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가 벤처투자 더 하라는 정부...실익 없어 대형사는 '외면'
입력 2020.04.03 07:00|수정 2020.04.07 10:28
    證 '단순투자자→운용사'…대형사는 큰 관심 없어
    전문인력 부족으로 공동 운용할 듯…보수율 낮아
    "투자할 곳 없는데"…정부, 證 통해 모험자본 늘려
    본래 취지 잃을라…벤처투자의 금융상품化 '우려'
    • 증권사도 VC와 함께 공동운용사로 벤처투자 조합을 설립하고 무한책임투자자(GP)로써 투자금을 운용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대형 증권사들은 크게 관심을 두지 않은 분위기다. VC 전문인력이 부족해 공동 운용사 설립이 불가피한 만큼 증권사에 돌아가는 보수율이 절반으로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기업가치 산정부터 주먹구구식인 벤처투자 관행으로 인해 이미지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가 모험자본 확대를 위해 증권사까지 손쉽게 끌어들이려는 것 아니냐는 냉소적인 지적이 나온다. 과거 신탁이 증권사의 업무 영역에 포함되며 본래 취지를 잃고 금융상품이 돼버린 것처럼, 벤처투자도 금융상품화하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최근 중소기업벤처부는 증권사와 자산운용사도 창업투자회사와 함께 벤처투자 조합을 결성할 수 있다는 내용의 '벤처투자 촉진에 관한 법률(벤처투자법)' 하위법령 제정안을 5월까지 입법예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제정안이 통과되면 증권사와 자산운용사는 벤처캐피탈과 공동운용사(Co-GP)로 벤처투자 조합을 설립할 수 있게 된다. 그간 증권사와 자산운용사는 단순 투자자에 불과했다. 투자금을 직접 운용하기 위해서는 금융당국에 신기술사업금융회사(신기사) 등록을 해 벤처투자 조합을 결성해야만 했다. 2016년부터 KB증권,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신한금융투자 등 증권사들이 신기사 등록을 통해 벤처투자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번 제정안은 신기사 자격이 없는 증권사들도 벤처투자 조합을 결성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골자다.

      중기부 벤처투자실 관계자는 "신기사 자격이 없더라도 증권사와 자산운용사가 공동으로 조합을 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며 "신기사쪽을 하고싶다면 따긴 하겠지만 그게 없어도 허용해 주는 게 주요 내용이다"고 설명했다.

      다만 국내 10대 증권사 중 신기사 등록을 한 곳이 3곳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형 증권사들은 벤처투자에 큰 관심이 없다는 지적이다. 벤처투자를 통해 올릴 수 있는 수익은 의문이지만, 비용은 비교적 큰 탓이다.

      벤처투자 전문인력이 VC에 비해 부족한 증권사들은 전문인력을 고용해야 하는 등 비용 지출이 불가피하다. 증권사들이 보유한 영업망을 기반으로 벤처투자 전문 운용사를 낄 가능성이 크다고 점쳐지는 이유다. 공동 운용 시 보수를 나눠야하는 만큼 수익성이 비교적 낮다. 업계에 따르면 규모가 작은 VC의 평균 보수율은 2.5% 정도다. 공동 운용 시 증권사가 가져갈 보수는 1.0% 정도로 추정된다.

      게다가 벤처투자업계의 관행이 증권사의 체질과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 관련업계 관계자는 "투명하지 않은 VC와 투자받는 벤처기업 가운데 어떤 계약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라며 "작은 푼돈 받으려 투자에 나섰다가 체하게 되면 이미지가 크게 망가질 수 있기 때문에 증권사 같이 정확한 숫자를 중시하는 곳은 내부체계를 갖춰진 곳과 거래하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중기부 제정안을 바탕으로 벤처투자 조합 결성을 고려하는 곳은 운용자산(AUM)이 대체로 작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는 까닭이다. 주로 중소형 VC들이나 소형 자산운용사 등이 예상 주체로 꼽힌다. AUM이 최소 1000억원은 넘겨야 벤처기업에 투자자로서 명함을 내밀 수 있다는 후문이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증권사 등을 통해 손쉽게 모험자본을 늘리려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코로나로 인한 실물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데 필요한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 위해 정부가 기존 정부 예산의 용도를 변경하고 추가경정예산까지 편성하려는 상황에서 벤처투자 관련 자금을 늘리려 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벤처·중소기업 투자위험도를 줄이는 방향으로 증권사의 건전성을 나타내는 영업용순자본비율(NCR)에 대한 개정안도 내놓을 방침이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투자할 벤처기업도 많지 않은데 자금을 쏠 주체만 늘어나니 유동성이 넘칠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보기에 정책자금은 한계가 있으니 편하게 증권사 참여를 유도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벤처투자가 금융상품화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비상장사인 벤처기업의 가치에 대한 구체적 심사도 없이 지분을 싸게 매입해 기업가치를 크게 부풀린 다음 지분을 높은 가격에 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2009년 신탁업법이 자본시장법으로 통합되던 당시 개별고객 맞춤형 자산관리서비스였던 신탁업무가 증권사의 업무영역에 포함되며 금융상품화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란 설명이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증권사들은 돈 되면 다 한다"며 "VC를 증권사들이 기존에 해오던 업무 영역으로 끌어오게 되면 단순히 큰 VC가 되어버릴 것이고 벤처투자는 단순한 금융상품으로 취급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