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손해보험, M&A 2달만에 임원대량 해임…누구의 의중?
입력 2019.12.30 07:00|수정 2020.01.02 15:12
    지난달 인사에서 비등기임원 절반 물갈이
    계열사 반발시 향후 캡티브 물량보전 우려
    JKL “재계약 안했을 뿐”…롯데 “전혀 관여 안 해”
    • 롯데손해보험이 사모펀드(PEF) JKL파트너스에 인수된 후 2개월만에 기존 임원진 절반 이상에 대한 '물갈이'가 이뤄졌다. 대주주 변경 이후 경영진ㆍ임원 변동은 일반적인 사안에 해당된다. 그러나 대기업 그룹이 지분 일부를 남기고 사모펀드에 계열사를 매각하는 과정에서 임원들의 '그룹 복귀' 없이 대규모 해임을 진행한 것은 이례적인 경우에 해당된다.

      이번 인사를 두고 ▲임직원 고용보장 약속 논란 ▲롯데손해보험의 롯데그룹 캡티브(Captive)물량 보전 여부 등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JKL파트너스는 지난 5월 롯데그룹과 롯데손해보험 인수 계약을 체결했다. 이어 10월 금융당국의 승인을 거쳐 구주를 인수(3734억원)하고 유상증자(3562억원)를 진행했다. 이후 JKL파트너스는 자사 최원진 전무를 롯데손해보험 새 대표이사로 취임시켰고, 직전 김현수 롯데손보 대표는 롯데물산 새 대표이사로 12월 인사발령을 받았다. 이 밖에 사외이사들도 바뀌어서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명예회장,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 등이 새로 참여했다.

      하지만 임원인사에는 대대적인 해임이 진행됐다.

    • 기존의 18명의 롯데손보 미등기임원 가운데 절반 가량인 모두 롯데그룹으로 복귀하지 못하고 사실상 해임됐다. 올해로 임원 재직 9년을 채우는 김도한 법인영업본부장을 비롯, 최기림 영지원본부장 등 전무급 2명이 옷을 벗었다. 업무서비스본부ㆍ영남영업본부ㆍ일반투자부문ㆍ법인영업1부문ㆍ장기업무부문ㆍ자동차업무부문 수장들이 모두 직책을 유지하지 못하는 동시에, 롯데그룹 복귀도 하지 못하게 됐다. 특히 재직 기간이 긴 고참급 임원들의 퇴임이 많았다. 재직 3년 이상 임원 중 회사에 남은 경우는 이상희 자산운용본부장과 박중언 리스크관리부문장 두 명 뿐이었다.

      대기업의 PEF로 계열사 매각과정에서는 직원들에 대한 수년간의 고용보장과 함께, 임원들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계약 연장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대기업 입장에서는 계열사 매각 과정에서 '고용' 문제로 잡음이 일지 않는 것이 먼저인 데다, 그간 수고했던 임원들에 대한 보상차원에서 필요하다. 새로 주인이 되는 PEF 입장에서는 해당 대기업에서 발생하는 '먹거리', 이른바 캡티브 물량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대기업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기존 임원 퇴임이 진행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게다가 롯데손보는 그간 김현수 전 대표가 여러 차례 고용 안정에 노력하겠다는 뜻을 드러내왔다. 본계약 당시에도 계약에 임직원 고용 안정을 보장하고 롯데그룹과 우호적 관계 유지를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임원들에 대한 '칼바람 해고'가 진행되면서 롯데손보는 물론, 그룹 안팎과 투자업계에서도 큰 논란이 일어났다. 남은 임기 몇 개월만 채우라고 등 떠민 모양새인 데다 딱 2개월만의 인사라 임원들에 새 주인의 마음을 끌 만한 시간이 많이 주어지지 않았다. 이로 인해 업계에서는 JKL파트너스를 믿고 있다 허를 찔린 것 아니냐는 반응도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특히 롯데 계열사들 사이에서는 이번 인사를 놓고 격앙된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일부 해임된 임원은 보험전문가가 아니라 '그룹에서 내려보낸' 인사란 평가가 있었던 터였다.

      이러다 보니 당장 이번 인사로 롯데손보의 '사업'에 악영향이 미칠 우려도 제기된다.

      현재 롯데손해보험은 일반계정 및 퇴직연금부문의 롯데그룹 의존도가 약 30%에 달한다. 특히 퇴직연금 영역에서 강점을 보이는데 3분기말 기준 전체 자산(15조1339억원) 중 절반 가까이를 퇴직연금(7조44억원) 자산으로 채우고 있다. 그리고 퇴직연금은 롯데그룹 계열사로부터 받아오는 물량이 절대적이다.

      캡티브 물량이 유지되려면 롯데그룹의 헤드쿼터인 지주사와 관계는 물론, 각 롯데 계열사와 관계도 우호적이어야 한다. 롯데손해보험 매각 전반을 지휘하는 것은 지주 차원에서 이뤄지더라도, 정작 그룹의 캡티브 물량을 책임져 주는 곳은 각 계열사들이기 때문. 특히 최근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강력한 제제로 인해 계약 과정에서 그룹 캡티브 물량을 공식적으로 보장해주기도 쉽지 않은터라 이렇다 할 '안전장치'를 계약서에 담는 것도 강제화하기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롯데 출신들에 대한 대대적인 해고가 일어났다.

      이번 인사가 실제로 누구의 '의중'이었는지에 대한 반응과 입장은 모호하다.

      JKL파트너스 측은 “계약을 무시하고 임원들을 내보낸 것이 아니라 성과에 따라 평가해서 재계약을 하지 않은 것 뿐”이라며 “이번 인사가 난 임원들에 대해서도 롯데그룹의 문화대로 2년간 상담역으로 예우하기로 했다"라는 입장이다.

      다만 해임 자체가 JKL파트너스 단독 의사결정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룹 물량 보전을 당연히 최우선으로 따지는 PEF로서는 굳이 대기업 의사에 반하면서 인수 2개월 만에 칼바람을 일으킬 이유가 없었다는 것.

      달리 말해 직접적이든, 혹은 암묵적이든 이번 대규모 해임인사에 대한 롯데그룹 특히 지주차원의 '승인'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겠느냐는 시각이다.

      게다가 롯데그룹은 롯데손보 뿐만 아니라, 이번에 단행한 계열사 인사 전반에서 시끌시끌한 반응을 얻고 있다. 전체 계열사의 40%가 넘는 22개사의 수장을 교체했고 인사의 방향성에 대한 논란도 적지 않다. '물갈이' 자체에만 초점이 맞춰진 인사라는 평가가 적지 않은데다 유통BU장 인사 등을 두고선 시장에서 부정적인 반응이 크다.

      이러다 보니 롯데손보의 대규모 해임 인사 역시 같은 맥락에서 진행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롯데그룹은 지주를 포함해 그룹 차원에서 롯데손보 임원 인사에 대해 어떤 개입도 없었다고 밝혀왔다. 롯데그룹은 “사모펀드(PEF)에 회사 경영권을 팔았으면 인사권은 인수자에 전부 있는 것”이라며 “인사와 관련해 이런 저런 이야기가 있지만 롯데그룹이 관여할 일은 아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