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 해외수주 '최악의 해'…"총력 지원" 무색해진 정책금융
입력 2019.12.31 07:00|수정 2020.01.02 15:12
    부동산 규제 강화로 해외 수주 절실
    "투자개발형 적극 지원" 발언, 현장과 괴리
    수은·무보 등 정책금융기관 "리스크 부담"
    '전문 기관' KIND는 자금여력 탓 '한계'
    • #정부가 지난해에 이어 또다시 고강도의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을 내놨다.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강화해 대출을 옥죄고, 공시가격과 종합부동산세율을 조정하는 등의 ‘총망라 규제’에 건설사들은 먹거리 걱정이 앞선다. 건설사들의 양대 수익원 중 하나인 국내 주택 시장이 정책 압박 속에서 휘청이자, 건설 주가는 하락세를 보이며 시장의 불안감을 반영하고 있다.

      당분간 주택시장의 경색 국면이 예상되며 해외 수주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되고 있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각 건설사별로 수주 실적이 악화일로를 걸으며 지금과는 다른 형태의 돌파구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국내 건설사들의 연간 해외 수주액이 13년 만에 최저치(189억달러, 18일 기준)를 기록한 가운데, 이를 해결하고자 나선 정부의 정책금융 지원책마저 모호한 수준에 그치는 실정이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올해까지 10억달러 이상의 수주액을 기록한 건설사는 현대건설, 현대엔지니어링, 삼성물산, GS건설, 두산중공업 등 5개사로 지난해 9개사에 비해 크게 못미쳤다. 시공평가능력 상위권의 건설사들도 수주 감소를 피할 수 없었다. 지난해 약 34억6000만달러를 수주했던 삼성물산은 약 22억 5000만달러로, 대우건설과 대림산업은 각각 7억 6000만달러와 1억 6000만달러를 기록하며 지난해 17억달러, 10억달러에 비해 줄어들었다.

      이번 해외 수주액 감소세는 과거와는 다른 기조라는 분석이 상당수다. 단순한 시장 사이클의 회전이 아닌, 다시 회복될 수 없는 ‘구조적 한계의 봉착’이란 평가가 자리한다. 저가 EPC 수주에 대한 수익성 악화와 중동에서 아시아로 이전되는 해외 수주환경의 변화가 겹쳤다. 지금껏 도전해보지 못한 투자개발형 사업의 시도 요구가 어느 때보다 높다. <건설사 눈앞에 펼쳐질 구조적 불황…’한국형 디벨로퍼’ 전략 유효한가? (2019.11.14)>

    • 분위기를 감지한 정부는 정책금융기관을 앞세워 상반기부터 목소리를 높여왔다. 지난 4월 은성수 당시 수출입은행장(현 금융위원장)은 해외 건설 수주 플랫폼 회의에서 해외건설협회, 한국무역보험공사, 한국해외인프라도시개발지원공사(KIND)등 유관기관 관계자들을 모아놓고 “금융 가용성을 극대화해 고부가가치 투자개발형 사업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실제 진행 상황은 미비하다. 해외 수주 정책금융에서 가장 주요한 역할을 담당해 온 수출입은행의 올해 해외 건설 플랜트 금융 지원 실적은 목표치인 12조원의 약 67%인 8조원가량으로 추산된다. 해외수주가 크게 꺾이면서 지원 실적도 대폭 줄었지만 더 큰 문제로는 보다 보수적으로 변한 내부 분위기가 지목된다.

      수은 한 관계자는 “중동에서 점차 벗어나는 수주 경향이나, 지분을 투자하는 투자개발형 사업의 경우 경험이 적다 보니 엄격하게 접근할 수밖에 없다”며 “시도가 필요한 건 알지만 이전보다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지원 심사가 쉽게 통과되긴 어렵다”고 전했다.

      연초 수은은 1조원 규모의 특별계정을 따로 설정해 고위험 국가와 사업을 지원하는 자금을 마련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금 설치를 위해 신청한 2000억원의 예산마저 최근 국회 예산결산위원회(예결위)를 거치며 1600억원으로 감액됐다. 앞선 책임자들의 발언들과 실무 운영 사이의 괴리가 존재하는 셈이다.

      해외수주의 양대 정책금융기관와 수은과 무보 간의 중복된 업무범위는 기관과 건설사 사이의 혼선과 부담을 부른다는 지적이다. 해외 발주처들은 통상 국내 건설사에 수주를 주며 ‘금융 패키지’까지 책임지길 바라는 기조가 있다. 때문에 정책금융의 방식은 통상 사업에서 일으키는 PF(프로젝트 파이낸싱)에 직접 자금을 대거나, 또 다른 금융기관의 조달에 대한 간접적 채무보증을 서는 경우로 수렴된다.

      해당 구조에서 크게 벗어나기 어려운 정책금융의 특성상 무보의 중장기 수출보험과 수은의 대외 채무보증 지원책은 항상 업역 갈등을 겪어왔다. 해당 상품은 기관들 입장에서 수수료도 높아 쉽사리 포기할 수 없다. 하지만 일부 건설사들을 제외하고는 이원화된 지원 기관 사이에서 눈치를 보며 지원을 받는 상황이 발생한다. 현재 양 기관은 분기마다 정기 협의체를 꾸려 논란을 해결했다는 입장이지만, 이마저도 사업 건별 실무적인 협의는 현장 관계자들의 비정기적 소통에 의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과거보다는 나아졌지만, 규모가 큰 사업을 제외하고는 아직 양 기관의 경쟁이 존재하는 분위기”라며 “건설사들은 계속 지원을 받아나가야 하는 입장인데 일부 사업에서 한 쪽 지원을 받고 나면 다른 한쪽에 대한 심리적 부담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앞서 지적된 문제를 해결하고자 지난해 6월 국토교통부 산하에서 탄생한 KIND는 자금 여력부터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투자개발형 사업에서 지분을 직접 투자해 국내 기업들의 사업 진입을 직접 유도하려는 취지에서 설립된 기관이지만, 법정 자본금인 5000억원도 채우지 못한 실정이다. 지난 6월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폴란드 플랜트 수주 견인 등 성과를 내고 있다”라고 자평했지만, 시장에서는 KIND가 아직 대형 사업을 처리하기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존재한다.

      KIND 관계자는 “생긴 지 1년밖에 안됐다 보니 아직은 준비단계인 사업들이 많다”며 “국토교통부와 상시 협의하며 PIS(플랜트·인프라·스마트시티) 펀드를 계속 조성하는 등 자금 여력 마련에 노력하고 있어 점차 나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