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원 긴급 수혈' 하지만…끝나지 않은 두산重 신용 리스크
입력 2020.04.02 07:00|수정 2020.04.20 16:34
    1조원 지원으로 당장의 위기 막았을 뿐
    계속되는 신용리스크에는 영향 미미해
    신용도 회복 없이는 유동성 부담 이어져
    사업 경쟁력 회복 및 재무 부담 경감 필요
    • 두산중공업이 국책은행으로부터 1조원 규모의 '긴급 수혈'을 받으면서 단기적인 유동성 위기를 피했다. 하지만 ‘발등에 떨어진 불’을 껐을 뿐 사업과 재무 상황이 본궤도에 오르는 근본적 해결 없이는 신용도 하방 압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두산중공업에 대해 철저한 책임이행을 전제로 긴급 운영자금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필요시 그룹차원의 자구노력 등을 보고 추가자금 지원 여부도 검토할 계획이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지원하는 1조원의 자금은 한도 여신(Credit Line) 방식으로 제공된다. 이와 별도로 두산중공업은 다음달 만기인 5억달러 규모 외화표시채권을 대출로 전환해달라고 수은에 요청해 현재 협의중이다.

      두산중공업은 5월 조기상환 청구가 예상되는 신주인수권부사채(BW)에 대해 확보한 한도여신과 자산매각 등을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은행차입금은 보유자산의 담보제공 등을 통해 만기연장이 예상되며 기업어음(CP)과 전자단기사채 등 단기차입금은 보유유동성(2019년말 기준 약 6600억원)과 여신한도를 감안하면 대응이 가능할 것이란 관측이다.

    • 신용평가업계에선 1조원 지원을 두고 ‘이게 끝이 아니다’라는 경고의 목소리가 나온다. 높은 차입금 규모 등 신용 리스크를 해소하지 않는 한 두산중공업의 유동성 부담은 계속된다는 분석이다.

      이번 유동성 위기도 낮아진 신용도 영향이 컸다. 정상적인 상황에선 일부라도 시장 조달이 가능하겠지만, 지금 같은 글로벌 시장 혼란 상황에선 위험회피 경향이 커지면서 비우량채를 향한 투자심리는 크게 저하됐다. A급 이상 우량채도 발행을 장담할 수 없어 BBB급의 차환 발행은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다. 두산그룹은  ㈜두산(BBB+/부정적), 두산인프라코어(BBB/안정적), 두산중공업(BBB/부정적) 등 자체 신용도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회사가 없는 셈이다.

      일시적 지원은 근본적인 재무 위험을 막는 수준이 아니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차입금을 상환할 수 있는 현금창출력 회복이 가장 중요하다. 문제는 두산중공업이 과거만큼의 기업 경쟁력을 되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두산중공업의 사업은 국내에서 사실상 ‘셧다운’ 상태다. 2017년 이후 본격화된 탈원전·탈석탄 정책 및 글로벌 친환경 에너지 기조 등이 수주환경에 불리하게 작용하면서 수주 감소가 이어졌다. 사업 특성상 인건비 등 고정비 부담이 커지고 수익성도 악화했다. 지난 5년간 두산중공업의 당기순손실은 1조원을 넘었고 원전 공장 가동률은 50%대까지 떨어졌다.

      두산중공업은 사업 포트폴리오 전환과 신사업 확대로 재무성과를 내는데 주력하겠다는 입장이다. 최형희 두산중공업 대표는 3월30일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2023년까지 신사업 수주 비중을 50% 수준으로 확대하는 중장기 수주 포트폴리오를 수립했다”고 밝혔다. 가스터빈, 신재생을 비롯해 수소, 3D 프린팅 등 신사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신사업에서 본격적인 매출이 발생하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두산중공업의 2019년 3분기 실적 보고서 기준 지난해 신재생 에너지 사업 관련 투자 및 수주 계획은 5684억원 규모였으나 실제 실적은 20%인 1093억원으로 예상된다. 이중 주력하고 있는 풍력발전은 입지 규제와 경제성 등의 영향으로 당초 계획 대비 저조한 발주량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풍력사업 관련 수주 계획은 5000억원 규모였지만 실제로는 394억원 수준에 그친 것으로 보인다.

      또 해외 수입에 의존하던 가스터빈을 자체 기술로 국산화하며 기대를 받고 있지만 상용화에 이르기까지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단기간에 실적 저하를 보완화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수주 규모가 큰 원전과 다르게 가스터빈 등 복합화력발전은 단위당 규모가 크지 않아 과거처럼 대규모 수주가 많이 나올 수 있는지는 불확실하다”며 “본 사업인 원전이 사양산업이라 신재생 에너지를 해야 하는데 신재생 발주는 그만큼 나오지 않으니 회사 입장에선 답답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단기적으로는 구조조정과 자본확충 등 재무적인 대응이 신용평가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두산중공업은 3월 주총에서 향후 유상증자 등에 대비해 자본금 한도를 선제적으로 확대하는 정관 변경 안건을 통과시켰다. 자본금 한도를 기존 2조원에서 10조원으로 늘렸고 전환사채(CB)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 한도도 각각 기존 대비 4배인 2조원으로 확대했다. 이외에도 두산 그룹차원의 사업 구조조정과 자산매각 등 다양한 재무개선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신용평가업계 관계자는 “(두산중공업이) 당장 다음달 차입금 상환을 어떻게 할지가 이슈가 될 정도로 유동성 부담이 있는 상황인데, 이번에는 일단 넘어가도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 시장에 회사가 신뢰를 다시 줘야한다”며 “장기적으로는 사업적으로 회복이 돼야 하고, 단기적으로는 높은 차입금 감소 등 재무 리스크를 줄어야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구조조정 등이 긍정적 이벤트로 작용할 수 있고 자본확충 추진 등 회사와 그룹 차원의 재무적 대응을 살피며 상반기 중 신용도 점검을 진행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