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깔없는 롯데 유통업, 내년에도 기대감 없다
입력 2019.12.30 07:00|수정 2019.12.31 11:42
    유통BU장 강희태 부회장 임명에 물음표
    변화 필요한 시기에 기회 놓쳤단 평가
    오프라인 고정비 해소 위한 구조조정 필요
    • 2019년은 유통업체들에 유독 혹독했던 한 해였다. 내수 경기 침체로 유통업 전반이 업황 부진을 겪고 있지만 경기 여파라고만 하기엔 각 유통업체별 문제가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특히 롯데그룹은 이번 인사 발표로 여전히 내부적으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내 그나마 남아있던 기대감도 사라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롯데그룹은 최근 2020년 정기임원인사를 발표했는데 롯데쇼핑 대표이사 겸 신임유통 BU장으로 임명된 강희태 부회장이 눈에 띈다. 롯데백화점 대표이사 사장에서 승진한 강 부회장은 백화점과 마트, 슈퍼, 이커머스, 롭스 등 14개 유통 계열사를 총괄하게 된다.

      이번 인사 개편을 두고 유통업계엔 실망스럽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통상 그룹의 정기임원 인사는 올해 사업에 대한 자체 평가와 내년 대비 방향을 알 수 있는 이벤트로 해석된다. 실적이 부진했던 올해는 그렇다치고 내년에 반전을 꾀할 수 있는 인사를 기대했는데 남아 있던 기대감마저 잃게 만들었다는 평가다.

      한 증권사 유통 담당 연구원은 "대폭 교체하긴 했지만 외부인사 수혈 등 특별한 부분이 없는 데다 내부적으로 약간 슬림화만 된 수준이라 회사에 큰 변화를 가져올 거라 보지 않는다"며 "변화가 필요한 시기에 적합한 기회를 놓쳤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증권사 유통 담당 연구원은 "기존 각 사업부 대표를 없애고 강희태 부회장에게 그룹 유통 총괄을 맡겼다는 것은 앞으로 발생할 결과에 대한 공과를 모두 지우겠다는 것"이라면서 "결국 이번 인사는 신동빈 회장이 리스크를 지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라고 지적했다.

      롯데그룹은 유통을 화학과 함께 그룹의 핵심 축으로 두겠다고 공언했지만 정작 그룹 차원에서 유통을 키우려는 의지도 비전도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룹의 오랜 숙원 사업이었다던 유통 채널 통합은 결국 이익 창출로 이어지지 못했다.

    • 그룹 내 유통사업을 총괄하는 롯데쇼핑은 3분기에 시장 기대치를 훨씬 하회하는 실적을 내놨다.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56% 감소했으며, 당기순손실은 232억원으로 적자전환했다. 마트와 슈퍼 등 오프라인 할인점 부진이 컸다. 롯데마트의 할인점 부문은 판관비를 대폭 줄이며 허리띠를 졸라맸지만 영업이익이 같은 기간 61.5% 감소했다. 경쟁사의 대형 할인점과 경쟁하기 위한 저가 전략으로 인한 비용 부담과 마진율 감소가 실적에 반영된 것이다.

      온라인 비중을 늘리면서 트렌드를 따라가려 노력하고 있지만 온라인 사업은 마진율이 낮은 데다 마진율 높은 오프라인 사업은 오히려 매출 성장률이 역신장하고 있어 그룹 내부적으로도 고민이 많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오프라인 사업의 가장 큰 걸림돌인 ‘높은 임차료’ 등 고정비를 줄여야 하는 상황이다. 점포 일부를 유동화하는 시도를 하긴 했지만 한계가 있다는 평가다. 대형마트 임차면적을 늘리면서 임대차 점포로 재임차를 두는 식으로 수익 대안을 냈지만 임대비용이 추가 발생한 데다 수익성 낮은 점포 정리도 매장면적 및 인력 효율화 수준에 그친다는 평을 받는다.

      내년엔 부진한 점포 위주로 구조조정 속도에 가속화가 붙어야만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유통업계는 올해 특히 부진했던 마트, 슈퍼, 롭스에 주목하고 있다. 고정비 부담이 높은 할인점과 H&B스토어는 특히 영업이익을 내기 쉽지 않다. 이들 사업이 매물로 추후 나오더라도 경쟁력이 없어 인수 의지를 보일 만한 곳이 많지 않다는 의견도 나왔다.

      그나마 변화를 기대해 볼만한 이커머스 사업은 전혀 감도 잡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티몬 인수설이 최근 재점화했는데 인수설이 시작된 때와 비교해서 여전히 제자리걸음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대체로 “트렌드에 끌려만 다니면서 소비자 관심을 리드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응이다.

      올해 매출을 견인했던 백화점도 내년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내부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올해는 백화점이 어느 정도 이끌었지만 시장 기대치엔 미치지 못한 수준"이라면서 "지난 3년간 백화점에서 비용을 슬림화하면서 이익을 방어해왔지만 내년까지 지속되긴 어렵다. 특히 경쟁사 대비 비수도권 점포의 비중이 높아 주력 캐시카우가 될 명품 비중은 경쟁사인 신세계를 따라잡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시장은 ‘롯데만의 색깔이 없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진단한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시장 기대치를 훨씬 하회한 것도 악재지만 롯데만의 경쟁력 있는 사업도 하나 없는 건 문제”라며 “신선식품은 이마트의 SSG닷컴, 배송은 쿠팡, 최저가는 티몬, 명품은 신세계백화점 등 각자 강한 섹터가 하나쯤은 있지만 롯데엔 이렇다 할 강점이 없다. 결국 소비자 입장에서 굳이 롯데를 선택할 이유가 없는 셈”이라는 입장을 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