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손’으로 나타난 조현아 전 부사장, 대한항공 어떻게 먹여살릴 겁니까?
입력 2020.01.17 07:00|수정 2020.01.21 09:31
    • 조현아 전 부사장은 기억하고 있을까?

      2014년 12월, 회항 사건으로 대한항공의 기업가치는 반토막이 됐다. 기관과 외국인 투자자들이 등을 돌리며 주가는 폭락했고, 오너 경영진의 전횡이 하나둘 밝혀지면서 돌이키기 힘든 평판 리스크를 노출했다. 대한항공의 유·무형 기업가치 하락은 국내 1위 항공사업자의 지위를 믿은 투자자들의 피해로 고스란히 전가됐다. 임직원들이 겪은 피해는 두말할 것 없다.

      그 중심에 섰던 조현아 전 부사장이 한진그룹에 돌아온다고 한다. 그것도 빈손으로.

      조현아 전 부사장이 성명을 발표한 이후. 지금까지도 ‘왜?’에 대한 의문은 풀리지 않는다. ▲일가족 의사 결정 과정을 왜 낱낱히 드러내야 하는 것인지▲투자자들이 왜 그들의 집안일까지 알아야 하는지 ▲고(故) 조양호 회장이 작고한지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왜 지금 나타났어야 하는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본인이 왜 직접 나서야 하고 명분이 무엇인지. 투자자들의 궁금증에는 한마디의 해명이 없다.

      주주총회를 불과 2달 앞두고 조 전 부사장이 보인 행보에서 주주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는 느낄 수 없었다. 최근엔 조 전 부사장 측이 최대주주인 KCGI와 3대주주로 올라선 반도그룹과 만났다는 소식도 들린다. 온갖 추측이 난무하면서 주가 움직임은 기업가치로 평가 받는 정상적인 범주를 벗어났다. 앞으로 어떤 경영진이 어떻게 한진그룹을 끌고 갈 지 예상하기 어렵게 됐고, 국내 임직원들의 불안감과 회의감은 커져갔다. 국내 1위의 국적항공사는 당장 몇 달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시계제로 상황에서 위태롭게 경영을 이어가고 있다.

      조 전 부사장이 한진그룹의 미래에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적어도 주주로서 목소리를 내면서 자신의 입장에 동조할 우군이 필요했던 상황이라면 알맹이 없는 빈손으로 나와선 안됐다. 일가족과 관계가 틀어지는 과정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은 수준이었다면 그들끼리 조용히 해결했어야 하는 게 맞다.

      KCGI도 마찬가지. 사회적인 평판은 차치하고 한진칼 주주로 올라섰을 때만하더라도 오너 일가의 비정상적인 활동을 감시하고, 재무구조를 획기적으로 개선해 주주가치를 제고하겠다는 ‘명분’이 확실했다. 물론 그 전략이 한진그룹에 약이 될지 또는 독이 될지는 지켜봐야 한다. 그러나 KCGI가 순수한 감시자 역할로 남아있다면 그 방향성에 동조하는 투자자들도 많을 것이란 점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지금은 그 명분이 애매하다.

      한진그룹에 정통한 관계자들은 조 전 부사장의 복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상속세를 내야하는데 재원을 마련할 창구가 없다. 임원 자리가 필요하다”

      “조원태 회장이 호텔사업을 정리하려는 움직임이 보이자 위기감을 느꼈다”

      “정기 인사에서 조현아 측근들 상당수가 힘을 잃었다” 등.

      종합해보면 조 전 부사장이 한진그룹에 대한 태도는 하나로 요약된다. 대한항공과 한진그룹을 그들의 개인회사, 그 이상으로 여기지 않는 듯 하다는 의미다.

      어떤 방식을 동원하든 조 전 부사장이 조원태 회장을 몰아내 경영권을 잡는다 치자.

