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입찰 무효' 수난시대…'보증금 폭탄'만 떠안은 건설사
입력 2019.12.26 07:00|수정 2019.12.27 10:07
    사업비 7조 ‘한남 3구역’ 재입찰 선회 가닥
    현대·GS·대림, 재참여 유력하지만 완주 ‘불투명’
    입찰 보증 4500억원…현대, 이미 갈현서 소송 중
    부동산 정책 강화로 타 사업장 번질 우려
    • 서울 주요 재건축·재개발 사업이 잇달아 경색 국면으로 돌입하며 건설사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유무형 손실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타격은 시공사 선정 전후로 불거지는 입찰보증금 문제인데 금액 규모가 작지 않아 불이익이 상당할 전망이다. 각 사들은 법률 자문을 통해 대응책 마련에 나섰지만, 다시 고삐를 죄는 부동산 정책 속 정부와 법원이 정비 사업에 촘촘한 잣대를 대고 있어 돌파구 마련이 쉽지 않아 보인다.

      총 사업비 규모가 7조원에 달하는 한남 3구역 재개발 사업은 최근 조합 이사회 측에서 국토교통부(국토부)와 서울시의 특별점검 결과를 받아들여 ‘시공사 재입찰’ 안건을 의결했다. 당초 일부 관계자들은 사업 지연을 우려하며 현대건설·GS건설·대림산업 등 기존 입찰 제안사와의 수정 계약을 고려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남은 사업 과정에서 담당 지자체인 서울시와 용산구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재입찰이라 하더라도 정부의 특별점검이 구속력 있는 조치는 아닌 탓에 현대건설과 GS건설, 대림산업의 사업 참여는 어렵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문제는 완주의 불투명성이다. 현행법상 사업의 진행 주체는 조합 측에 있어 이들을 포함해 진행하는 것은 자유지만, 특별점검 이후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고 있어 변수가 커졌다. 추후 건설사가 사법처리를 받게 되면 국토부와 담당 지자체는 사업 인가 불승인과 참가 자격 제한 등 행정처리를 진행해야만 하고, 이 과정에서 조합은 해당 건설사를 배제하며 입찰보증금을 몰수할 확률이 높다.

    • 현대건설은 최저 이주비 지원을 명시해 위법성 소지가 존재하는 상황이다. 재건축 기간 동안 거주할 주택을 위해 지원하는 이주비 대출에서 3사는 모두 기준 LTV(주택담보비율)인 40%를 초과하는 보장안을 내놨다. 다만 현대건설은 최저 이주비(5억원)와 초과분(30%)에 대한 무이자 제공을 함께 제안한 상황이라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 위반 가능성이 클 것으로 지적됐다. 검찰 수사에도 이는 주요한 쟁점이 되고 있다.

      GS건설은 일반분양가 기준 3.3㎡당 7200만원(분양가 상한제 미적용)의 고액 가격을 보장하려 했던 점이 국토부의 점검에서 문제시됐다. 조합원 분양가를 절반 수준(3.3㎡당 3500만원)으로 유지하겠다고 한 탓에, 조합 측에 간접적으로 재산상 이익을 확약했다고 볼 여지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GS건설 측이 검토를 거친 뒤 자신들에게 적정 수준의 이익이 날 수 있는 가격을 제안했음을 증명해야만 책임이 감면될 수 있다는 것이 법조계의 분석이다.

      법무법인 광장에 법률 자문을 받으며 대응에 나섰던 대림산업은 논란이 된 자사의 ‘임대주택 제로’ 공약에서 다소 부담을 더는 모양새다. 대림산업의 공약은 계열사 대림AMC를 통해 임대주택 가구를 전량 인수하고, 이를 민간에 임대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현행 도정법상으로는 조합에게 전체 가구의 15% 이하를 임대주택으로 지을 의무만 부여하고, 실제 운영 방식은 하위법인 서울시 조례 일부에 의지하고 있어 위법성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법조계에선 전반적으로 큰 문제가 되진 않을 것이란 관측도 존재한다. 한 재건축 전문 변호사는 “개별 회사들을 뜯어보면 상황은 조금씩 다르지만, 국토부의 해석과 형사처벌의 잣대라는 것은 엄연히 다른 사항이다”며 “각 사마다 반론할 지점들은 있어 보인다”고 전했다.

      다만 서울시와 국토부의 입장은 굳건하다. 당초 점검 결과를 발표하며 서울시는 “우리가 의도한 타깃은 시공사들”이라며 “검찰과도 법률 상담을 마쳤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국토부 관계자 역시 “조사 결과로는 위법성이 확실시된다고 본다”며 “사업이 진행돼버리고 행정 처리가 진행된다면 일이 너무 커지니 지금이라도 조합이 조치를 취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건설사의 금전적 손실은 가시화하고 있다. 추후 사법처리로 인해 건설사가 시공사 지위를 박탈당할 경우 이들이 걸어놓은 입찰보증 금액 4500억원(각 사별 1500억원)은 모두 몰수될 수 있다. 사업 1개 건에서 발생한 일이고, 한 해 이들 3사의 평균 영업익이 약 9000억원임을 감안하면 마냥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닌 셈이다.

      실제로 현대건설은 사업비 총 2조원 규모의 서울 갈현 1구역 재건축 수주에서 조합 측과 입찰보증금 1000억원에 대한 소송을 진행 중이다. 조합은 지난 10월 “일부 도면 미제출로 인한 결함과, 담보를 초과하는 이주비(2억원)을 보장하는 등 불법 소지의 제안서 등으로 사업 일정이 지연됐다”며 현대건설의 입찰을 무효화하고 보증금을 몰수하기로 의결했다. 이는 곧 소송전으로 번졌지만, 재판을 맡은 서울서부지방법원은 현대건설의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현재 별도의 본안 소송이 진행되고 있지만 현대건설의 회수 여부는 불투명하다.

      이 같은 현상은 지방으로도 번지고 있다. 올해 지방의 주요 재건축 사업 중 하나로 꼽히는 대구 수성지구 2차 우방타운도 위법성 논란에 휩싸인 상황이다. 조합 측에서 “입찰에 참여한 HDC현대산업개발이 원안 공사비와 대안공사비를 이중으로 제안하고, 용적률도 오기했다”며 문제를 제기했고, 최근 이에 관해 수성구청이 ‘규정 위반’ 공문을 회신했다. 이미 조합은 법률 자문을 통해 입찰보증금 200억원의 몰수를 검토한 것으로 알려진다.

      정부의 부동산 안정화 대책이 쏟아지며 논란에 휘말릴 사업장이 더 나올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이미 장위 6구역처럼 국토부가 현장조사를 마친 사업장이 꽤 된다”며 “최근 대책으로 분양가상한제 범위에 들어간 재건축 단지들도 있고, 사업장 상시 점검도 강화될 것으로 보여 일부 회사들은 문제될 만한 곳들이 생길 수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