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인하=증권 호실적' 공식 깨진다...리세션이 만든 '뉴 노멀'
입력 2020.03.24 07:00|수정 2020.03.25 12:00
    기준금리 50bp 긴급인하에도 다음날 증권지수 4% 폭락
    시장금리 변동성 커져 '채권 평가이익' 담보하지 못해
    S&T, IB 등 전방위적 실적 압박...발행어음 차별성 줄어들 듯
    • 금융회사 중 거의 유일한 금리 인하 수혜주로 꼽히는 증권마저 끝없는 경기침체(리세션)에 흔들리고 있다.

      대규모 긴급 금리 인하에도 증권업 이익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동학개미운동'에 힘입은 브로커리지(주식중개)가 그나마 버티고 있지만, 애초에 천수답(天水畓)같은 수익처라 크게 의지하긴 어렵다는 지적이다.

      오히려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시장금리로 세일즈앤트레이딩(S&T) 부문의 대규모 실적 악화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미 증권사 실적의 뇌관으로 떠오른 파생운용 부문 역시 위험하다. 최근 3년간 '밥줄' 역할을 했던 기업금융(IB) 부문도 거래가 진척되지 않는 상황이다.

      17일 KRX증권업 지수는 전일 대비 4% 폭락한 449.88으로 거래를 마쳤다. 코스피 하락률보다도 낮았다. 상장 증권사 평균 주가순자산비율(PBR)은 '저평가 마지노선'이라던 0.5배조차 깨지고, 이제 0.4배 수준에 진입하고 있다. 0.2배 수준인 보험, 0.3배 수준인 은행과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이다.

      코로나19 사태 초기만 해도 증권업의 급부상을 점치는 목소리가 많았다. 2020년 1분기 일평균 증시 거래금액이 13조1000억원으로 치솟으며 브로커리지가 호황 수준에 접어들었고, 경기 침체로 시장 금리가 떨어지면 2015년 전후와 마찬가지로 보유 채권에 대한 대규모 평가이익을 기대할 수 있었던 까닭이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16일 긴급 위원회를 열고 기준금리를 0.5%(50bp) 인하했다. 기존 전략에 따르면 이는 증권주엔 호재다. 현실은 달랐다. 증권주는 폭락세를 멈추지 못했다.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언급된다. 우선 시장금리의 불확실성이다. 채권 평가 이익을 결정하는 건 기준금리가 아닌 시장금리다. 시장금리는 기준금리뿐만 아니라 수급이나 매크로 등 여러가지 변수로 결정된다.

      최근의 금융위기급 변동성 장세에서는 기준금리가 낮아진다고 해서 시장금리도 떨어질 거라고 예측하기 어렵다. 실제로 17일 오전 한때 국채 10년 수익률은 한때 전일 마감 대비 오히려 16bp 오른 1.54%에 거래됐다. 외국인들이 한국 국채를 대규모로 내다팔고 이를 달러로 바꾸고 있어서다.

      하나금융투자에서는 긴급 금통위에서 금리를 인하한 직후 '현재는 경기가 나빠도 다양한 이유로 금리가 상승할 수도 있는 시기'라고 경고했다. 추경과 신용위험 상승, 외국인 투매로 시장금리가 오른다면 기준금리 인하와는 상관없이 오히려 증권사는 채권 평가손실을 입을 수 있다.

      한 증권사 금융 담당 연구원은 "현재 증권사 채권평가이익에 대한 확신은 약화된 상황"이라며 "지난해 증권사들이 채권 자산을 17조원 늘리며 잔액이 211조원대로 늘어 시장금리 추이를 면밀히 살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단기채권을 주로 운용하는 RP북 역시 금리 변동성 이슈에 노출돼있다. 단기채권의 경우 최근 하루에도 변동폭이 커 매수 매도 타이밍을 잘못 잡으면 손해를 보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RP북은 종합자산계좌(CMA) 수신과 연계돼 수시입출금에 대비해야 하다보니 단기 변동성에 취약하다.

      세일즈앤트레이딩(S&T)부문, 그중에서도 자기자산 운용에 대한 불신은 더욱 커졌다. 가장 먼저 우려가 제시되는 부문은 파생운용 파트다.

      최근 수년간 대형증권사들은 주식연계증권(ELS) 관련 자체 헤지(HEDGE) 비중을 높여왔다. ELS 특성상 주요 지수가 일정 범위를 넘어서는 변동성을 보이면 대규모 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데, 자체 헤지 비중이 높을수록 직접적인 타격을 받게 된다.

      국내 증권사 파생관련손익은 2018년 1조6500억여원 적자에서 지난해 3조6000억여원 적자로 적자 규모가 커졌다. ELS 시장 규모가 커지며 관련 상품 판매 수수료 수익은 늘고 있는데, 그 뒷면에서는 대규모 운용손실로 이익을 깎아먹고 있다는 뜻이다.

      지난해보다 더 지수가 극심한 변동성을 보이는 올해엔 더 큰 손실이 날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이미 증권가에는 일부 증권사가 이번 폭락장에서 자체 헤지 운용에 실패해 수백억대 손실을 떠안았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다.

      주식 관련 손익도 적자전환이 유력한 상황이다. 지난해 하반기 반도체를 중심으로 경기회복(리플레이션) 장세가 펼쳐졌을때, 국내 증권사들은 보유 주식 자산 규모를 23조원에서 30조원으로 33%나 늘렸다. 올해 1분기 코스피는 물론 글로벌 지수가 30% 가까이 급락하며 이미 주식 자산에서 손실이 발생했을 거란 분석이 나온다.

      최근 대형사 실적 성장을 견인해 온 IB 부문도 프리젠테이션(PT) 및 실사 일정 연기, 세계 각 국의 외국인 입국금지 조치 등으로 정상 진행이 어려운 상황이다. 아직까진 일정이 미뤄지는 정도지만, 경기침체가 본격화하면 아예 깨지는 거래도 나올 거란 비관적 전망이 많다.

      한 대형증권사 IB 부문 임원은 "IB라는 게 결국 만나서 의견을 나누고 들어가서 실사하고 투자자들을 설득해서 이뤄지는 일인데 지금은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게 정지된 상황"이라며 "상반기 부문 실적이 역대 최악을 기록할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발행어음 상품 역마진도 우려하고 있다. 이미 주요 증권사들은 특판 발행어음의 금리를 낮추고 있다. 일례로 NH투자증권의 경우 지난해 초만 해도 신규 계좌 개설시 월 50만원씩 6개월간 납입할 수 있는 연 5% 적립식 발행어음 가입 기회를 줬는데, 최근엔 월 10만원씩 6개월, 연 4.5%로 혜택을 줄였다.

      다만 발행어음 자금의 경우 아직까진 기업여신 등에 활용돼 수신 금리 대비 100~150bp의 마진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당장 역마진 이슈는 크지 않다는 평가다. 다만 저금리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은행 예금 대비 발행어음의 차별성은 점점 줄어들 거란 지적이 많다.

      한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자기자본투자 이익변동성이 커지는 부분을 주시하고 있다"며 "사업구조에 따라 증권사 간 실적 및 신용등급 차별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