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전 대우조선과 판박이…HDC, 아시아나 인수해야만 할까
입력 2020.03.23 07:00|수정 2020.03.24 10:22
    2008년 대우조선 인수 우협 한화
    금융위기發 자금조날 난항에 포기
    오히려 '신의 한 수' 됐단 평가
    HDC현산 인수 앞둔 아시아나항공
    코로나 사태로 기업가치 하락 불가피
    HDC그룹 흔들 뇌관 가능성 주목
    • 12년전인  2008년 당시 재계와 금융시장에서 가장 큰 화제는 대우조선해양 매각이었다. 한화그룹이 산업은행이 보유한 대우조선해양 주식 9639만주를 6조3002억원에 사들이기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행보증금으로 인수가의 5%에 해당하는 3150억원을 산업은행에 지급했다.

      GS, 포스코 등 여타 경쟁자들에 비해 자금여력이 떨어졌던 한화가 6조3000억원이라는 돈을 마련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당시 자체 보유현금이 2조원가량이었다. 1조원에서 1조8000억원 정도를 금융권 조달을 통해 인수금액의 절반가량을 마련할 계획이었다. 이때부터 한화가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할 수 있을지 의구심은 있었다.

      예상치 못한 사건이 벌어졌다. 미국발 서브프라임모기지론 사태가 글로벌 금융위기로 번졌다. 금융시장이 경색되면서 금융사들과 기관투자가들은 인수자금 지원에 난색을 표했다. 한화는 당초 계획한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자 산업은행에 지분 분할 매입 등 인수조건 변경을 요청했다. 산업은행은 당초 MOU 내용과 다르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며 이행보증금 3150억원을 전액 몰취했다. 대법원까지 가는 소송전 끝에 한화는 이행보증금 일부를 돌려받았다.

      만약 이때 한화가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강행했다면? 대우조선해양의 기업가치 하락을 지켜보면서 부실을 고스란히 떠안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룹의 명운이 달라졌을 수 있다. 한화의 자금여력 부족이 지금에 와선 천우신조라고 평가받는 이유다.

      HDC현대산업개발이 처한 상황을 보면 12년 전 한화와 거의 판박이 수준에 처했다. “HDC현대산업개발은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해야만 할까?”라는 질문을 받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M&A 계약 체결 후 급격한 환경 변화를 맞았다. 코로나 확산으로 2월 여객 수송은 전년 대비 40%가량 줄었고, 더 많은 노선이 닫히기 시작한 3월 이후 실적도 예년보다 크게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제 막 세계적 대유행(팬데믹) 국면에 접어든 터라 부진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

      회사가 무급휴가 등 고정비 절감에 나섰지만 매출 자체가 급감한 상황에선 손실은 계속 불어날 것으로 보인다. 비행기를 띄우지 못하고 있어 유가 하락 효과가 크지 않고 공항에 세워두는 비용(주기료)조차 부담이다. 과거 사스나 신종플루를 겪은 다음해엔 회사의 영업활동현금흐름(OCF)이 2000억원가량씩 줄었다.

      넉넉했던 인수 금액도 이제는 빠듯해 보인다. 2조1772억원이 새로 회사에 유입되더라도 영구 전환사채(CB) 등 산업은행에 돌려줘야 할 돈만 1조원 이상이다. 올해 만기 도래하는 조단위 차입금이 롤오버(차환)되지 않는다면 신규 자금 대부분이 빚 갚는데 들어간다.

      자금 조달은 순탄치 않은 분위기다. 4000억원 규모로 추진된 HDC현대산업개발 유상증자는 신주 발행이 800억원가량 줄었다. 지난달 발행한 사모사채(1700억원)도 계획보다 일정이 늦춰지고 규모가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공모채 발행이나 은행권 차입까지 차질을 빚는다면 현금 유출이 늘 수밖에 없다.

      HDC현대산업개발은 1조원 이상의 순현금을 가지고 있지만 앞으로 현금 소요가 많다. 2017년 민간사업자로 선정된 최대 2조5000억원 규모 서울 동북권 개발사업이 대표적인데 여기에만 올해 6000억원 이상을 투입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디벨로퍼 특성상 다음 사업을 위한 현금 보유가 중요하다. 올해 지방 주택사업에서 수천억원의 현금이 유입된다 해도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대규모 현금이 빠져나가는 것은 부담스럽다.

      현금 투입이 일회적으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고민거리다. 항공업황이 회복되지 않으면 적자가 나는 족족 신규 자금을 넣어줘야 한다. 채무불이행 시 운용리스 항공기 대부분을 빼앗겨 계속 영업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HDC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면 재무부담이 급격히 늘어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인수 후 아시아나항공의 적자가 HDC현대산업개발과 지주회사인 HDC에까지 연결실적으로 모두 반영된다. HDC현대산업개발은 아시아나항공 영업권 가치를 1조원 이상으로 매긴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역시 손상 가능성이 있다. 아시아나항공의 금융비용 절감 효과가 다시 지배주주에 미치는 선순환 구조는 당분간 물 건너갔다. 오히려 신용도 하락과 비용 증가, 수주 부진 등 연쇄 파장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그룹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얘기다.

      당장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가치가 얼마나 떨어졌는지는 확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계약에서 종결까지의 짧은 기간에 막대한 손실을 기록할 것이란 점은 불보듯 뻔하다. HDC현대산업개발로선 기존 조건대로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는 것이 회사의 위험을 키울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물론 계약금까지 납부한 마당에 조건을 바꾸긴 쉽지 않다. 보통의 M&A에선 천재지변을 해지 사유로 보지 않는 데다, 코로나 사태를 어떻게 규정할 것이냐 하는 문제도 남는다. 당사자들의 거래 완료 의지가 완고하다면 서로 머리를 맞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대우조선해양 M&A에선 실사 및 가격조정 완료 후 계약을 체결하기로 했었으나, 산업은행의 요구로 실사와 관계없이 2008년말까지 최종 계약을 체결하기로 조건을 바꾸기도 했다.

      아시아나항공 M&A를 뒤흔든 코로나 사태는 이제는 HDC현대산업개발에 시간을 벌어주는 모습이다. 코로나 사태로 외국의 행정 절차가 늦어지며 기업결합 승인도 지연되고 있다. 거래의 선결 조건인 기업결합이 이뤄지기까지 회사도 여유를 갖고 상황을 살필 수 있다. 사정이 더 나빠지면 발을 빼거나 조건 변경을 요구할 명분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 "살 것이냐, 말 것이냐"라는 본질적인 고민에 대한 답은 나오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