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發 현대차 변신 주목한 삼성 준법감시위
입력 2020.02.26 07:00|수정 2020.02.27 16:48
    현대차, 엘리엇 제안 일부 수용 후 재평가
    주주 대하는 방식 합리적 변화에 긍정적
    준법감시위 설립·역할 비판 목소리 있지만
    위원들 “삼성전자도 현대차처럼” 일말 기대감
    • 삼성 준법감시위원회가 본격 운영을 앞두고 있지만 비판의 목소리는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양형 때문에 설립돼 근본적 한계가 있다는 회의적 시각이 다수다. 준법감시위는 기왕 삼성전자를 감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만큼 일말의 성과를 보여주겠다는 의지를 키우고 있다. 위원 내부에서는 벤치마킹 대상으로 현대자동차가 거론된다.

      삼성과 현대차, 두 그룹의 경쟁 의식을 감안하면 삼성의 자존심이 상할 법도 하다. 하지만 이는 거버넌스 관점에서 현대차가 삼성보다 한 발 더 앞서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현대차는 ESG(환경·사회·거버넌스) 투자 관점에서도 글로벌 기업이 됐다면, 삼성은 특정 부문에선 여전히 구시대적이라는 얘기다.

      삼성 준법감시위가 현대차를 주목하게 된 배경은 미국계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 때문이다. 2019년 주주총회에서 현대차가 엘리엇의 주주제안 일부를 수용한 것은 ‘역사적’이라고 평가한다.

      현대차는 엘리엇이 제안했던 보수위원회, 투명경영위원회 설치를 표결없이 원안대로 승인했다. 또 사외이사 구성에 있어서도 엘리엇이 제안한 후보진에 대응하기 위해 조금 더 신경을 썼고 이것이 투자자들의 긍정적 견해를 이끌어냈다는 평가다.

      당시로선 엘리엇 등 외부세력의 압박에 의한 조치로 읽혔지만 결과적으로 현대차가 주주들을 대하는 방식이 합리적으로 변했다는 상징적 의미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적대적인 주주라도 합리적 의견을 내놓으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모습으로 비쳐져 외부 평가가 좋아질 수 있다. 오너 경영이라도 주주와 이해관계 합치하면 투자자에게도 좋은 일이고 주주들의 지지는 당연히 따라온다는 얘기다.

      현대차그룹은 이번엔 주주공모로 사외이사 추천을 받고 전자투표제도를 전 계열사에 도입하기로 했다. 사실상 ‘정의선 시대’ 출범을 앞둔 상황에서 그룹 전 계열사가 주주친화정책에 속도를 붙였다.

      외국계 투자은행(IB) 관계자는 “현대차는 주주친화 경영에 속도를 내면서 오너 리스크를 상당 수준 상쇄됐다고 본다”며 “반면 이재용 부회장 개인 혐의를 해결하기 위해 이사회를 제쳐두고 독립 외부기구를 설립해야 하는 삼성은 반대 상황이 됐다”고 전했다. 외국인 투자자 눈에는 오너 경영인의 법률적 리스크로 공백이 발생, 그에 따른 우려도 이어지고 있지만 그것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지배구조 개편 무산, 엘리엇 공격 이후 현대차의 행보가 '어쩔 수 없는' 자발적 변신 노력이었지만 삼성은 여러모로 비교 대상이 된다. 그래서 일부 삼성 준법감시위 위원들은 삼성전자를 위시한 주요 계열사들의 주주정책을 현대차 수준으로 유도하는 것을 꾀하려고 한다. 하지만 준법감시위의 설립 배경과 역할 한계는 역시 위원들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배구조 관련 한 관계자는 “삼성이 변하려면 스스로 변하거나 외력의 의한 강제조치가 필요한데 준법감시위는 이도저도 아니고 오히려 이 같은 예외적 조치가 법 집행을 통한 변화까지 가로막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봐야 한다”며 “몇몇 의혹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면 더더욱 존재가 필요없는 조직이라는 것인데 준법감시위 스스로 실력을 과신하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준법감시위가 유일하게 관심 갖는 부분은 위원들의 평판 관리라는 지적도 있다. 그런데 그 평판을 관리하기 위해서라도 삼성의 변화를 이끌어 낼 어떠한 노력이라도 할 것이라는 분위기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 준법감시위 위원은 “위원들도 준법감시위가 재판에 이용될 것이라는 프레임을 알고 있고 이와 관련한 외부 비판에도 준법감시위에 들어온 것은 이런 기회라도 활용을 해보자는 데 동의했기 때문”이라며 “재판이 끝나면 준법감시위 운명이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준법감시위)도 계획이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현대차에 비하면 삼성 거버넌스는 그만큼 구시대적이라는 것”이라며 “준법감시위가 이재용 부회장 양형에 활용될지언정 삼성이 현대차와 같은 방향으로 갈 수 있게 활동해보자는 분위기”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