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LFㆍ라임 사태가 '깨소금'맛인 외국계 은행들
입력 2020.02.21 07:00|수정 2020.02.24 11:02
    잇딴 금융 사고로 '반사이익' 얻어
    기회 놓칠새라 고객 유치 열 올려
    • "(전략)...우리가 빚더미에 앉게 된 데는 무엇보다 그들만의 빚 잔치를 벌인 금융권의 책임이 막중하다 생각이 듭니다. 그렇기에 금융사들이 합리적인 방향으로 부채를 줄일 수 있도록 좀더 힘을 써야 하지만 당연히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오히려 자극적이고 교묘하게 여러 광고 매체를 통해 많은 사람들을 현혹시켜 빚쟁이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스스로 가계 재정을 지켜내야 하며 -통합대출-이 그에 따른 적절한 방안이라고 판단됩니다." (한국씨티은행 명의로 불특정 다수 고객에게 송신된 광고성 메시지)

      국내 금융시장에서 존재감이 급속히 사라져가던 외국계 은행들이 '어부지리'를 얻고 있다. 국내은행들이 자초한 파생결합펀드(DLF)ㆍ라임자산운용 사태의 반사이익을 얻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이틈을 타 고객유치에 활발이다. 실제로 고객 유치 성과도 나고 있다. 이를 두고 금융사고에 편승해 자사 상품 마케팅에 지나치게 열을 올리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권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 진출한 대표적인 외국계 은행인 한국씨티은행의 개인 고객이 지난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회사는 구체적인 숫자를 밝히지 않았지만, 지난해 누적 자산관리(WM) 신규 고객 수가 2018년 대비 8%, 고객 자산 규모는 24% 증가했다는 후문이다.  특히 WM 수익의 핵심 고객인 10억원 이상 고액 자산 고객 증가율이 16%의 신장률을 보였다.

      역시 외국계로 분류되는 SC제일은행도 마찬가지다. SC제일은행은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WM 신규 고객 증가율이 전년 대비 28% 늘어났다. 공모펀드는 판매는 약 19%, 외화 자산(역외 펀드 등)은 약 74% 증가했다. 국내 주요 대형은행들은 DLF·라임사태와 연루되면서 고객들의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이들 외국계 은행은 이런 상품을 취급하지 않았다는 점이 핵심 배경으로 꼽힌다.

      한국씨티은행과 SC제일은행은 손실이 아니라 고객이 얼마나 수익을 가져갔는지를 적극 알리고 있다. 한국씨티은행은 모델 포트폴리오를 도입해 지난해 ‘적극투자형’ 기준 19.8%, ‘위험중립형’ 기준으로는 17.2%의 성과를 냈다고 밝혔다. 한국씨티은행은 모델 포트폴리오 기반으로 리스크 관리에 나서며 DLF 사태에 무관할 수 있었고, 투자 수익률도 높일 수 있었다고 강조하고 있다.

      SC제일은행은 상품 계약 검토 단계부터 선정 및 출시까지 철저한 검증 절차를 강조하고 있다. DLF 상품은 이런 프로세스 과정에서 걸러졌다는 설명이다.

      사실 3년 전까지만 해도 두 은행 모두 줄어드는 수익에 지점 축소 등을 고민했었다. 한국씨티은행은 2017년에는 전체 지점의 80%를 축소하고 배당조차 안하겠다고 밝혔다. 점포망 축소는 한국씨티은행의 주력 사업 중 하나인 신용카드 사업의 부진으로 이어질 만큼 신규회원 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 바 있다.

      SC제일은행은 실적이 꺾이면서 철수설이 끊임없이 나왔다. 한국SC제일은행 철수설은 2015년 6월 SC제일은행의 한국지사를 성장시킨 피터 샌즈 전 회장이 사임하며 불거졌다. 국내 순이익은 줄어드는 반면 배당금과 로열티 관련 자금은 해외 본사에 보내야 하는 상황이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 이런 실적 성장에는 금융사고에 반사이익을 본 부분이 있다. 이들은  "이때가 기회다"며 고객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한국 씨티은행의 경우 본사 차원에서 보낸 문자가 아니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정작 담긴 내용에는 노골적으로 국내 금융사가 처한 사태가 강조되어 있고 씨티은행이 올해부터 취급중인 론 상품(햇살론) 가입 권유 내용이 실려있다.

      이를 접한 국내 금융사들은 부글부글 끓고 있다. 외국계 은행은 본사가 외국에 있어 감독당국의 입김에서 자유롭다는 점에서 금융사고가 터지면 제재가 쉽지 않다. 이런 문제가 외국계 은행에 발생하지 않으란 법이 없다는 점에서 금융권 모두가 책임감을 가져야 할 문제를 '나는 아니다' 식으로 접근한다는 지적이다.

      한 국내 금융사 관계자는 "외국계 은행이라고 국내 금융사보다 안전하다고 볼 수 없다"라며 "금융사고가 발생하면 소비자 보호에 있어서 국내보다 취약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또한 고객 수가 늘고 있다곤 하지만, 규모나 수로 볼 때 큰 의미가 없다는 평가도 나온다. 주요 시중은행 프라이빗뱅킹(PB) 부문의 5억원 이상 고액자산가 운용자산 규모는 30조원을 훌쩍 넘는다.

      한국씨티은행이 국내 PB 비즈니스의 원조이긴 하지만, PB 부문 운용자산은 국내 시중은행 대비 상당 부분 적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한국씨티은행에서 가장 큰 PB점포인 청담센터가 관리하는 자산이 2조원 안팎으로 추정된다. 한국씨티은행의 지난해 기준 총 점포 수는 38곳(영업소 제외)이다. PB부문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SC제일은행은 PB부문 자산이 한국씨티은행보다도 더 적다.

      국내 은행의 고객 관리 전반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어지고 있는 까닭에 다시 조명받고 있지만, 이들 외국계 은행은 2018년까지만 해도 눈에 띄게 성장성을 잃고 있었다. 사업을 특출나게 잘했다기보다 경쟁자인 국내은행들이 미끄러지며 상대적으로 돋보이게 된만큼, 이런 추세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지난해 금융사고를 계기로 소비자보호조직이 잇따라 만들어지고, 성과기준(KPI)을 수익보다 소비자보호에 맞추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며 "이런 조치를 고객들이 수긍할지 여부가 외국계 은행의 실적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