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감하고 선제적인 증시 안정 대책이 '증시교란펀드'라니...
입력 2020.03.23 07:00|수정 2020.03.24 10:22
    • 코스피지수가 2200에서 1450대까지 떨어지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21거래일이었다. '좌시하지 않겠다'던 정부는 폭락이 시작된 지 한 달만에 '과감하고 선제적인' 대책을 내놨다. 30년전 실패로 끝났고, 12년전 언발에 오줌누기라는 평가를 받았던 '증시안정펀드'(이하 증안펀드)를 언급한 것이다.

      19일 장중 대책이 발표됐지만 코스피지수는 정부 대책을 비웃듯 줄곧 하락을 거듭했다. 연기금이 3800억원을 순매수하며 올해 두 번째로 많은 자금을 투입했지만, 이날 코스피지수는 마이너스(-) 8.4% 하락으로 마감됐다.

      정부 대책 발표가 나온 뒤 증권가에서는 '택도 없는 대책'이라는 반응이 곧바로 나왔다. 효과가 없는 것으로 입증된 공매도 금지에 이어, 오히려 부작용이 우려되는 고리짝 시절 대책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증안펀드의 원조격인 증시안정기금은 여전히 증권가의 쓰라린 상흔으로 남아있다. 당시 나온 '증시교란기금'이라는 말이 아직도 회자될 정도다.

      1990년 3월, 코스피지수가 1000선에서 800선으로 밀리자 정부는 증시를 부양하겠다며 금융회사ㆍ상장사 자금을 각출해 6000억원 규모의 기금을 조성했다. 이후 기금 규모는 6조원까지 불어났다. 한국투신 등 당시 3대 투신사는 1990년 4월부터 연말까지 2조7000억원어치 주식을 쓸어담았다.

      시도는 좋았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정부 관계자가 기금 운용역에게 전화로 매수할 종목을 불러주는 모럴해저드가 난무했다. 지수를 올려야 하니 대형주만 매수했고, 중소형주는 소외됐다. 우선주는 도외시하고 보통주만 쓸어담으며 우선주 괴리율이 치솟았다.

      결정적으로 1992년 8월 코스피지수가 450대까지 밀렸다. 증안기금의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일부 투신사는 자본금이 잠식돼며 부실회사로 전락했다. 1996년 기금이 해산한 뒤에도 분배금 등을 두고 소송전이 벌어지며 2010년에야 최종 정리됐다.

      증시안정기금은 2003년 카드대란때 증안펀드로 이름을 바꿔 재등장한다. 당시 증권유관기관들이 참여해 4000억원 규모를 조성했다. 2008년 금융위기 때에도 5000억원 규모 증안펀드가 조성됐다.

      2007년말 기준 코스피와 코스닥을 합친 국내 증시 시가총액 합계는 1052조원이었다. 5000억원의 증안펀드로는 유의미한 수급을 만들 수 없었다. 2008년말 국내 증시 시가총액은 620조원으로 곤두박질쳤다.

      오히려 필요없는 잡음만 만들었다. 증안펀드 운용을 누가 맡느냐, 누가 맡을지 심사하는 사람은 누가 하느냐를 두고 힘을 합쳐도 모자랄 금융사들 사이에 드잡이질이 벌어졌다. 한국거래소가 더 많은 기금을 출자하고도, 막상 펀드 관련 결정은 금융투자협회가 좌우하는 것을 두고 미묘한 신경전이 감지되기도 했다.

      정부가 이를 모를리가 없다. 실제로 증안펀드와 관련해 이전과는 다르게 금융안정기금을 통한 지원이 언급되고 있다. 한국은행 발권력을 동원해 금융안정기금을 조성하고, 이 중 일부를 증안펀드에 투입하는 방안이 언급된다. 당초 민간 금융회사를 대상으로 증여 방식 자금 각출을 검토했던 금융위도 다른 방식을 모색하는 움직임이 감지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증시교란펀드'의 문제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전에 없던 부작용을 다시 만들어낼 수도 있다.

      금융안정기금을 통한 증안펀드 지원은 중앙은행 발권력이 곧바로 증시로 흘러들어가는 셈이라 또 다른 논란이 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업어음(CP)이나 회사채 매입을 통해 '기업신용'(크레딧)을 지키는 방향으로 자금 투입을 준비하고 있다. 중앙은행이 직접 증시에서 주가연계증권(ETF)을 매입해 증시를 부양했던 일본은 주가가 폭락하며 부작용에 직면해있다.

      금융사로부터 일부 자금을 각출하는 방식은 예전의 트라우마를 자극할 우려가 있다. 증안펀드에 자금을 대는 금융회사가 많아질수록 이해관계자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결국 운용을 누가할지, 운용을 왜 이렇게 했는지를 두고 또 다툼이 일어날 수 있다.

      애초에 공매도 금지나 시장조성자 공매도 최소화 등 '자책골'만 넣지 않았어도 지금보다는 훨씬 상황이 나았을 거라는 게 복수 증권가 관계자들의 일관된 지적이다.

      한 20년차 증권사 트레이더는 "정부의 몫은 증시의 복원력을 믿고 신용경색으로 확대되지 않도록 현금흐름을 관리해주는 것"이라며 "대주주 규제 강화나 공매도 금지 등 증시 적대시 정책으로 증시의 복원력이 이미 상당부분 무너져있기 때문에 이전 위기때에 비해 좀 더 긴장이 되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미통화스와프로 증시가 반등한 20일, 선물 백워데이션(선물가격이 현물보다 낮은 현상)이 지속되며 프로그램 매물이 쏟아져나왔다. 이는 코스피 상승폭을 제한했다는 지적이다. 한미통화스와프 체결 직후 코스피지수가 115포인트, 11.95% 폭등한 2008년 10월30일과는 다소 다른 분위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