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삼성물산-제일모직 매출 60조원'의 허망함
입력 2020.01.20 07:00|수정 2020.01.21 09:31
    2015년 합병 당시 '시너지 효과' 강조하며 매출 2배 선언
    정작 5년간 매년 매출 제자리 걸음ㆍ사업부 성장 뒷걸음질
    국민연금 지분가치 '기회비용' 제외, 시가만 따져도 수백억 손실
    이재용 부회장 삼성전자 지배력 효과만 확고…엘리엇 비판 현실화
    • 많은 대기업들이 "2020년에는 괄목할 성과를 내겠다"는 장밋빛 비전을 선포한 이력이 있다. 10년 전인 2010년에 주로 몰렸다.

      두산은 박용만 부회장이 매출 100조원을 목표로 내걸었고, 현대모비스는 "자동차 부품업계 글로벌 Top5"란 비전을 발표했다. 에버랜드는 이부진 전무가 "연간8조원 매출" 청사진을 발표했고, CJ는 이재현 회장이 선포식을 열어 '매출100조ㆍ영업이익10조'를 선언했다. 삼성은 23조원을 친환경 사업에 투입한다고 했고, LG는 그린경영에 20조원 투자를 설파했다.

      올해 이 비전들을 현실화시킬 기업은 없다.

      '10년뒤 미래'에 대한 비전조차 허망한 말잔치라는 의미다. 비단 기업 뿐만 아니다. 당시 정부는 "2020년 한국경제 이끌 강소기업 300개 육성"을 선언했다.

      그래도 이런 비전들을 비난하기는 어렵다. 소규모 개방경제에 소속된 기업들로서는 피하기 힘든 대외변수가 너무 많았다. '그린경제', '창조경제'에서 '혁신경제'까지… 5년마다 바뀌는 정권의 캐치프레이즈도 신경써야 했다. 또 어디까지나 '목표'였고, 달성되지 못했다해도 세계 일류기업이 되겠다는 포부는 높이 사야했다. 즉 '사심'(私心)은 없었다.

      삼성은 조금 다른 경우다. 5년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때에 2020년 비전을 선포했다.

      당시 제일모직 : 삼성물산 = 1 : 0.35의 합병비율로, 이재용 부회장이 최대 주주인 제일모직 값어치를 높게 평가하며 합병을 단행했다.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공격으로 편법승계 논란이 일고, 제일모직 지분가치 극대화를 위한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분식 논란이 이어졌다. 거래는 끝났지만 논란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

      이때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발표한 비전은 화려했다.

      "합병을 통해 제일모직이 보유한 사업영역과 운영노하우, 삼성물산이 보유한 건설부문의 차별화된 경쟁력과 상사부문의 해외인프라가 결합된다" 

      "양사의 건설사업 통합을 통해 핵심역량 확보 및 건설사업 포트폴리오를 확장시켜 수주경쟁력을 강화한다" 

      "삼성물산 상사부문의 해외 인프라를 활용해 패션, 급식 / 식자재 유통사업의 해외사업 분격 진출을 추진한다" 등등의 미사여구가 담겼다.

      홍보용 보도자료도 아닌, 증권신고서ㆍ합병결정 주요사항 보고서 등에 이 내용을 고스란히 담아 투자자들의 이해를 구했다.

      이런 시너지 효과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후 5년이 지난 2020년에는 매출 60조원으로 끌어올린다는 계획까지 내놨다.

      그 2020년이 도래했고 삼성물산ㆍ제일모직이 발표한 '비전'과 최근 '실적'을 비교해보면. 당시 내놓은 비전은 절반도 이루지 못했다. 합병 전과 비교할때 사업부문 성과나 실적은 기껏해야 제자리 걸음이거나 오히려 뒷걸음친 경우도 나온다.

