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수' 앞에선 쪼그라드는 국내 유니콘 기업들
입력 2020.01.16 07:00|수정 2020.01.17 10:54
    배달의 민족 5兆 기업가치엔 '독점기업 탄생' 기대감 반영
    첫 유니콘 회수 사례 회자했지만…공정위·여론 반발 변수
    정책자금·소수 VC 거치며 유니콘 등극했지만, 회수 둔 우려도
    단기간 커져버린 가치에 IPO·M&A 모두 부담
    • 최근 M&A시장 내 가장 큰 화제는 단연 배달의민족(법인명 우아한형제들)의 독일 딜리버리히어로(DH)로의 매각이다. 4조8000억원에 달하는 인수 규모와 더불어,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기업)의 사실상 첫 회수(Exit) 사례로 주목받았다.

      다만 이번 매각 절차에서 드러난 잡음들은 비단 당사자인 김봉진 대표와 투자사들뿐 아니라 결국 국내 유니콘 기업들에게도 고민거리로 남았다는 평가다. 2014년 쿠팡이 첫 유니콘 기업으로 등장한 이후 6년간 잇따라 국내에서도 세계 선두권 수준의 유니콘 기업이 나타나고 있지만, '회수'라는 무대에선 여전히 성과가 미미함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는 것이다.

      그나마 '이익을 내는 유니콘'으로 꼽혀 가장 회수가 수월할 것으로 꼽혀온 배달의민족마저 좌초할 경우 국내 스타트업 업계에 미칠 후폭풍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투자금융(IB) 업계에 따르면, 이번 배달의민족 매각 성사까지는 2년에 가까운 기간이 소요된 것으로 알려졌다. 초기 아마존(Amazon) 등 글로벌 전략적투자자(SI)와 소프트뱅크 측에도 매각 의사를 전달했지만 관심을 보이지 않거나 가격 제안까진 이어지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DH가 끝까지 남아 테이블에 앉았고, 양 사는 가격을 두고 1년간 줄다리기 끝에 매각에 합의했다.

      우여곡절 끝에 합의에 도달했지만 여전히 거래 성사까지는 난관이 많다.

      이번 인수가 완료되면 DH의 국내시장 배달어플리케이션 점유율은 99%, 문자 그대로 '독점 사업자'로 뛰어오른다. DH측은 막대한 인수 프리미엄을 지불하지만 양 사간 출혈 마케팅 비용 축소, 이익구조 다변화 등 독점 사업자로서 누릴 혜택도 인수 가격에 반영됐다. 반면 소비자와 입점한 소상공인 입장에선 이와 비례해 양 사의 치열한 경쟁으로 얻었던 혜택이 점차 축소되는 구조다. 공정거래위원회의 문턱을 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들도 벌써부터 나온다.

    • 본질적인 문제는 VC 등 사모시장에서 쌓아온 기업가치와 그 외 시장에서의 눈높이(Valuation) 차이가 다시금 드러난 점이다. 그간 국내에선 몇몇 VC가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유니콘 탄생의 주요한 역할을 했다. 이들이 초기단계(Ealry stage) 투자부터 후속 투자를 이끌어가면서 기업가치를 극대화했고 어느새 유니콘으로 탈바꿈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가치에 외견상 아마존 등 전략적투자자들은 물음표를 보였다. '독점기업 탄생'이라는 메리트가 뚜렷한 DH만 뛰어든 셈이다.

      정책자금 등 공공 주도의 자금 투입으로 인한 시장 왜곡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간 시장에 풀린 대규모 정책자금이 대표적인 소수의 스타트업에 집중됐고, 민간에선 일종의 '안전 자산'으로 간주됐다는 평가다. 복수의 VC들도 정책자금이 투입된 업체에 클럽딜 형태로 후속 투자를 단행해 기업가치를 빠르게 늘렸다.

