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 턴어라운드 기대감 고조…'낙관론' 보다 '굳히기' 필요
입력 2019.12.18 07:00|수정 2019.12.19 10:03
    내년 대규모 수주 줄줄이...호황 예고
    현대重-대우조선 합병 승인여부 주목
    삼성중공업은 그룹 차원 의지 부족해
    • 조선업계가 잇따른 수주 소식에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내년 수주 결과에 따라 업황이 반등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곳곳에서 포착되지만 높아진 기대치에 미치지 못할 경우 장기침체 사이클로 접어들 수 있다는 우울한 전망도 나온다. 결국 조선사들에 필요한 건 ‘과도한 낙관’이 아닌 ‘침착한 굳히기’라는 평가다.

      조선업은 지난 몇 년간 최악의 저점 구간을 지났다. 수주 잔고가 목표치를 밑도는 경우가 많았고, 부진이 장기화하는 상황이었다. 경쟁 국가의 추격도 거셌다.

      영국의 조선·해운 시황 분석기관 클락슨 리서치(Clarkson Research)에 따르면 한국 조선사들은 올해 11월까지 712만CGT(36%) 일감을 확보했다. 1위는 지켰지만 2위 중국이 턱밑까지 붙었다. 지난해 12%포인트였던 수주 점유율 격차가 올해 1%포인트까지 좁혀졌다. 11월만 한정하면 한국은 일본에도 밀린 3위였다. 한국의 주력인 초대형 유조선(VLCC)과 14만㎥ 이상 LNG운반선 발주량이 전년 대비 각각 58%, 30% 하락한 영향이 컸다.

      LNG운반선 발주는 내년 다시 물꼬가 트일 전망이다. 카타르페트롤리엄(QP)이 진행하는 100척 규모 프로젝트, 사우디 아람코와 국영 해운사 바흐리의 12척 신조 발주가 모두 내년 예정돼 있다. 이외에 모잠비크, 골든패스, 아틱 프로젝트들도 줄줄이 대기 중이다. 한화투자증권은 내년 80척 내외의 발주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했는데 이는 연간으로 역대 최대 수준이다.

      한국 조선사에 호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박무현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작년 10월부터 연비가 높은 선박들의 용선료가 높아지고 있다"며 “한국 선박은 경쟁국 대비 연비 경쟁력을 갖추고 있어 결국 글로벌 수주 경쟁은 한국에 유리하게 돌아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 내년은 특히 조선업계에 중요한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조선업 투자자들은 발주 소식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계약과 불발에 따라 투자심리가 출렁였다. 의구심이 걷히지 않은 투자자에 비해 조선업계에선 '이번에는 진짜 호황일 것'이라는 확신이 엿보인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빅3사는 수주 경쟁력을 갖췄다는 평을 받는다. 다만 각 회사들이 신경써야 할 개별 과제는 많다.

      현대중공업그룹은 내년 대우조선해양과의 합병이라는 큰 산이 남아 있다. 현재까지 경쟁 제한성이 크지 않은 카자흐스탄만 기업결합을 승인한 상황이다. 싱가포르는 자국 선주사들의 피해 가능성을 언급하며 우려를 표했다. 한 국가라도 반대하면 합병 성사 가능성은 크게 옅어진다.

      조선업계는 기업결합 심사 결과 ‘조건부 승인’이 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독과점을 우려해 특정 선종 비율 제한 등을 현대중공업그룹에 요구할 수 있다. 두 기업이 합병하면 합병법인의 세계 VLCC와 LNG운반선 점유율은 72.5%, 60.6%까지 오른다. EU의 심층심사 건수와 불승인 조치가 최근 늘고 있는 점도 불안감을 키운다.

      조건부 승인으로 결론나면 현대중공업그룹은 통합법인 대비 수주 경쟁력이 떨어져 내년 호황 사이클에 올라타도 그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다. 합병이 최종적으로 불발할 경우 재무나 수주 경쟁력 면에서 비교적 약한 입지의 대우조선해양은 '독자 생존'에 대한 부담을 감내해야 한다.

      삼성중공업은 일회성 비용으로 인한 대규모 적자가 부담이다. 지난 2분기 엔스코사(Ensco Global IV)와의 중재 발생, 3분기 트랜스오션(Transocean)의 드릴십 인수 거부로 대규모 적자가 발생했다. 내년 수주전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상황이다.

      그룹 차원의 지원 의지가 부족한 점은 아쉽다. 삼성중공업은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변방’에 가깝다는 평을 받는다. 그룹에서 매년 수천억원의 적자를 내는 곳은 삼성중공업이 유일한 데다 애초 대우조선해양 딜 협상에서도 외면 받았다. 이재용 부회장의 재판 등으로 관심에서 더 멀어졌다. 말 그대로 독자생존해야 한다.

      국내 조선사들은 수주의 질적인 면도 고려해야 한다. 선가 인상으로 고정비 부담은 다소 줄었지만 건조비용도 그만큼 늘어 수익성 개선이 제한적일 수 있다.

      이봉진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LNG선의 건조 척수가 이제껏 국내 조선소가 건조해보지 않은 수준까지 올라올 예정인데, 원자재 조달 및 인력 충원 등이 원활하지 않을 경우 건조비용이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조선업계는 대체로 내년 선박 발주량이 올해보다 크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다. 그러나 이 역시 과거 부진했던 업황 대비 기저효과일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 LNG선박뿐 아니라 탱커선, 컨테이너선의 내년 전망치 모두 대체로 밝지만 대부분 지난해와 올해를 기준점으로 잡고 있다.

      일감이 늘어나는 속도와 주력 선종 다양화 등에 더 주목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한 증권사 조선업 담당 연구원은 "발주 증가 속도가 둔화할 경우 조선업 사이클상 침체 국면으로 들어가 1년여 이상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며 "물론 올해보다는 발주가 늘겠지만 일감 증가 속도에 더 주목해야 하고, 기존 LNG운반선에 치우쳐 있는 주력 선종도 다른 고부가가치선으로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