      제일모직의 경우. 합병이 추진되던 2015년 6월 기준, 패션 : 건설 : 레저 : 웰스토리 부분 매출은 각각 1.8조원 : 1.2조원 : 0.4조원 : 1.5조원 수준이었다. 이를 다 합친 제일모직의 매출은 약 5~6조원. 이익은 2100억원 수준. 또 덩치가 큰 삼성물산은 건설과 상사 부분에서 각각 14조원 안팎의 매출을 내고 있었다. 합치면 두 회사 매출이 약 30조원 수준이었다.

      이때 삼성이 내세운 비전이 현실화되려면 양사의 시너지 효과가 조금씩 나타나야했다. 하지만 패션, 건설 그리고 레저 모든 부문에서 이렇다할 성장세는 드러나지 않았다.

      건설부문 매출은 12조원대로, 합병 전과 비교하면 오히려 줄었다. 상사부문 매출은 14조원대로 그대로다. 패션부문 매출액이 조금 늘어났지만 리조트나 레저부문은 오히려 줄었다. 한마디로 덩치가 큰 두 회사를 합병했는데 5년째를 맞이하는 지금까지 합병으로 인한 매출 증가가 '전무'하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이러니 통합 삼성물산의 전체 매출도 제자리 걸음이었다. 양사 합병후 2016년 매출은 28조원, 2017년은 29조원, 2018년은 31조원대에 그친다. 2019년도 3분기말 기준 23조원의 매출액을 감안하면 30조원대 초반에 그칠 전망. 2020년에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60조원 매출 목표의 절반 수준이다. 합병 전과 다를 게 없다.

    • 그 사이 주가 흐름은 처참할 정도다.

      합병전 제일모직의 시가총액은 무려 21조원에 달했고, 삼성물산만 해도 7~8조원에 이르렀다. 양사가 합병된 이후 현재 시가총액은? 고작 20조원에 그친다. 현재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5%를 포함, 자산가치의 60%에도 못미치는 수준이다. 그나마 이 조차도 최근 삼성전자 주가가 급등하다보니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5%에 대한 기대감으로 오른 수준이다. 지금 10만원을 넘긴 삼성물산 주가는 6개월전에는 8만원대 후반까지 처첨하게 떨어졌다.

      그러니 당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정당성을 표방하는 과정에서 삼성이 내건 비전과 목표를 그대로 믿고, 합병에 찬성한 투자자들은? '기회비용'을 제외하고서도 현재 기준으로 마이너스 수익을 보고 있다.

      일례로 국민연금이 합병전 삼성물산 지분 11.2%, 제일모직 지분 5.04%를 보유했는데 각각의 시가가 약 800억원 및 1000억원이었다. 하지만 합병이후 국민연금이 보유한 통합 삼성물산 지분 6.23%의 지금 값어치는? 1200억원에 그친다. "삼성물산ㆍ제일모직 합병비율이 정당했느냐"라는 복잡한 산식을 모두 제외하고, 시가만 놓고봐도 수백억원 손실을 봤다.

      누군가 탓을 하고 싶어도 당시 이 비전을 발표한 최치훈 대표ㆍ김신 대표ㆍ윤주화 대표 등은 모두 자리에 없거나 일선에서 물러나 있다.

      합병으로 인해 변한 것이라고는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 뿐이다. 삼성전자 지분 5%를 보유한 옛 삼성물산의 최대주주가 됨으로써, 물산과 생명을 통한 삼성전자 지배가 이뤄졌다. 합병 당시 삼성은 당시 '승계'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그렇게 됐다.

      이 무렵 엘리엇이 합병을 반대하면서 배포한 자료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실려 있다.

      "합병안에서 어떤 실질적인 이익이나 가시적인 시너지 효과도 찾아볼 수 없다"

      "경영진은 사업다각화로 이익을 볼 수 있다고 하지만 사실 우리는 테마파크, 건설, 패션, 생명보험사 지분 보유 등의 결합이라는 제일모직의 포트폴리오에서 상업적 논리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향후 10년 뒤는 어떨지 예단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2020년 현재로선 당시 엘리엇의 날선 비판이 현실과 더 맞닿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