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민 수수료 개편, 기업결합심사 시정조치 우려한 선제적 대응?
입력 2020.04.07 07:00|수정 2020.04.08 10:08
    배민 수수료개편 시행되며 소상공인 불만 여론 폭증
    매출 비례한 수수료 모델 고착, '정액 요금제'는 사실상 폐기
    DH, '팁' 형태 요기요· '광고' 형태 배민 모두 보유
    공정위 승인 이후엔 요금제 개편 불가능한 점도 강행 요인으로
    • 배달의민족(배민) ‘빅딜’로 5조원을 쏟은 딜리버리히어로(DH)가 누릴 직접적인 과실은 어디에 있을까. 배민이 예고한 요금 체계 개편안이 이달부터 시행되면서 하나둘 인수 효과가 가시화하고 있다. 그간 배민이 고수해온 '월 정액제' 모델이 사실상 폐기되는 한편, 매출에서 일정 비율을 수수료로 떼 가는 수익 구조가 일원화된 점이 첫 단계다.

      소상공인을 비롯한 이용자들은 요금제 개편에 따른 부작용을 여론을 통해 호소하고 있지만, 배민 측은 강행 방침을 보이고 있다. 공정거래위가 기업결합 승인 조건으로 '향후 수 년간 수수료 개편 금지' 카드를 꺼낼 가능성이 유력하다보니, 지금이 수익구조에 손을 댈 마지막 기회로 보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다만 회사 측은 수수료 개편과 배민 매각과의 연관성이 없다고 선을 긋고 있다.

      3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현재 딜리버리히어로와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 운영 법인), 김봉진 대표와 각 투자자들은 공정거래위원회의 M&A 승인 절차를 밟고 있다. 김앤장법률사무소가 주 자문사로 DH 측과 김 대표를 대리하고, 율촌이 우아한형제들 내 인하우스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현행법상 공정위가 순수하게 심사에 소요하는 기간은 120일(30일+추후 90일 연장 가능)로 규정됐지만 추가 자료 요구와 보완 등에 걸리는 시간은 법정 심사 기간에 포함되지 않는다.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빠르면 올해 10월에서 내년 초까지도 소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거래 관계자들 사이에선 예상보다 더 깐깐한 공정위 실무자들의 방침에 당황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로펌간 수임 경쟁 이전부터 대형 로펌 내 공정거래팀에서도 "사실상 100% 정무적 판단에 걸린 거래"라며 수임을 포기한 곳도 있었을 정도다. 한 거래 관계자는  "아직까진 나올만한 예상된 악재는 다 나왔다는 입장이지만 어려운 거래다보니 여론 추이를 민감하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살얼음을 걷는 상황에서 배민의 수수료 개편안이 이달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여론에 불을 지피고 있다. 배민 측은 “지난해 12월 수수료 인하 방침을 포함한 개편 방침을 밝혔을 당시엔 소상공인연합회 측에서도 환영 의사를 밝혔는 데 지금의 반대는 다소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수수료 개편으로 인한 이용자 부담 과중은 지난해 시행안에서부터도 예고된 결과였다는 평가다. 기존 배민의 수익원은 크게 수수료를 내는 오픈리스트(많은 금액을 써낸 음식점 3곳만 앱 상단에 노출시켜주는 광고 상품)와 정해진 요금을 내는 울트라콜(8만8000원 정액제 상품)로 구성됐다. 개편안은 오픈리스트를 ‘오픈서비스’로 바꾸는 게 골자다. 외견상 오픈서비스 수수료율이 6.8%에서 5.8%로 1%포인트 낮아지고 하단에 배치되는 울트라콜 요금도 향후 3년간 동결되다보니 이용자에게 유리한 구조로 보인다.

      다만 여기엔 맹점이 있다. 3곳만 상단에 노출되던 오픈리스트와 달리 오픈서비스에선 신청한 업체 모두가 무제한으로 상단에 노출된다. 앱 노출도가 곧 매출과 직결되는 자영업자 입장에선 기존의 정액제 모델을 선호하더라도 지금의 광고 수수료 모델로 포섭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참고 : 배민 '수수료 동결' 선언...독과점 심사 설득 논리 될까)

    • 이번 거래가 공정위 심사를 통과할 경우 딜리버리히어로 입장에선 직접수수료로 수익을 거두는 요기요와 광고 플랫폼 형태로 수수료를 얻는 배달의민족 모두를 포트폴리오로 보유한다. 요기요 업주는 무료로 업체 등록은 할 수 있어도 주문이 들어오면 건당 12.5%(카드결제 대행수수료 3.3% 합산시 16% 수수료)를 내야 한다.

      양사가 분리돼 치열히 점유율 경쟁을 펼치던 땐, 요기요의 수수료 모델이 소상공인의 반발을 사며 배민이 반사효과를 봤다. 상위 3곳 노출을 위해 ‘광고 비용’을 일부 받지만, 배민은 직접 수수료는 떼지 않는다는 ‘착한 기업’ 마케팅 효과였다. 다만 개편 이후 광고 노출이 무제한으로 늘어나면서 실질적으로 요기요와 동일한 수익구조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들이 99%라는 합산 점유율보다 더 실질적인 독점 효과로 꼽는 부부분도 이런 수익 모델 개편에 있다.

      법조계에선 공정위 승인 문턱을 넘더라도 추가적인 시정조치가 필요한 조건부 승인이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공정위의 시정조치는 대표적으로 '구조적 시정조치'(특정사업부 매각 명령)와 '행태적 시정조치'(수수료 동결 혹은 인하) 등으로 분류되는데, 동일 업종간 결합에서 사업 매각을 택하긴 어려울 것이란 지적이다. 실제 2009년 이베이가 G마켓을 인수한 당시에도 공정위는 3년간 판매수수료 동결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배민과 DH 입장에선 공정위의 시정조치가 확정된 이후엔 수수료 개편에 손을 댈 수 없는 상황에 처할 수 있는 셈이다. 일각에선 여론의 반발 움직임에도 배민 측이 해당 개편안을 고수하는 데 시기적으로 마지막 기회인 점이 고려된 것 아니냐는 이야기다. 약 4조8000억원 기업가치로 인수를 단행한 DH 입장에서도 수수료 체계 개편 이후 배민의 수익성과 현금흐름 변화를 살필수밖에 없다. DH 측은 인수 발표 직후 ‘고가’ 논란을 의식한 듯 투자자설명회(IR)를 열었고, 장기적으로 배민의 지원아래 거래액대비 EBITDA 마진을 5~8%까지 끌어올리겠다 밝혀 주주 불만을 잠재웠다. 당시 일각에선 수수료 개편을 염두해 둔 목표치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기업결합심사가 총선 기간과 겹치며 수수료 개편안이 정치 이슈로 떠오르기도 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수수료 개편안에 대해 "독과점의 횡포"라 규정하고 비판에 나섰고,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등 정치권도 곧 비판대열에 합류했다. 회사 측은 "오픈서비스 개선책 마련에 나서겠다" 밝혔지만, 업계에선 정액제에서 정률제로의 개편 근간 자체를 철회하긴 쉽지 않을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배민 측은 "이번 거래와 수수료 개편은 (기업결합심사 등과) 전혀 무관한 문제"라고 밝혔다.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04월 06일 07:00 게재 및 15:00 업데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