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의 회장 연임 반대...신한·우리 '지배구조 신속절차' 준비할 듯
입력 2020.03.20 07:00|수정 2020.03.23 10:03
    외국인 지분율 65%인 신한금융 비상
    상대적으로 우리금융은 안정권
    국민연금 회장 연임반대 파장 클 듯
    • 주주총회를 앞두고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 ISS에 이어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위원회마저 회장 연임에 반대의사를 표명하기로 했다. 현직 회장의 연임이 걸린 신한금융지주와 우리금융지주는 주주총회 부결에 대비해 지배구조 신속절차를 준비해야할 지경에 몰렸다.

      지분 구조에 따라 분위기가 다소 다른 것은 사실이다. 외국인 지분율이 높은 신한금융은 이 사태를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지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상대적으로 외국인 지분율이 작은 우리금융은 아직까진 큰 문제 없다는 입장이지만, 국민연금 등 정부 입김이 큰 곳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점에서 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인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가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과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 연임안에 반대를 권고한 분석 보고서를 회원사에 보냈다.

      ISS의 '한국 의결권 지침서'(Korea Proxy Voting Guidelines)에 따르면 CEO가 민형사상의 법률 문제에 얽혀 있으면 원칙적으로 연임에 반대하게 되어 있다. 이번에도 ISS는 지침에 따라 기계적으로 연임 반대의사를 표현한 것으로 분석된다.

      신한금융 조 회장의 경우 신한은행 채용비리 1심 판결에서 일부 유죄 판결을 받았다는 점이 문제가 됐다. 우리금융의 손태승 회장은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징계를 받은 게 의결권 지침상 반대를 표명해야 하는 배경이 됐다.

      여기에 국민연금의 반대도 기정사실화됐다. 국민연금은 19일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탁위)를 열고 신한금융, 우리금융 회장 연임안에 반대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적극적 주주활동 가이드라인’을 만든 국민연금은 ‘법령상 위반’ 우려로 기업가치가 훼손 될 경우 적극적 주주권을 행사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당장 다급한 쪽은 신한금융이다. 신한금융의 외국인 주주 지분율은 65%에 이른다. 통상 외국인 주주들은 ISS 권고사항에 따라서 의결권을 행사한다. 대부분이 해외 대형 금융기관이란 점에서 ISS에 이견을 제기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현 경영진에 우호지분이 재일교포 주주와 BNP파리바 지분을 합한 약 20% 가량이란 점에서 일부 외국인 주주와 국민연금(9.76%)이 돌아설 경우 주총에서 팽팽한 표대결이 예상된다.

      조 회장 연임안건은 주총에 전체 주주의 4분의 1이 참여한 가운데 이중 과반이 넘는 사람이 찬성할 경우 통과된다. 신한금융의 주주총회는 오는 3월26일이다. 다만 세계 2대 의결권 자문사인 글래스 루이스(Glass Lewis)는 조용병 회장 연임안에 찬성하며 ISS의 의견에 반대의견을 냈다는 점에서 외국인 주주들이 ISS의 의견을 적극 수렴할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평가다.

      상대적으로 우리금융은 외국인 지분율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점에서 신한금융보다는 덜 다급한 상황이다. 우리금융의 외국인 주주 지분율은 30% 수준이다. 손 회장 연임에 과점주주들과 우리사주조합의 지지를 받았다는 점에서 연임 안건 통과를 자신하는 상황이다.

      변수는 17.25%를 보유한 예금보험공사가 연임에 어떤 의견을 내는지다. 예금보험공사가 우리금융지주 이사회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미 손 회장의 연임안건을 참여한 것이란 의견이 많은 만큼 큰 이변이 없다면 손 회장 연임을 지지할 것이란 의견이 많다. 하지만 예금보험공사가 기존의 입장을 뒤집고, 2대주주인 국민연금(7.71%)마저 손 회장의 연임을 반대하고 나선다면 그 결과는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

      이러다 보니 금융권에선 두 금융지주의 거버넌스 이슈가 다시 본격적으로 부각하는 것이 아닌지 관심이 커지고 있다.

      신한금융지주는 '연임 불발에 대한 상황은 가정하고 있지 않다'며 배수의 진을 쳤다. 신한지주지배구조 및 보수체계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대표이사 회장이 불의의 사고나 갑작스러운 건강상 이유 등으로 그 직무를 더 이상 수행할 수 없는 경우 지배구조 및 회장후보추천위원회규정 제9조에 따라 승계계획 상의 절차를 빠르게 진행하는 가속승계 프로세스를 통해 대표이사 회장후보를 추천하도록 되어있다.

      우리금융도 손 회장 연임 불발시 이와 같은 프로세스를 통해 차기 회장을 선임할 것으로 보인다. 일단 연임안 부결로 회장이 유고가 되면 이번에 사내이사로 추천된 이원덕 부사장이 경영공백을 막게 될 전망이다. 이 부사장은 손 회장과 같은 한일은행 출신으로, 재무와 전략을 두루 거치며 '세컨맨'의 입지를 다져온 인사다. 차기 회장은 이원덕 부사장 체제 하에서 다시 신속하게 추천 절차를 밟게 된다.

      연임 여부와 별개로 두 금융지주 모두 일단 신속절차에 대한 사전 준비는 해두어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게 금융권의 평가다. 주주총회 결과는 누구도 예단할 수 없는데다,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는 건 사실인 까닭이다. 다만 어떠한 경우든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대혼란을 피하긴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정부 책임론까지 불거질 수 있을 전망이다. 우리금융의 경우 금융당국이 무리하게 제재에 나섰다는 비판이 크다. 신한금융은 1심 판결에 따라 의사결정을 하도록 규정한 국민연금의 가이드라인이 불편할 수 있다. 신한금융 이사회는 '최종심'을 기준으로 조 회장의 연임을 결정한 까닭이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유행병)이 유발한 국가 경제 위기 상황에서 국민연금이 무리하게 주주권 행사를 시도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국가 위기상황에서 금융지주 수장마저 자리를 지키지 못한다면 두 금융지주의 경영공백은 불가피하다”라며 “회장 연임에 양사가 사활을 걸 수 밖에 없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