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G 주가 약세 뒤에 'ESG' 있었다...이미 국내 증시도 '영향권'
입력 2019.12.24 07:00|수정 2019.12.26 09:40
    SRI 강화되며 유럽 중심 외국인 매도세
    소셜카지노회사 증시 입성 실패하기도
    뜨겁던 '마리화나'株 주가 10분의 1토막
    단기간에 ESG 쏠림 커져...대안 모색 움직임도
    • 올해 글로벌 투자 트렌드가 된 ESG(환경ㆍ사회ㆍ지배구조)가 이미 국내 증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표적인 배당주 KT&G의 주가가 연말임에도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고, 한 소설카지노 게임업체는 수요예측 부진으로 상장을 철회해야 했다.

      역사적으로 거의 항상 벤치마크 지수를 아웃퍼폼(outperform;시장 수익률 상회)해왔던 '죄악주'(sin-stock) 펀드들도 올해엔 부진한 모습이다. ESG는 이미 내년 국내외 증시 전망에 핵심 변수가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담배제조업체인 KT&G의 주가는 최근 10만원선 아래로 내려앉으며 2015년 이후 최저점 수준으로 밀렸다. 배당 및 실적 개선 기대감으로 10월 초 반짝 오르기도 했지만, 이후 매물이 쏟아져나오며 연 고점 대비 10%가량 주가가 하락한 상태다.

      KT&G는 배당성향 50%에 지난해 배당액 기준 현 주가의 예상 시가배당률이 4.5%에 달하는 주식이다. 올해 국내 증시 최고 히트상품 신한알파리츠의 예상 시가배당률보다도 높다. 그럼에도 불구, 배당주의 가치가 올라야 할 연말에 오히려 주가가 역주행하고 있는 것이다.

    • 주가 약세의 핵심 원인은 외국인 투자자 수급이다. 올해 외국인들은 KT&G 주식을 연중 내내 매도했다. 올 한해 6750억여원어치를 매도했는데 이 중 4200억여원이 11월 이후 집중됐다.

      매도 주체는 유럽을 중심으로 한 해외 롱텀(장기투자) 펀드로 추정되고 있다. ESG의 한 갈래인 사회책임투자(SRI) 규정 강화에 따라 대표적인 죄악주 KT&G 매도에 나섰다는 것이다. 국내 연기금과는 정반대의 움직임이다. 올해 KT&G 국내 기관 순매수 3330억여원 중 1970억여원이 연기금에서 들어왔다.

      최근 홍콩 소재 소셜게임업체 미투젠이 기업공개(IPO)를 철회한 것도 ESG 강조 흐름이 한 이유가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투젠의 핵심 캐시카우(현금창출기반)는 소셜카지노게임이다. 이 때문에 국내 연기금의 참여가 저조했고, 해외 투자자들도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제시한 공모희망가 밴드 안에서 공모가를 결정하기가 어려워지자 결국 철회를 결정한 것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최근 1~2년 사이 ESG에 기반한 '착한 투자'의 수익률이 상대적으로 좋았던 덕분에 이를 추종하는 자금 규모가 급격히 늘어났고, 무시할 수 없는 수준으로 커졌다"며 "이미 선진국 증시는 이런 영향을 받고 있고 국내 증시에까지 파급 효과가 미치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 증시라고 상황이 크게 다르진 않다. 지난해 나스닥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캐나다 소재 의료용 마리화나(대마초) 기업 틸레이는 상장 1년 반만에 공모가(주당 17달러) 수준으로 주가가 돌아왔다. 틸레이 주가는 상장 직후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장중 한때 210달러 이상으로 거래되기도 했다. 현 주가는 고점 대비 90% 가까이 떨어진 수준이다.

    • 미국 증시의 대표적 죄악주 펀드 중 하나인 상장지수펀드 ACT(AdvisorShares Vice ETF)의 올해 연간 주가 상승률은 17.6%였다. 절대 수익률로만 보면 높지만, 같은 기간 미국 S&P500 지수가 27.3% 올랐다는 점을 감안하면 10%포인트나 언더퍼폼(underperform;시장 수익률 하회)한 셈이다. ACT는 담배와 마리화나, 술 등 죄악주 중에서도 방위산업과 레저를 제외한 기업에 주로 투자하는 것으로 유명한 ETF다.

      핀란드 알토대학교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1985년부터 2015년까지 이른바 '죄악주'들은 시장 수익률을 평균 4.7%포인트 상회했다. 2008년부터 2015년까지로 압축하면 16.3%포인트 상회했다. 오랜 기간 검증된 투자 전략이 불과 1~2년 사이 뒤집어진 것이다.

      이미 글로벌 ESG 투자 자산 규모는 30조달러(3경5000조원) 수준으로 커졌다. 국내에서도 국민연금이 운용 자산 내 ESG 관련 규정 강화를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금 관측되는 새 흐름은 '전초전'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 또한 한 때의 유행에 그칠 수도 있다는 지적도 있다. ESG는 그 자체로 옳아서 트렌드가 된 게 아니라, 수익률을 증명해냈기 때문에 트렌드가 됐다는 것이다. 투자시장에서는 자금이 지나치게 한 테마에 몰리면 가격을 끌어올려 수익성을 악화시킨다는 점에서, ESG가 시장에서 영향력을 키우는만큼 그에 대한 대안을 찾는 움직임도 활발해질 거라는 전망이다.

      실제로 지난 30년간 죄악주가 시장 수익률 대비 아웃퍼폼할 수 있었던 것도 제한된 수급이 가격을 크게 떨어뜨린 결과라는 게 알토대학교 연구의 결론이다. 자산시장의 성장과 함께 수요가 일부 회복되자 저점에 매수한 죄악주 펀드들은 큰 수익을 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한 중견 자산운용사 주식운용본부장은 "국내 증시는 외국인 수급이 좌우하는데 최근 외국인들이 ESG에 상당한 신경을 쓰고 있으니 시장에 영향이 없을 수 없다"며 "미국이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ESG투자를 도입하기 시작했고 일본과 중국도 제도화에 나서고 있는만큼 일단 내년은 ESG가 시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