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 한 마디에 뚝딱…문제 있는 삼성의 문제 해결방법
입력 2020.01.17 07:00|수정 2020.01.20 09:50
    사회적 물의 일으킨 후에야 내놓는 후속조치
    관행적 쇄신안 내지만 대내외 소통은 없어
    사실상 경영 올스톱…“정상기업 맞나” 지적
    • 삼성그룹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때마다 ‘깜짝’ 쇄신안 카드를 꺼내든다. 이번엔 준법감시위원회를 출범하고 삼성전자 사장단이 준법실천 서약을 하는 ‘이벤트’까지 개최했다. 그동안 소통없는 오너의 일방적 결정, 관행적인 사후약방문 쇄신안이 계속 나왔다. 진정성이 있는지, 그리고 효과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삼성전자는 이사회 의장이 구속됐고 이재용 부회장은 미등기임원 상태다. 투자자들은 이건희 회장이 ‘제2의 창업’을 선언한지 30년이 지났지만 이사회 결정 없이 오너 말 한마디에 중대사안을 발표하는 삼성전자의 글로벌 기업으로서 의사결정 구조를 되묻고 있다.

      이건희 회장 시절 삼성의 사회적 물의가 발생했을때도 그에 대한 대응법은 비슷했다.

      2006년 X파일 사건이 터지고 2007년 삼성 비자금 의혹과 관련해 특별검사 수사가 시작됐다. 특검은 불법 비자금 조성과 정치자금 로비 의혹,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 저가 배정과 에버랜드 전환사채 불법 발행 등 경영 승계 의혹을 조사했다. 그 결과 이건희 회장은 조세포탈 등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원을 선고 받았다.

      이학수 당시 삼성 부회장은 2008년 ‘삼성 경영 쇄신안’을 발표했다. 이건희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홍라희 여사는 미술관 관장과 문화재단 이사직에서 물러난다는 내용이었다. 이재용 당시 전무는 삼성전자 최고운영책임자(COO)에서 물러나 해외 사업장에서 근무하기로 했다. 그룹의 컨트롤타워인 전략기획실을 해체하고 이건희 회장의 차명계좌를 모두 실명으로 전환했다.

      2년만에 모든 것이 원상태로 돌아왔다. 2010년 이건희 회장은 삼성전자 회장으로 경영에 복귀했다. 홍라희 역사도 2011년 다시 리움 관장이 됐다.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전자 COO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전략기획실은 미래전략실이 됐다. 모든 것이 이건희 회장의 ‘결단’에 의한 것이다.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부정적 여론이 많았지만 시장의 관점에서 보면 이때만 해도 그 같은 결정에 이의를 내는 투자자들의 목소리는 많지 않았다. 삼성전자의 글로벌 위상이 현재 수준이 아니었고 엘리엇매니지먼트와 같은 행동주의펀드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전이었다.

    •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이재용 부회장 시절의 사건과 대응방식도 비슷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 씨가 개입한 국정농단 사태 이후 2016년 12월 청문회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그룹 비리의 축으로 지목된 미래전략실을 해체하겠다고 깜짝 발표했다. 2017년 10월 이 부회장이 법정구속 되자 비상경영을 이유로 12월에 삼성전자 태스크포스(TF)가 신설된다. 삼성전자 외 삼성물산, 삼성생명에도 TF가 만들어졌다. 시장에선 기존 미래전략실이 3개로 나뉘어졌다고 평가한다. 2018년 이재용 부회장이 석방되자 그동안 묵묵부답이었던 백혈병 피해자들에게 공식 사과를 한다.

      2019년의 타임테이블은 스펙터클하다. 그해 6월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 회계 사건이 터졌고, 8월에는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파기환송이 결정됐다. 10월에 첫 공판이 있었는데 당시 등기이사 임기가 끝난 이 부회장은 등기이사 재선임을 포기했다. 12월에 노조 와해 사건이 불거지면서 이상훈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은 법정 구속이 됐고 이재용 부회장은 준법감시위원회 설치를 지시했다. 삼성전자 사장단의 준법실천 서약식은 법원의 요구에 따라 그룹이 ‘준법감시위원회’를 출범시킨지 4일만에 이뤄졌다.

      삼성은 2008년 특검 이후 관련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오너가 직접 나서 오너 일가의 전횡 방지 대책과 내부 통제 강화가 포함된 쇄신안을 발표하며 비난 여론을 잠재우려 했다. 하지만 20년 동안 문제가 제대로 해결된 적은 없다.

      이 기간 삼성전자의 위상이 세계 톱티어 수준으로 올라섰다. 반면 이사회 시스템은 글로벌 스탠더드와 한참 떨어진 후진적인 수준이라고 지적 받는다. 준법감시위원회 출범과 같은 기업 경영과 이미지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을 이사회 결정이 아닌, 오너 개인의 ‘선언’으로 결정짓는 제왕적 경영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 존재감이 절대적인 국내 투자자들은 큰 목소리를 내기 쉽지 않지만 외국계 투자자를 중심으로 삼성전자의 경영 방식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는 더 커질 수 있다.

      삼성전자를 담당하는 외국계 투자은행(IB) 관계자는 “글로벌 기업의 경우 이런 사안이 발생하면 오랜 기간을 두고 사내와 외부 투자자, 여론 파악 등 대내외 소통, 이를 바탕으로 이사회 협의를 거쳐 관련 사안을 결정하고 발표하지만 삼성전자는 며칠 만에 뚝딱 쇄신안을 내놓는다”며 “행동주의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와 맞선 경험이 있음에도 국내 여론만 신경쓰느라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고 설명했다.

      다른 외국계 증권사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이사회 의장이 구속된 초유의 상황인데 부회장 공판을 앞두고 준법감시위원회를 출범하고 사장단이 이를 지키겠다는 서약을 하는 이벤트를 보여준 것은 여전히 이사회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이는 향후 행동주의펀드를 위시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지적을 받을만한 사안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는 스스로 진정성을 드러내기 위해 다양한 변화를 보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여론 앞에서, 재판을 앞두고 즉흥적으로 보이는 쇄신안을 보면 삼성전자, 그리고 이재용 부회장의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재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던 것도 시간이 지나면 아닌 게 된다”며 “시장과 공존해야 하는 기업 입장에선 소통을 더 늘려야 하는데 삼성전자가 그 위상에 걸맞지 않게 조급하고, 결국 오너 부재 가능성에 경영이 올스톱한 불안감을 보이는 모습으로 비춰진다”고 말했다.

      이재용 부회장 등 경영진 부재에도 삼성전자 주가는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글로벌 스탠더드 수준의 경영 시스템이 구축된다면 기업가치는 더 올라갈 수 있다고 조언한다. 탈권위주의, 상생 경영철학으로 대표되는 이재용 부회장의 ‘뉴삼성’은 ‘오너 절대주의’ 탈피에서 시작한다고 시장은 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