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으로 코스피 빠져나가는 외국인...코로나19 탓만이 아니다
입력 2020.02.26 07:00|수정 2020.02.27 16:49
    이틀간 1.5兆 넘게 투매...무너진 '반도체 회복' 논리
    코로나19로 경기회복 기대감 타격..미국발 유동성도 우려
    '외국인 매도세 이제 시작된 것'...당분간 여파 불가피
    •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본격적으로 이탈하고 있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글로벌 유동성 환경에 변화가 생긴 것도 핵심 원인 중 하나라는 지적이다.

      코로나19의 글로벌 확산에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이하 연준)가 추가 유동성 공급 및 금리 인하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미국 증시는 물론, 국내 증시를 끌어올린 '유동성 의존 심리'가 악화되며 증시에 충격을 주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지난 24일부터 불과 이틀간 1조5000억원이 넘는 주식 물량을 투매했다. 24일 하루동안에만 7800억여원어치를 순매도했고, 25일에도 장 초반부터 과격할 정도의 매도세를 유지했다. 25일 정오 기준 순매도 규모만 5400억여원에 달했다.

      매도는 대형주에 집중됐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이틀간 8000억원에 가까운 삼성전자 주식을 팔아치웠다. 전체 순매도 규모의 절반에 가깝다. SK하이닉스 주식도 2000억원이 넘게 순매도했다. 두 종목 이틀간 순매도만 1조원 규모다.

      24일 폭락 이후 25일 반등장에서 삼성전자는 1% 이상 반등에 성공했다. 반면 SK하이닉스는 또 다시 2% 이상 급락했다. 지난해 말~올해 초 득세한 '반도체 업황 회복' 논리라면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주가 흐름이다.

      배경에는 연기금의 '선택적 방어'가 있었다. 삼성전자의 경우 이틀간 연기금이 1000억원이 넘게 순매수했다. 개인들의 매수세도 힘을 보탰다. 반면 SK하이닉스는 개인 외 이렇다할 매수 주체가 없었다. 외국인의 매도세가 전방위적으로 펼쳐진 가운데, 연기금을 비롯핸 국내 수급이 소화할 수 있었던 주식은 반등에 성공했고, 그렇지 못한 주식은 급락세를 지속한 것이다.

      문제는 외국인의 매도세가 이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올해 들어 2월21일까지 약 4600억원을 순매수했다. 반도체가 본격 반등을 시작한 지난해 12월 초부터 따지면 약 1조원가량을 순매수했다.

      이 기간 외국인들의 코스피 매수 논리는 크게 두 가지였다. 미중 무역분쟁 긴장 완화에 따른 리플레이션(reflation;회복) 기대감, 특히 반도체 업황 회복 기대감이 작용했다. 여기에 넘치는 유동성이 기름을 부었다. 연준이 미국 초단기 자금시장(레포시장)에 푼 자금이 나스닥 등 증시로 향했고, 그 일부가 코스피시장까지 유입됐다는 진단이다.

      이 덕분에 코스피시장은 올해 1월 이머징 증시 중 최고의 상승률을 보였다. 바꾸어 말하면, 이 주요 요소 중 하나라도 흔들리면 코스피의 상승세는 지속될 수 없었다는 말이다.

      코로나19 사태는 리플레이션 기대감을 완전히 사라지게 만들었다. 25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0년 2월 소비자동향조사에 따르면,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96.9로 전월 대비 7.3포인트 하락했다. 4년 8개월만에 가장 큰 낙폭이다.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이 무너지고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현대자동차 등이 이미 중국발 부품 이슈로 공장 가동 중지 위기를 겪었다. 금융권 관계자들은 코로나19의 핵심 유행지인 대구경북 지역이 국내 주요 산업 중간재 생산 전초기지라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여기에 그간 증시를 받쳐주던 유동성까지 흔들리고 있다는 평가다. 현지시간(24일) 미국 증시 다우지수는 3.4%, 나스닥지수는 3.7% 폭락했다. 코로나19도 그렇지만, 이달 20일 이후 연준 관계자들로부터 쏟아져 나온 매파적 발언이 도화선이 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20일 클라리다 연준 부의장은 "많은 전문가들이 금리를 인하할 것이라고 예측하지 않고 있다"며 금융가의 기준금리 인하설을 정면 부인했다. 불라드 세인트루이스 연준 총재는 24일 "바이러스가 소멸되고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간다고 보면, 이런 시나리오에서는 금리 인하가 필요없다"고 발언했다.

      연준은 미국 레포시장에 지난해 10월 이후 최대 5000억달러(600조원)의 유동성을 공급해왔다. 주로 1일짜리 초단기 대출 형식이었는데, 이를 매일 차환해주니 일부 헤지펀드들은 사실상 중장기 자금으로 인식, 증시에 투자를 집행하기도 했다. 이 자금 중 일부가 국내 증시까지 흘러들어온 것으로 파악된다.

      연준은 올해 4월 레포시장 유동성 공급을 중단키로 했다. 파월 미국 연준 의장은 코로나19사태가 본격화한 지난 12일에도 이 같은 기조를 재확인했다. 앞서 지난 7일엔 퀄스 연준 부의장이 상시적 단기시장 자금공급 정책인 '스탠딩 레포'의 필요성을 부인한 바 있다.

      한 자산운용사 주식운용본부장은 "미국 증시에서 3대 지수가 모두 3% 넘게 폭락한 건 단순히 코로나19 확산 땜에라고 보기엔 어렵다"며 "나스닥의 사상 최고가 행진을 만들어낸 유동성 파티가 끝난다면 그간 IT주 중심으로 외국인 투자가 대거 들어온 국내 증시도 영향을 벗어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