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반 새 지분가치 3000억 뚝…국민연금, HDC현산 유상증자 딜레마
입력 2020.01.22 07:00|수정 2020.01.23 09:14
    2018년 국민연금 HDC현산 지분가치 약 3900억원
    주가 3분의 1토막…평가손실 3000억원 이상 추산
    HDC현산 아시아나 인수 위해 4000억 유상증자
    국민연금, 불안한 건설·항공 업황 속 추가 투자 ‘고민’
    • 국민연금은 HDC현대산업개발(이하 HDC현산)의 지분 10.4%를 보유한 2대주주다. HDC현산 주가는 2018년 분할 재상장 이후 꾸준히 하락했고 최근 들어선 연일 신저가를 기록했다. HDC현산은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위해 전체 주식수의 50%를 유상증자하기로 결의했다. 국민연금은 그간의 손실과 불투명한 건설·항공 업황을 고려하는 동시에 지분 희석을 방지하기 위해 또 다시 투자를 결정해야하는 상황에 처했다.

      현재 국민연금이 보유한 HDC현산 주식(453만1550주)의 시장가치는 약 1040억원(주가 2만3000원 기준)이다. 2018년 6월 12일 HDC현산이 분할 재상장할 당시 주가는 7만5600원으로 현재 주가의 3배를 크게 웃돈다. 국민연금이 당시 보유한 지분가치는 3900억원 수준이었다. 1년 반 기간 동안 국민연금이 1~2% 남짓의 지분을 시장에서 사고 팔았던 점을 고려해도 현재 약 3000억원 이상의 손실을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 분할 재상장 당시만해도 2017년 면세점 흑자전환과 같은 호재가 맞물려 HDC현산의 주가는 높게 형성될 수 있었다. 당시 국내 한 증권사는 리포트를 통해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아이파크, 면세점 등 잠재적인 밸류에이션 상승 요인이 존재한다”고 평가하며 목표주가를 9만원까지 책정하기도 했다.

      이 같은 전망과 달리 부동산 규제의 강화와 북한에 대한 경제협력 기대감이 사그라들면서 건설업종의 주가는 2018년 이후 전반적으로 내리막을 걷기 시작했다. 국민연금이 보유 비중을 줄이지 못한 건설회사의 손실 폭은 꾸준히 늘어나는 상황이다. 특히 HDC현산은 아시아나항공 인수 이후 재무부담에 대한 우려가 부각하면서 주가 하락 폭이 다른 건설사에 비해 크게 나타났다.

      국민연금의 주식 평가손실에 대해서 증권사 건설담당 한 연구원은 “국민연금이 손해를 더 줄일 수 있었겠지만 회사 자체의 변동성이 너무 크기 때문에 시점을 특정해서 주식을 거래하기 굉장히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증권사 연구원은 “2018년까지는 HDC현산이 디벨로퍼라는 나아갈 방향이 명확했다는 판단이 있었고 회사에 거는 기대도 컸기 때문에 국민연금이 매입량을 늘린 것으로 보인다”며 “아시아나항공 인수 이후 부동산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여력이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본격화했고, 이미 팔기에도 늦었기 때문에 연금의 손실 폭은 앞으로 더 커질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 최근 HDC현산은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위해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증자 규모는 전체 주식수의 50%로 예정된 금액은 약 4000억원이다.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HDC현산의 지주회사인 HDC(38.5%)와 국민연금이 신주의 절반가량을 배정받는다.

      건설업이 호황을 맞아 실적 개선세가 예상된다면 국민연금 입장에선 증자 참여 여부에 대해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할인률이 적용된 낮은 가격에 신주를 배정받아 손실 폭을 줄이고 향후 주가 상승으로 인한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HDC의 현재 상황은 녹록지 않다. 회사가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결정한 이후 신용평가사들은 등급 하향을 검토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되면 조달 금리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해 부지 매입부터 사후관리까지 모두 책임지는 종합부동산회사(디벨로퍼)에 조달비용 증가는 뼈아프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건설회사의 조달금리를 책정할 때 마이너스 요인이 있다면 해당 요인을 상쇄할 수 있는 다양한 장치들이 마련돼 있다”면서도 “신용등급은 시공능력평가만큼 중요한 참고 요인이 되기 때문에 등급이 하락하면 금리에 미칠 영향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내 증권사 리서치센터들도 최근 HDC현산의 목표주가를 일제히 하향조정하기 시작했다. 일부 증권사는 HDC현산의 자본변화, 즉 유상증자가 모두 완료되는 시점까지 리포트 발간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국민연금이 유상증자 참여를 포기하면 지분율 희석을 감수해야 한다. 현재 10.4%인 지분율은 6%대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최대주주인 지주회사 HDC는 20%의 초과청약이 가능하기 때문에 HDC현산에 대한 HDC의 지배력은 더 강화하는 반면 국민연금의 영향력은 그만큼 줄어든다.

      투자자들의 또 다른 관심사는 HDC현산의 주주총회이다. 오는 3월엔 김대철 대표이사(사내이사)와 사외이사 2명의 임기가 만료된다. 지난해 주총에선 HDC현산의 주요 기관투자자인 브리티시컬럼비아투자공사(BCI)가 재무제표(이익배당) 승인과 정경구 경영관리 본부장(전무)의 선임 안건에 반대한 바 있다.

      아시아나항공 인수 이후 재무부담에 대한 우려, 디벨로퍼 사업에 대한 불투명한 전략적 방향성 등에 대한 HDC현산의 구체적 해결 방안들이 제시되지 않으면 과거보다 거센 투자자들의 반발에 부딪힐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