시각도 나온다.

      국내 은행들이 항공기 금융 시장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15년의 일이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하를 본격화하며 순이자마진(NIM)이 하락세로 접어들던 시기였다. 2018년 시장금리가 오름세로 돌아서자 뜸해졌다가, 2018년 하반기부터 다시 NIM 하락세가 시작되자 항공기 금융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양이다.

    • 지난 19일 우리은행은 국내 시중은행 최초로 베트남 민영항공사 비엣젯(Vietjet) 항공기 금융을 주선했다고 밝혔다. 에어버스321(A321) 10대를 구매하는 데 필요한 1억4000만달러를 직접 대출해주고 우리은행은 대출이자를 받는 식이다. 단기적인 비행기 인도 전 금융이라는 설명이다. 직접대출의 경우 리스사가 중간에 끼지 않기 때문에 운용리스에 비해 마진이 더 나올 수 있다.

      앞서 2015년 국내 시중은행으로는 최초로 포트폴리오 항공기금융 주선한 하나은행은 이듬해 항공기 임대시장 세계 1위 업체인 '에어캡'(AerCap)과 1억달러 규모의 항공기금융을 단독 주선했다. 지난해 9월 'JOL'(Japanese Operation Lease) 방식의 항공기금융을 주선해 세제혜택 가능성을 열었고 올해 3월에는 리스사 '아레나 에비에이션 캐피탈'(ACC·Arena Aviation Capital)과 전략적 파트너십 구축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해 향후 AAC가 추진할 항공기금융 주선의 우선권을 장기적으로 확보했다.

      지난 21일엔 하나은행을 주선인으로 한 국내은행 6곳(하나은행·KB국민은행·신한은행·우리은행·기업은행·농협은행 등)은 대만 중화항공 항공기 3대를 인수하기 위한 대출을 3개월 전부터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해당 은행들은 모두 선순위에 들어간다.

      항공기금융 전문회사를 끼고 투자자로 나서는 모습도 눈에 띈다. 지난 3월 국민은행은 해외 항공기 금융 전문 매니지먼트사 '노부스 에이비에이션 캐피탈'(Novus Aviation Capital)이 운용하는 항공기 금융펀드 2건(Tamweel Aviation Finance Ⅱ·Cedar Aviation Finance)에 총 2000만달러를 투자했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4월 IBK기업은행과 함께 중국계 항공기 리스 전문회사인 CMIG Aviation에 항공기 구매자금 8000만달러를 금융 주선하고 직접 대출을 해주기도 했다.

      NIM 악화로 인한 이자이익 부문 수익성 악화가 은행을 항공기 금융에 눈을 돌리게 한 핵심 원인으로 지목된다.

      현재 주요 시중은행의 NIM은 1%대 중반에 머물고 있다. 제비용을 제외하고 평균적인 예대마진이 1%대라는 말이다. 반면 항공기 금융은 가장 안전한 선순위로 들어가는 경우에도 최소 3%에서 최대 6%까지의 투자수익률을 낼 수 있다.

      게다가 보수적으로 운용해야 하는 은행에게 적합한 투자처라는 평가다. 항공기 금융은 실물이 있어 담보 안정성이 높을 뿐만 아니라, 선순위의 경우 거의 원금 보장까지도 가능하다.

      2010년대 초반 항공기 금융 시장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던 국내 증권사는 최근 대부분 항공기금융에서 손을 떼고 있다. 주로 단일 항공사나 단일 기종을 주로 선호하다보니 중순위 대출 경쟁이 치열해지며 만족스러운 수익률을 얻기 힘들어진 것이다. 3%대 수익률은 조달 비용이 낮은 은행엔 매력적이지만, 고수익을 원하는 자금이 많은 증권사 입장에선 받아들이기 어려운 수준이라는 지적이다.

      항공기 금융이 새로운 먹거리로 떠오르고 있지만 국내 시중은행이 주도권을 쥐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투자할 만한 항공사가 다른 나라에 비해 절대적으로 적은 탓이다. 해외 항공기 금융의 경우 중국이나 일본 등 아시아권 은행에 밀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중국의 경우 많은 자국 항공사를 기반으로 항공기 금융을 주도적으로 주선할 수 있다. 국내 항공사인 아시아나항공이나 대한항공은 미국 수출입은행 등으로부터 낮은 금리로 항공기 금융을 제공받고 있다.

      1~3위 리스사가 독점하고 있는 항공기 금융 시장에 시중은행이 진출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를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특히 '저리'를 내세워 다수의 시중은행이 시장에 진출할 경우 과당경쟁 우려가 제기된다. 수익률이 낮아지는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는 셈이다.

      먹을거리가 줄어들며 대체투자처를 발굴해야 하는 증권사들이 항공기 금융에 다시 관심을 가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시중 금리가 계속 낮아지고 투자할 물건이 없어질 경우 투자자만 모집된다면 증권사도 다시 항공기 금융에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