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항공은 투자등급을 지킬 수 있을까
입력 2020.03.31 07:00|수정 2020.04.02 12:02
    HDC현산, 아시아나 유증 일정 연기 추정
    신용등급 하나만 떨어져도 조기상환 트리거
    산은 지원 및 규모에 따라 유증 가닥 잡힐 듯
    • HDC현대산업개발의 아시아나항공 유상증자 시기가 불투명해지면서 아시아나항공의 투자등급 방어가 관심사로 떠올랐다. 그간 HDC그룹으로의 편입과 유증가능성이 아시아나항공의 신용도 지지 역할을 해왔다. 신용등급이 떨어지면 아시아나항공의 차입금에 대한 조기상환 트리거가 작동된다.

      지난 25일 열린 HDC현산 정기 주주총회에서 권순호 사장은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M&A)을 성공적으로 완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HDC현산은 그간 ‘인수 철회설’이 제기될 때마다 시장의 우려를 일축해왔지만, 최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4월7일로 예정된 유상증자 일정이 내부적으로는 이미 연기된 것으로 파악된다.

      상환해야 할 차입금의 만기 도래가 가까워진 아시아나항공으로선 자본 확충을 기대했던 유증 일정 연기가 불안 요소가 됐다. 최근 아시아나항공 회사채의 신용등급과 단기전망을 ‘BBB- 상향워치’로 평가한 NICE신용평가는 다음달 유증이 완료될 시 유동성이 개선되는 것을 반영했다고 밝힌 바 있다. 유증이 연기되면 회사채 신용등급 하향 트리거가 발동할 가능성도 커진다.

    • 한국신용평가는 이달 초 아시아나항공 무보증사채 신용등급 하향 트리거로 ▲경쟁심화 및 외부변수 변동으로 인한 이익창출력 저하 ▲별도기준 EBITDA/매출액 18% 미만 지속 ▲별도기준 순차입금/EBITDA 7배 초과 지속 ▲유동성 대응능력의 현저한 저하를 제시했다.

      네 가지 조건을 사실상 모두 충족하는 데다 코로나 사태로 실적 회복 기대감을 갖기 어려운 상황에서 유증 지연은 신용도 하방 압력을 더욱 키울 거란 평가다.

      현재 아시아나항공 회사채 신용등급은 'BBB-'로 마지막 투자등급을 유지하고 있다. 여기서 한 단계만 떨어져도 투기등급이 된다. 투기등급은 조기지급 사유가 되다 보니 신용등급 유지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다.

      7월까지 만기 예정인 회사채와 항공운임채권 자산유동화증권(ABS) 규모만 약 1700억원에 이른다. 회사채는 약 310억원, ABS는 약 1350억원 규모가 만기 예정이다. 다수의 ABS 투자계약서엔 신용등급이 BB+ 이하로 하향되면 원리금을 즉시 상환해야 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단기차입금 조달을 통해 차입금 상환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전체 단기차입금 규모는 인수 주체인 HDC현산에도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다. 아시아나항공의 단기차입금 규모는 2조807억원 수준으로 이중 금융기관 차입이 1조2602억원에 이른다. 지난달 차입금 상환 및 운영자금 확보를 위해 신한금융투자, 한국투자증권, KB증권에 각각 1000억원씩 브릿지론으로 자금을 조달했다. 투자은행(IB)업계 내에선 각 증권사들이 이를 회수할 수 있을지 아시아나항공의 상환능력에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의 상환능력에 본격적으로 빨간 불이 켜진 건 올해부터다. 최근 ABS를 발행한 몇몇 특수목적회사(SPC)에서 신탁원본 규모가 감소, 운임채권 회수실적이 발행 시점에 설정된 퍼포먼스 트리거에 근접한 상황이었다. 지난달 추가신탁 대응을 통해 각 SPC 회수실적은 개선된 상황이다. 추가신탁을 전후로 각 SPC의 매출채권 회수실적은 0.3%포인트(색동이21), 14.7%포인트(색동이22), 40.5%포인트(색동이23)씩 향상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도 대응할 수 있을지 시장의 의구심은 여전하다. 더욱이 코로나 사태가 길어지면서 운임채권 회수실적이 반등할 거란 기대감을 갖기도 어렵게 됐다. NICE신용평가는 2월달의 회수실적이 유지될 경우 다수의 SPC에서 조기지급 트리거가 발동할 것으로 예상했다.

      HDC현산은 재무부담이 그룹 전체로 전이될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HDC현산-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과 금호산업과의 계약 내용 중 계약 후 6개월 안에 기업결합 승인과 잔금 납입이 완료되지 않으면 계약이 해지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파악된다. 이를 감안하면 ‘인수 포기’가 아닌 자연스러운 ‘인수 실패’로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

      신용평가업계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HDC그룹으로의 편입과 HDC현산의 유상증자에 대한 기대감이 현재의 아시아나항공 신용도를 뒷받침해왔지만 만약 인수가 불발할 경우 아시아나항공의 신용등급 강등과 조기상환 트리거 발동은 수순”이라고 분석했다.

      아시아나항공이 공시를 통해 유증으로 확보된 자금은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차입금 상환에 우선투입할 계획임을 밝힌 바 있다. 채권단 입장에선 자금 회수를 위해서라도 딜을 성사시켜야 한다. HDC현산은 산은에 1조원 규모의 신용보강 등을 통한 여신 지원과 차입금 상환 유예를 요청한 상태다. 산은의 자금 지원 규모와 시기에 따라 유증 날짜도 확정될 전망이다. 당장은 아시아나항공의 운명이 산은에 달린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