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은행 고객 수익률 관리하라'...현실적 한계에 난감한 은행들
입력 2020.02.23 10:43|수정 2020.02.26 16:56
    금감원 '수익률 관리' 요구에 은행들 줄이어 KPI 개편
    3년 만에 기조 변화…'고위험 고수익' 이해상충 우려↑
    결국 '직원 전문성'이 답…은행에 '정보 청구 권한' 줘야
    • 파생결합펀드(DLF)·라임 사태 이후 금융당국이 판매사인 은행에 '고객 수익률 관리'를 요구하고 있다. 비이자수익을 확보하려 자산관리(WM)사업을 키우던 은행들은 영업을 지속하기 위해서라도 '고객 중심 수익률'을 내세워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은행의 고객수익률 지표 관리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이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시장금리 이상의 플러스 알파 수익을 위해선 기본적으로 고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투자의 기본 원칙을 고려하면 수익률 관리라는 행위는 오히려 이해상충을 야기할 수 있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은행들과 함께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고객의 수익률을 잘 관리하도록 하는 내부통제 시스템을 자율적으로 갖출 수 있는 방식을 논의하고 있다. DLF·라임 사태의 원인으로 꼽힌 '불완전 판매'가 고객수익률보다는 은행의 이익을 더 중시하는 직원 핵심성과지표(KPI) 때문에 발생했다는 지적이 이어진 데 따른 조치다.

      금감원 은행감독국 관계자는 "금감원이 해야할 일은  DLF 사태 이후로 고객의 수익률을 잘 관리하도록 하는 내부통제 시스템을 은행이 스스로 자율적으로 어떻게 갖출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를 주도하는 것"이라면서도 "은행들이 자율적으로 '고객 수익률이 떨어지면 안내하겠다'고 공개하고 있긴 한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시스템을 운영할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은행들도 금융당국 지침에 따라 고객 중심으로 KPI를 개편하는 모습이다. 신한은행은 경쟁적 환경을 완화하기 위해 직원 본인이 목표를 설정하고 그 달성률에 따라 높은 평가를 주는 평가방식인 '같이 성장 평가제도'를 올해부터 도입한다. 또한 프라이빗뱅커(PB) 대상 KPI 중 고객부문 비중을 35%에서 80%로 확대했다. 세부적으로 보면, 고객부문 지표인 '고객수익률'을 '고객가치성장'으로 명칭을 바꾸고 그 비중을 16%에서 30%로 확대했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10월 비이자이익부문 평가항목을 삭제했다.

      은행들이 WM사업부를 한창 육성하던 2017년까지 PB 대상 KPI를 '고객별 수익률 극대화' 중심으로 설계한 것과는 상반되는 모습이다. 오히려 최근 KPI는 모호해졌다는 평가다. DLF·라임 사태를 겪으면서 '높진 않지만 떨어지진 않는 수익률' 등 안정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선회하는 모습이다.

      업계는 3년여 만에 '고객수익률 극대화'에서  '고객수익률 관리'로 WM사업부 성과에 대한 기조가 바뀐 데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애초에 '적정한 수익률'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는 것인지 의문이 제기된다. 이런 맥락에서 은행들의 '고객수익률 관리'는 결국 진정성있게 고객을 보살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보여주기식 정책에 가깝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 지표마저 사내 고과 평가를 위한 일개 지표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은행의 인재 관리 시스템 특성상 고객수익률 지표가 온전히 고객 중심으로 구성되는 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고객 수익률을 '관리'하는 행위에 있어서도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불만이 제기된다. 금융당국은 고객의 수익률이 떨어지는 것을 방치하지 말고 '관리'하라는 입장이지만, 애초에 판매사에 불과한 은행이 어떻게 '관리'를 할 수 있을지부터가 애매하다. 결국 손실 구간 진입 전에 기계적으로 경고를 해주는 방안 정도가 언급되고 있다. 이는 관리와는 다소 멀어져있는 개념이다. 게다가 고객의 원금 정도가 보장될 뿐이라, 기회비용에 대한 다툼의 여지도 남아있다는 지적이다.

      애초에 저위험 고수익 상품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반박도 만만치 않다. 시장 논리에 따라 위험부담을 감수하고 고수익을 노리는 상품에 투자했다면, 그에 대한 반대 급부는 결국 투자자의 몫이라는 평범한 상식이 금감원의 정책으로 인해 뒤틀리고 있다는 것이다.

      현 상황에서 집중해야할 정책은 결국 불완전 판매 방지일 거란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판매자가 판매 단계에서 고위험상품에 대해 제대로 설명해 소비자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오히려 더 중요하다는 게 확인된 셈이다. KPI 손질 등도 결국 이런 '기본'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은행들이 운용사에 펀드상품 구성에 대한 정보를 요청할 권리를 은행에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라임사태도 은행 등 판매사들이 펀드 내 포트폴리오 구성이 중간에 바뀐 것을 알아채지 못해 손실 규모가 커졌다.

      한 시장 관계자는 "수익률이 높아야 한다는 것은 그만큼 고위험 상품을 팔아야 한다는 건데, 금융당국은 이를 원천적으로 하지 말라는 것"이라며 "결국 은행들은 지금 금감원이 하라고 하니까 일단 알겠습니다 하고 겉보기 모양새만 갖추고 있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