      이런 눈높이 격차에 스타트업 업계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하나둘 등장하고 있다. 시장이 왜곡될 조짐들이 속속들이 드러났지만 5년간 급속도로 커지는 기업가치에 취해 정작 문제제기는 묻혔다는 자성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대기업·중견기업에서 투자할 수 있는 밸류가 형성되면 외부에서 독려하지 않아도 민간 주도의 투자 선순환이 이뤄졌겠지만 정부는 기다리기보단 돈을 쏟아 부양에 나섰고, 스타트업도 깐깐히 기업가치를 따지는 민간이랑 이야기 할 필요가 없어졌다"라며 "시장이 교란될 것이란 우려는 있었지만 지난 5년간 유니콘 기업들이 하나둘 축배를 들어온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없었던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유니콘 기업들이 대표적인 회수 창구인 IPO 등 공모 시장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현상도 여전히 짙다. 글로벌 IT전문매체 테크크런치에 따르면 그간 전 세계 유니콘업체 중 약 70%(175곳 중 121 곳)는 IPO를 통해 투자금을 회수했을 정도로 보편화 됐지만, 국내 유니콘 기업들이 공모시장에서 이미 확보해놓은 기업가치 이상을 증명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물음표다. 최근 위워크, 우버의 부진에 '반성문'을 쓴 소프트뱅크의 사례 이후 투자자들의 눈높이는 더욱 까다로워졌다.

      국내 증권사 IPO 담당자는 "지난해부터 오너들이 VC 시장에서 제안받은 기업가치에 비해 상장하면 왜 그에 못미치는지 항의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며 "지난해 워낙 증시가 좋지 않았던 점도 고려해야 하지만 워낙 벤처투자업계에 자금이 많이 풀리다보니 사실 비상장사 가치를 그대로 인정하기가 힘들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대기업·중견기업의 스타트업 인수가 활발히 이뤄지지 않는 점 등을 들어 제도적 문제를 언급하지만 업계 내부에서도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다. 필요에 따라 조단위 M&A도 속속들이 집행해온 대기업들이 관심을 두지 않는 이유도 결국은 기업가치를 둔 이견에 있다는 지적이다. 롯데에 찾아갔지만 협상도 전에 기업가치 격차에 얼굴만 붉힌 티몬 M&A 사례도 대표적이다. 이렇다보니 그나마 기대할 회수 창구는 CVC캐피탈의 '여기어때' 인수 사례처럼 국내 투자시장에서 절박한 상황에 놓인 글로벌 PEF들의 깜짝 인수 정도가 거론된다.

      회수 방안은 점차 좁혀지는 반면 기존 기업가치를 증명할 성장성 확보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업계에선 "덕담은 이제 끝났다"는 말이 회자하고 있다. 거래액, 매출성장률 등 미래 가능성이 투자의 기준이 됐다면, 이제 성숙기를 맞이한 시장에서 단기간 실적을 낼 수 있는지를 요구하고 있다.

      클라우드·핀테크·인공지능 등 소비자대상 사업군(B2C)은 물론 기업 대상(B2B) 기술 기업들도 자리를 잡은 미국 유니콘 생태계와 달리 국내 유니콘 기업들이 대부분 커머스 기반 B2C 업종에 집중된 점도 취약점으로 꼽힌다. 기술 기반 B2B 기업의 육성 풍토는 이전과 달라지지 않았다는 목소리도 여전하다.

      국내 최대 큰손인 삼성그룹의 접는 유리(UTG) 소재 업체 도우인시스 인수 사례가 대표적이다. 본격적인 시장 개화 직전 일부 VC들의 지분만 인수하는 형태로 낮은 가격에 경영권을 확보했지만, 기술기업 자생 풍토에는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겼다는 평가다.

      이런 상황에서 정작 정부와 여당은 10조원 규모의 자금을 투자해 유망 벤처기업 1000개를 만드는 'K유니콘 프로젝트'를 본격 가동한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도 신년사를 통해 "신규 벤처투자가 4조원을 돌파했고 다섯 개의 유니콘 기업이 새로 탄생했다"며 "벤처창업기업의 성장을 지원하여 더 많은 유니콘 기업이 생기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VC업계 한 관계자는 "당사자인 정부나 중기부는 물론 국회에서도 명분이 서 있는 데다 한국벤처투자 등 정책자금의 수익률이 나쁘지 않으니 대놓고 반대할 이유가 없는 상황"이라며 "가치는 부풀려 있는 상황에서 퇴로는 없는 데 정부는 거꾸로 돈을 앞으로 더 풀겠다고 나서다보니 시장 교란은 더욱 심해질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