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로 불투명한 해운업계…전열 정비 늦었는데 물동량도 감소 우려
입력 2020.03.30 07:00|수정 2020.03.27 16:46
    중소 컨테이너 통합 지연...흥아해운 워크아웃 신청
    현대상선, 초대형 선박 힘입어 해운동맹 뒤늦게 복귀
    코로나로 글로벌 경기 침체…물동량·운임 하락 우려
    • 해운사들은 올해도 가시밭길을 걸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 주도의 해운업 재건 계획은 효과가 크지 않거나 시기를 놓친 경우가 많았다. 그 사이 코로나가 불러온 글로벌 경기 침체까지 겹쳤다. 해운사들이 뒤늦게 전열을 가다듬었지만 물동량과 운임 감소 여파에 허덕일 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정부는 2018년 이후 해운사들의 근해 컨테이너선 사업을 통합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통합 대상으로는 국내 대부분의 중소 선사들이 거론됐지만 결국 국내 선대 1위 장금상선과 흥아해운의 사업만 통합하기로 가닥이 잡혔다. 흥아해운은 매출의 80%에 달하는 컨테이너 사업을 출자하고 장금상선은 주로 자금을 대는 구조다.

      통합 작업은 속도를 내지 못했다. 정부와 두 회사는 2018년 4월 이 같은 사업 조정에 합의했지만 기본합의서는 그로부터 1년 후 체결됐다. 통합법인 흥아라인은 작년 12월에야 출범했다. 덩치가 훨씬 큰 일본 선사들의 컨테이너 사업 통합, 중국 1~2위 선사의 합병 작업이 1년이 채 걸리지 않았던 터라 너무 지지부진했다는 평가가 있었다. 그 사이 영업은 차질을 빚었다.

      케미칼 탱커 사업만 남은 흥아해운은 지난 10일 채권금융기관 공동관리(워크아웃)를 신청했다. 미중 무역분쟁으로 중국 관련 일감이 감소했고, 코로나 사태까지 겹치며 재무 부담이 커졌다. 지난해 말 흥아해운 최대주주인 페어몬트(Fairmont Partners Ltd) 등이 경영권 매각을 추진했으나 결실을 맺지 못했다. 당시 정부와 채권단이 반대 의사를 밝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자금 지원을 해줄 테니 기존 주주가 꾸려가길 원했던 것으로 거론된다.

      흥아해운은 결국 워크아웃을 피하지 못했고 부담은 다시 채권단과 정부로 돌아오게 됐다. 워크아웃 소식이 알려지며 흥아해운의 주가가 상승하기도 했다. 업계 자율 구조조정이라는 정부의 자평은 무색해졌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정부는 흥아라인을 만들어 아시아 역내(인트라 아시아) 컨테이너 사업을 강화하고 남은 흥아해운도 재정 지원을 일부 해줄테니 기존 대주주가 꾸려가길 바랐다”며 “물동량 감소로 영업 환경이 악화하자 기존 대주주들의 자금 조달이 어려워졌고 워크아웃을 피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중단거리에 치중하는 중소 선사들의 부담은 앞으로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운임과 물동량이 양호할 때는 미중 무역분쟁의 여파를 피하지 못했다. 반년 전 벌크선운임지수(BDI)는 2000을 넘었으나 지금은 600을 겨우 넘고 있다. 원자재 선적 수요를 보여주는 케이프운임지수(BCI)는 올해 들어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컨테이너선 운임지수는 작년말과 비슷한 수준을 보이지만 코로나 여파로 물량 급감이 우려되고 있다. 올해 들어 국내는 물론 미국 LA 등 주요 항구의 물동량이 역성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 원양 선사라고 상황이 다르지는 않다.

      한진해운 사태 이후 정부는 현대상선을 세계 5위권 선사로 키우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네트워크 회복은 더뎠다. 협상력이 약해진 터라 해운동맹 가입도 녹록지 않았다. 2016년 세계 최대해운동맹 2M(MSC, MAERSK)과 전략적 협력이라는 모호한 형태로 손을 잡았다. 정부와 선사는 실리를 강조했지만 실익이 크지 않다는 평가가 많았다.

      이후 회사는 장기간 적자를 피하지 못했다. 그 때마다 국책은행이 적자를 메울 자금을 수혈해주긴 했지만 근원적 경쟁력 강화엔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한진해운 파산의 원인이 됐던 고가의 용선계약 역시 부담스럽다. 대주주는 임직원들의 모럴 해저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고, 사장이 임기 전에 물러나기도 했다. 또 다른 해운 전문가 출신인 배재훈 사장이 1년째 키를 잡고 있지만 남은 숙제가 많다.

      현대상선은 다음달부터 글로벌 해운동맹 디얼라이언스 정회원으로 합류해 협력 운항에 나선다. 정부 지원으로 발주한 초대형 컨테이너선이 동맹 가입의 밑거름이 됐지만, 큰 배를 운용하는 것도 부담이 작지 않다. 회사가 외국의 전문 포워더(Forwarder, 운송주선인)를 영입하며 공을 들이고 있으나 요즘 같은 물량 감소기에 큰 배를 채우긴 쉽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다.

      SM그룹의 SM상선도 2017년 인수한 한진해운의 미주 노선 사업이 썩 득이 되지 않았다. SM상선은 이후 현대상선과 북미 서안 노선에서 협력 관계를 구축하자는 뜻을 내비쳤으나 성사되지 않았고, 정부도 별다른 중재를 하지 못했다. 두 회사의 처지가 달랐고 사업을 평가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이란 평가다.

      SM상선은 우방건설산업과 합병 후에도 재무 상황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고, 금융회사들도 여신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회사는 다음달부터 2M과 아시아-미주항로 공동 서비스를 개시하기로 했다. 미주 노선 비용 절감 및 미국 기항지 확대 등 긍정적 효과가 예상되지만 과거 현대상선 이상의 시너지효과를 낼 지 미지수다. 역시 돌아올 때 배를 얼마나 채울 수 있는지(소석률)가 중요하다.

      그룹 내 다른 해운사인 대한해운은 지난 5일 LNG운송사업을 물적분할하기로 결정했다. 회사 이익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우량 사업이다. 회사는 사업전문성을 높이고 경영의 효율성을 강화할 목적이라고 밝혔다. 시장에선 자금 조달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시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