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공룡 롯데·신세계, '진화'와 '화석'의 갈림길
입력 2020.02.24 07:00|수정 2020.02.26 16:56
    신세계그룹, 법인 더 늘려 의사결정 더 복잡
    롯데그룹, 물류 강점 있지만 대기업 구조 장단점
    "오프라인 업체로서 유통사업 확실한 목표 필요"
    • 유통 '공룡' 롯데와 이마트를 미래 유통시장에서도 볼 수 있을까. 이 질문에 각 업계별로 의견이 첨예하게 갈린다. 확실한 것은 두 회사의 생존이 어떤 목표를 세웠는지, 그것을 위해 얼마나 구체적인 전략을 세웠는지에 달렸다.

      롯데와 이마트 모두 변화 대응에 늦었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지금까지는 이마트에 좀 더 높은 점수를 주는 분위기였다. 롯데는 사업적으로는 중화학에 좀 더 무게감을 싣고 있고 여러 내홍을 겪으며 경황이 없었다. 반면 이마트는 유통이 전부다 보니 절실할 수밖에 없다.

      최근 이마트를 바라보는 시장의 시선은 한층 냉정해졌다. 정용진 부회장의 여러 실험들이 속속 실패를 하면서다. 이마트는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마트의 정확한 목표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고 얘기한다.

      이마트는 온라인 사업 강화를 위한 투자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지난 2018년말 이마트몰을 분할해 신규법인을 설립했고, 이어 지난해 3월 신세계몰과 흡수합병을 진행하면서 재무적투자자(FI)로부터 7000억원의 자금을 유치했다. 유입된 대규모 투자금은 온라인 전용 물류센터를 확대하는 데 투입되고 있다. 현재 이마트는 용인, 김포 등에 총 3개의 온라인 전용 자동화 물류센터(NEO 1~3호점)를 보유하고 있고 이를 장기적으로는 20개까지 늘릴 방침이다.

      온라인 통합쇼핑몰 SSG닷컴의 존재감이 커진 것은 사실이다. 올해부터 서울 전 지역으로 새벽배송 권역을 확장했고, 경기지역도 새벽배송 권역을 넓히는 중이다. 하루 배송 가능한 물량도 올해는 두 배가량 늘려 잡았다. 플랫폼은 통합 이후 매출 증가 효과를 거뒀다.

      하지만 이커머스 시장의 경쟁은 더 심화했고 수익성은 바닥이다. 이마트가 이커머스 시장, 더 넓게는 유통 시장에서 무엇을 하려는지 불분명해 보인다. 기존 오프라인 유통업체가 당장 이커머스 업체를 따라가는 것은 한계가 있고, 신세계그룹의 브랜드 가치를 십분 활용하면 틈새를 노릴 수도 있는데 말이다.

      투자은행(IB) 관계자는 "신세계그룹은 이미 신세계와 이마트가 분리된 상황에서 새로 온라인법인까지 만들면서 의사결정 단계가 한층 복잡해졌고 회사간 이해상충 문제는 더 커져 의사결정 속도와 실행 측면에서 이커머스 업체에 밀릴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규모의 경제를 하겠다는 것인지, 타깃층을 정밀 공략해 수익성을 확보하겠다는 것인지가 모르겠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다들 풀필먼트를 하겠다고 하는데 기존 유통업체들이 잘못 이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며 “풀필먼트는 유통은 물론 운송과 물류, 인터넷 사업이 모두 결합된 형태인데 유통공룡들은 인터넷과 물류 부문의 결합에 대해선 상대적으로 취약한 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상대적으로 한 발 늦은 롯데의 잠재력이 더 클 수 있다고 보는 것도 같은 배경이다. 물류(롯데글로벌로지스), 인터넷(롯데정보통신) 등 그룹 차원에서 활용할 자원이 신세계그룹에 비해 많다. 그리고 그룹 차원에서 결정을 하면 일사천리로 밀어붙일 수도 있다.

      롯데 유통 부문은 통합 작업이 한창이고 본격적인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지난해 7개 롯데쇼핑 온라인 채널을 합친 ‘롯데ON’을 구축한 데 이어 오는 3월 통합 앱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롯데리츠 상장으로 조달한 금액의 30%를 이커머스 사업에 투자하기로 했다. 롯데마트는 매장의 물류센터 기능을 확대해 올 상반기 중 2개의 거점 물류센터를 오픈한다. 롯데홈쇼핑은 올초 조직개편을 통해 ‘풀필먼트 태스크포스(TF)’ 팀을 새롭게 꾸렸다. 오프라인 점포는 대대적으로 구조조정 한다. 백화점과 마트, 슈퍼, 롭스 등 오프라인 점포 200여곳을 정리하기로 했다. 전체 오프라인 매장 10곳 중 3곳을 줄이는 셈이다.

      롯데는 그룹 차원에서 스마트팩토리 구축, 스마트 물류, 스마트 리테일 등 제조와 물류, 유통을 아우르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전환)' 전략을 적극 펼치겠다고 공언했다. 다만 ‘롯데’이기 때문에, 다시 말해 대기업만의 구조적 한계가 존재한다. 계열사별로 존재감을 드러내야 하는데 각사 간의 조율, 협업이 원활히 이뤄질지 불확실하다. 비즈니스유닛(BU) 체제가 가동되면서 유통BU장의 목소리가 커진 것은 사실이지만 말 그대로 단독 행동을 취하긴 여전히 어려운 구조다. 그룹 전반을 컨트롤하는 지주사의 결단을 기다려야 한다. 인내심 부족, 비효율적 투자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자원만 놓고 보면 롯데가 가장 풍부하지만 이것을 누가 책임을 지고 교통 정리를 할 것이냐가 관건"이라며 "신세계그룹과 비교하면 롯데만의 유통 차별화가 느껴지지 않는 상황에서 대규모 투자를 예고하며 이커머스 업체들과의 직접적인 경쟁에 뛰어드는 것은 '모 아니면 도'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