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색했던 증권사 프라임브로커, TRS로 땅 짚고 헤엄쳤다
입력 2020.01.30 07:00|수정 2020.01.31 10:16
    리스크 적은 '증권사의 아파트 주택담보대출'
    6개 대형IB가 2조원 제공...연간 1000억 챙긴듯
    운용사와 이해관계 어긋나자 곧바로 회수 시도
    대형IB는 포기 안하겠지만..."시장이 줄어들고 있다"
    • 사모형 헤지펀드 환매중단 사태가 일파만파 커지고 있는 배경으로 이들 운용사가 맺은 총수익스왑(TRS) 계약이 꼽힌다. 운용사는 TRS를 통해 레버리지(대출)을 일으키며 유동성을 확보했고, 계약상대방인 종합금융투자사업자(종투사;대형IB)는 빈약했던 프라임브로커리지서비스(PBS;헤지펀드 지원업무)의 수익성을 만회했다.

      윈-윈(Win-Win)인줄 알았던 둘의 관계는 라임자산운용 사태로 인한 펀드런(펀드대량환매) 사태를 앞두고 파열음을 내고 있다. 채권자로서 우위에 서 있는 초대형IB들은 고객 손실 가능성을 감수하고도 TRS 회수를 추진하다 금융당국의 제지를 받은 것이다.

      채권자이자 상품 판매자인 초대형IB가 그간 '땅 짚고 헤엄치는' 식으로 영업을 하다 문제가 생기니 꼬리를 자르려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현재 국내 8개 대형IB 중 PBS 및 관련 TRS를 취급하고 있는 곳은 하나금융투자와 메리츠종금증권을 제외한 6곳이다. 미래에셋대우ㆍ한국투자증권ㆍNH투자증권ㆍ삼성증권ㆍKB증권ㆍ신한금융투자 총 6곳은 20여곳의 사모펀드 자산운용사들과 2조원 규모의 TRS 계약을 맺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들은 TRS를 PBS사업부의 주요 수익원으로 삼고 있다.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사모 헤지펀드에 제공하는 TRS계약의 수수료율은 연 3~5%로 확인된다. 2조원 규모의 TRS 자산에서 나오는 연간 수익만 600억~1000억원이라는 말이다. 사모 헤지펀드 시장이 대폭 성장한 것이 2년 전 일이니 6곳의 대형IB는 TRS로만 최대 2000억원을 챙겼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대형IB 입장에서 TRS계약의 투자 리스크는 매우 낮은 편이다.

      투자심사위원회 통과가 어렵지 않다. PBS부서 자체 한도를 활용해 자기자본투자(PI)에 준해 투자를 집행하는데, 대부분 해당 유가증권이 담보로 잡힌다. TRS 특성상 유가증권의 가격 변동 위험 및 법적 책임은 모두 운용사가 가져간다. 증권사는 말 그대로 유가증권을 맡아주고 그에 대한 수수료만 챙기면 된다. 은행의 아파트 주택담보대출과 크게 다르지 않은 셈이다.

      이 때문에 지난해 라임사태 발생 직전까지 주요 대형IB PBS부서들은 사모펀드 운용사들과 수시로 접촉해 '우리 TRS를 쓰시라'며 적극적으로 영업했다.

      다른 PBS 부문의 수익성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점도 TRS를 부추긴 배경이 됐다. PBS는 사모 헤지펀드에 리서치 및 리스크관리ㆍ주식 대차 및 주문 등 거래 관련 등 종합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에 대한 수수료를 받지만, 그 금액은 조 단위 펀드의 경우에도 수억원 수준으로 크지 않다는 전언이다.

      특히 라임운용 등 2017년 이후 인기를 끈 펀드들은 비상장사 메자닌 등 비유동자산에 주로 투자해 수익률을 높여왔다. 거래ㆍ대차 등 일반적으로 시장에서 수시로 매매가 돌아가며 나오는 수수료를 받을 수 없었던 셈이다. 상품 판매와 관련한 수익은 보통 현업부서인 WM과 나누는 경우가 많다. TRS 수수료는 PBS사업부가 사실상 독식할 수 있는 훌륭한 수입원이었던 셈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자산이 부실하지 않다면 거의 리스크 없이 연 3% 이상 수수료를 챙길 수 있으니 TRS 영업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던 부분이 있다"며 "폰지 사기 혐의로 TRS 대출마저 부실해진 신한금융투자-라임 무역펀드의 경우가 오히려 특이한 사례"라고 말했다.