      대한항공에 몸담고 있는 임직원이 2만명이다. 계열사까지 포함하면 헤아리기 어려운 수 많은 임직원들을 먹여 살릴 세밀한 플랜이 준비돼 있는지 묻고 싶다. 아니면 확실하게 힘이 되줄 수 있는 전문경영인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지, 수많은 기관과 외국인들의 감시 속에서 주주가치를 끌어올릴 만한 방안이 있는지 보여줘야 한다.

      현재까지 확실한 구도는 조원태 회장과 델타항공의 연합뿐이다. 크게는 양강구도, 또는 3강 구도로 짜여질 한진칼 주주총회에서 현재 주주들의 합종연횡의 실익은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현재 조원태 회장의 사내이사 자리를 차지해 유의미한 경영 참여가 이뤄지기 위해선, 어느 쪽이든 과반 이상의 우호 지분이 필요하다. 현재 상황에선 어떤 조합도 과반의 동의를 얻기 힘들다.

    • 결국 한진그룹의 방향타에 대한 결정권은 조원태 회장도, 조현아 부사장도, KCGI도, 델타항공도 아닌 45%가 넘는 소액 주주들이 쥐고 있다. 소액주주에는 개인투자자는 물론 5% 미만의 지분을 보유한 수많은 기관들이 포함돼 있다. KCGI와 손잡고 반도그룹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는 과정에는 나머지 주주들이 소외돼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과거 고(故) 조양호 회장조차도 철옹성처럼 지켜내던 대한항공 경영권을 주주들의 반발에 내줘야 했다.

      KCGI가 조현아 전 부사장과 손잡는다면. 그간 그들이 존재가치이자, 명분으로 내세웠던 오너 일가에 대한 견제자 역할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선량한 감시자 역할을 자처했던 KCGI 또한 이익을 극대화하는 펀드 중 하나에 불과함을 알릴 것이고, 그들이 강력하게 내세운 정당성과 도덕적 우위는 크게 희석될 것이 분명하다. 그나마 전국에 ‘반도’라는 이름을 알리며 시장의 주목을 한몸에 받고 있는 반도그룹만 꽃놀이패를 쥐고,  주가가 오르는 상황에선 잃을 것이 없어 보인다.

      이처럼 이해관계가 다른 주주들이 만나 회사의 발전 방향을 논한다? 상상하기도 동조하기도 어렵다.

      조 전 부사장이 굳이 주주들을 위한 명분을 내세운다면 “조 회장 집권 이후 개선한다고 한 것은 많았으나 지켜진 것이 없다” 정도이지 싶다.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대한항공의 실적은 크게 꺾였고 올해 전망도 크게 나아질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인적 구조조정은 진행되고 있는데 정작 숫자로 나타난 개선세는 찾아보기 어렵다. 시장의 우려 속에서 조원태 회장은 아직은 지켜지지 않은 ‘비전’을 발표했을 뿐이다. 외부 공세를 차단하기 위한 나름의 전략을 세우고 있는 정도다.

      투자자들의 제 1원칙은 수익의 극대화다. 그 과정에서 투자자들은 최고 경영진을 얼만큼 신뢰할 수 있는가, 경영진이 보여주는 비전이 이해관계와 얼마나 부합하는가를 따진다. 하지만 그룹을 어떻게 끌고가겠다는 비전에 대한 말 한마디 없는 대주주를 누가 믿고 따를 수 있는가. 빈손으로 시장의 이해를 구하고 동조해주십사 하는 것은 투자자를 향한 기망행위에 가깝다.

      한진그룹에 투자한 국민연금을 비롯한 대형 기관투자가들은 앞으로도 끊임없는 감시자 역할을 하게 될 상황이다. 사회적가치(ESG) 투자 확대에 대한 기조는 앞으로 더 강하게 유지된다. 현재 상황에서 한진그룹 경영진이 할 수 있는 일은 기관투자가들이 요구하는 글로벌스탠더드에 부합한 사업구조와 지배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당장은 어렵더라도 그들의 요구를 수용하고 지켜나가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과거와 같은 거센 반발에 부딪히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