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적 승계'로 귀결되는 CJ그룹 인사
입력 2020.01.06 07:00|수정 2020.01.07 11:00
    철저한 성과주의라지만 심복(心腹) 중심의 인사
    지분 증여는 그대로 진행…승계 의지 확대
    그룹 우선순위 '승계'로 경영 기조 변화 영향
    • CJ그룹이 수년간 키워온 지주사의 힘을 빼고 계열사별 '책임 경영'을 주문하는, 뚜렷한 기조 변화를 보이고 있다. 이는 정기 인사뿐만 아니라 신년사에서도 확인된다. 표면상으로는 수익성과 재무건전성 등의 체질 개선을 이유로 들고 있지만, 그룹 안팎에선 안정적 승계 기틀을 마련하기 위한 '내실 다지기'에 돌입했다고 보는 분위기다.

      CJ그룹은 이번 정기 인사와 신년사에서 '철저한 성과주의'와 '책임 경영'을 전면에 내세웠다. 2020년을 그룹의 경영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원년으로 칭하며, 이 같은 가치에 따라 임원 인사도 단행했다 입장이다. 확장 대신 안정을 택하면서 지주사의 인력을 CJ제일제당과 CJ ENM 중심으로 재배치하면서 내부 동요가 일어나기도 했다.

      시장에서 가장 관심이 쏠린 인사는 그룹의 주축인 CJ제일제당과 CJ ENM의 대표이사 거취였다. 예상보다 큰 변화는 없었다. CJ제일제당 대표이사 겸 식품사업부문 대표에 강신호 총괄부사장을 내정했으며, 허민회 CJ ENM 대표는 유임됐다. 구창근 CJ올리브영 대표와 최진희 스튜디오드래곤 대표, 윤도선 CJ대한통운 SCM부문장은 각각 부사장대우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여타 기업들처럼 대규모 '물갈이'가 일어나지 않았다.

      CJ그룹이 장고 끝에 예년보다 늦게 발표한 인사였지만 임팩트는 크지 않았다는 평가다. '철저한 성과주의'가 맞는지도 의문이다. 신임 임원이 19명에 불과한 것은 성과주의에 따른 결과로 보더라도 문책성 교체가 예상되던 수장들이 유임된 것은 철저한 성과주의에 배치된다는 지적이다. CJ ENM은 프로듀스 101 투표 조작 논란으로, CJ제일제당은 쉬완스 인수 등에 따른 재무건전성 악화와 실적 부진으로 시장에선 각각 허민회 CJ ENM 대표와 강신호 CJ제일제당 총괄부사장에 대한 '문책성 인사'를 점치기도 했다.

      특히 CJ제일제당의 경우 식품사업 부문장으로서 사업을 총괄한 강신호 부사장에 대한 거취 문제가 언급된데 반해 경영총괄인 신현재 대표는 바이오 사업에 관여해왔기 때문에 책임소지가 크지 않을 것이란 시각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신현재 대표가 물러나게 됐고 강신호 부사장은 자리를 지켰다.

      비상경영 체제로 전환한 만큼 대대적인 인적 쇄신이 있을 수도 있었다. 이번 CJ그룹 인사의 함의가 결국 '안정적 승계'를 위한 기틀 마련으로 귀결된다는 진단이다. 재계 관계자는 "그룹의 평판도와 실적 부진에도 이재현 회장의 복심들이 자리를 보전했다는 것은, 승계 환경 마련을 위한 안정 도모라는 이재현 회장의 판단이 깔린 것으로 해석된다"라고 설명했다.

      넓게 보면 CJ제일제당의 재무구조 개선 강조 역시 '안정적 승계'와 맥락이 이어진다는 분석이다. CJ제일제당은 그룹의 주력 계열사일뿐 아니라 이재현 회장의 아들 이선호 부장이 몸 담고 있는 회사다. 지난해 마약 사건 등으로 올해 상무 승진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만큼, CJ제일제당의 실적과 체질개선이 기반이 돼야 향후 승진에서의 '당위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진단이다.

      이재현 회장이 경영 승계에 속도를 내는 점도 CJ그룹이 확장 대신 안정으로 경영 기조가 바뀌는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이선호 부장은 지난달 27일 CJ올리브네트웍스 지분 17.97%를 CJ㈜의 주식으로 교환을 완료했다. 이로써 CJ㈜ 지분 2.8%를 얻게 됐으며 여기에 이재현 회장으로부터 증여받은 신형우선주까지 합치면 총 5.16%의 CJ㈜ 지분을 확보하게 된 상황이다. 이선호 부장이 본격적으로 CJ㈜ 주주로 이름을 올리면서 승계 작업 속도가 불붙을 것으로 보인다.

      올해부턴 이재현 회장이 보유한 40%가 넘는 보통주의 증여 고민도 본궤도에 오를 전망이다. 마약 사건에도 불구하고 해를 넘기지 않고 이선호 부장 등에 신형우선주를 증여한 이재현 회장의 의지와 추진력을 감안하면 경영 승계를 위한 본격적인 기틀 마련이 시작됐다는 평가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이재현 회장이 임원들과 논의하기보단 따로 법률적 자문을 받으면서 지분 승계를 다각도로 고민하고 실행에 옮기는 분위기"라며 "미국 쉬완스를 인수한 것도 이선호 부장을 염두에 둔 행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그룹의 경영 기조와 전략은 '승계'와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