      운용사들은 TRS가 합법과 편법 사이의 회색지대에서 사실상 용인되고 있었던 점을 적극 활용했다.

      2017년 기준, 사모펀드 업계의 최고 투자상품은 '비상장주'였다. 새로 상장한 공모주의 상장 후 평균 주가 상승률이 평균 51%에 달하던 시기였다. 상장 1년 전 투자한 비상장주의 경우 200% 안팎의 수익률은 예사였다는 평가다.

      라임운용 등 이번에 문제가 된 운용사들은 이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했다. 비상장 보통주의 경우 장외 시세 변동 우려가 있어 주식 매수 가격을 고정할 수 있는 전환사채(CB) 등 메자닌이 필수였다. 문제는 메자닌의 경우 보통 만기 3년에 조기상환이 1년6개월 안팎 조건이고, 상장까지 얼마나 걸릴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를 해결해준 게 대형IB의 TRS였다. 당장 현금의 유출이 없고, 해당 자산에 대한 모든 권리는 펀드가 그대로 보유한다. 언제든 환매 요구가 들어올 수 있는 개방형 펀드로 비유동자산에 투자할 때 생기는 단점을 TRS가 보완해준 것이다.

      악어와 악어새같은 관계였지만, 라임사태 이후 대형IB와 운용사의 이해관계는 달라졌다. 대형IB들은 운용사가 투자했고 자신들이 담보로 보유한 자산에 가치가 있는지, 향후 회수가 가능한지 의문을 품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TRS 회수 시도로 이어졌고, 알펜루트자산운용 환매 중단 사태를 불러왔다.

      한 증권사 리스크관리 담당자는 "솔직히 라임 무역금융펀드 영향이 없다고 말하긴 어렵다"며 "금융감독원이 나서 TRS 회수를 자제하라고 요청한만큼 일단 상황을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대형IB들의 TRS 회수 움직임에 대해 비판이 나오는 지점도 이 부분이다. 이해관계가 일치할 땐 열심히 돈을 밀어넣었다가, 상황이 수상하게 돌아가자 곧바로 꼬리를 자르려 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대형IB는 자사가 PBS를 제공하는 헤지펀드의 판매사이기도 하다. TRS 계약은 부채이기 때문에 대형IB가 회수 우선권 가진다. 해당 펀드에서 TRS 자금을 회수하고 난 뒤 남은 자산이 투자자들에게 돌아가는 구조다. 대형IB가 TRS를 회수하면 투자 구조에 따라 해당 증권사 창구에서 펀드를 산 투자자에게 손실이 생길 수 있다.

      TRS 회수 시도로 알펜루트운용 환매중단 사태를 초래한 건 한국투자증권과 미래에셋대우로 파악된다. 알펜루트운용 펀드 판매액 9400억여원 중 한국투자증권은 2970억여원, 미래에셋대우는 1000억여원을 판매했다.

      금융권 전문가들은 대형IB들이 쉽사리 TRS 영업을 포기하진 않을거라고 전망한다. PBS사업부가 할 수 있는 가장 대규모ㆍ고수익 사업인 까닭이다. 국내 증권사 IB부문의 인수합병(M&A) 사업부가 대부분 인수금융 위주로 돌아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문제는 이들의 핵심 영업처인 사모 헤지펀드 시장이 지난해 7월 35조원까지 성장한 이후 역성장을 거듭하고 있다는 점이다. 알펜루트운용 사태 이후 꼬리 자르기에 나선 대형IB들을 지켜본 운용사들이 이전처럼 적극적으로 TRS를 활용하려고 할지도 의문이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TRS는 비유동자산에 투자한 헤지펀드의 유동성을 보충해주는 역할을 했는데, 라임사태 이후 비상장ㆍ해외대체자산 투자가 쉽지 않아 수요 자체가 크게 줄어들 것 같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