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중공업 이후에는? 또 다른 뇌관 8000억 규모 DICC 소송전
입력 2020.04.07 07:00|수정 2020.04.08 10:09
    두산그룹 vs. FI, 매매대금 지급 소송은 현재 진행형
    대법원, 재판연구관 검토 대상 사건으로 분류
    이르면 올해 결론…두산그룹 패소 확정 땐 8000억 물어줘야
    탈원전 프레임에 대마불사(大馬不死)식 정부지원
    정치적 이슈로 확대 가능성…대법원 고민 깊어질 듯
    • 두산그룹은 1조원대 지원책 발표로 일단 급한 불은 끄고 있는 모양새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기 이르다. 그룹 알짜회사인 두산인프라코어는 재무적투자자(FI)와 두산인프라코어(DICC)를 둘러싼 8000억원 규모의 소송전을 진행 중이다. 수년 째 이어온 두산그룹과 FI의 치열한 공방은 이제 얼마남지 않은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두산그룹의 패소가 확정될 경우, 두산인프라코어를 넘어 두산그룹 전반에 걸친 위기로 확산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대법원 민사 3부에 계류중인 DICC ‘매매대금 등 지급 청구의 소’와 관련해 해당 사건은 민사심층연구조(재판연구관) 검토 대상으로 분류됐다. 대법원은 현재 “법리와 쟁점에 관한 종합적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번 소송은 2018년 5월 주심 대법관 및 재판부에 배당한 지 약 2년의 기간이 지났는데, 대법원의 판결이 약 2~3년 정도 소요되는 점을 고려하면 이르면 올해 내 결론이 날 가능성도 있다.

      소송가액은 최소 8000억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두산그룹은 2011년 두산인프라코어의 자회사인DICC의 지분 20%를 FI(IMM PE·하나금융투자 PE·미래에셋자산운용 PE)에 매각했다. 그 과정에서 3년 내 기업공개(IPO)가 이뤄지지 않으면 FI가 두산그룹 보유지분까지 함께 팔 수 있도록 동반매도요구권(Drag-along)을 부여했다. 실제로 기한 내 IPO는 무산됐고, FI들은 경영권 매각을 추진했으나 이 또한 실패했다. FI측은 당시 “두산그룹의 자료제공이 미비하고, 실사 요구에도 응하지 않아 매각이 무산됐다”고 주장하며, 두산그룹에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을 맡은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당시 매수 희망자들의 진정성이 확인되지 않았고, 두산그룹이 실사에 적극 협조할 의무는 인정하기 어렵다’며 두산그룹 측의 손을 들어줬다(2015년 3월 2일). 그러나 2심 재판부인 서울고등법원은 그간 수행한 M&A를 근거로 들며 ‘두산그룹이 매각 절차 협조 의무가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다’고 판시하며 1심 판결을 뒤집었다 (2018년 2월 21일). 두산그룹은 곧바로 상고했다.

      법원이 인정한 두산그룹과 FI의 매매계약금액은 약 7100억원이다. 투자원금 3800억원에 연 15%의 이자가 더해졌고 FI가 이미 수령한 배당금은 제외했다. 소송이 수년째 진행되면서 1심과 2심 판결 기간까지는 상사이자율 6%가, 2심 판결 이후부턴 소송촉진법 상 이자율인 15%가 지연손해금으로 가산된다. 이를 감안한 현재까지의 소송가액은 최소 8000억원 수준이다.

      두산그룹이 3심에서 최종 패소할 경우엔 상당한 자금소요가 불가피하다.

      두산인프라코어는 그룹의 캐시카우답게 지난해까지 업황의 부침없이 견조한 실적을 유지했다. 매출액은 개별기준 3조1000억원, 영업이익은 1780억원을 기록했다. 벌어들이는 현금 수준은 양호하지만, 우발채무가 현실화 할 경우에 감당하기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두산인프라코어가 현재 보유한 현금은 1300억원 수준, 충당부채로 쌓아놓은 금액은 약 580억원에 불과하다.

    • 우발채무에 대한 우려는 단순히 두산인프라코어에 국한한 문제만은 아니라는 평가도 있다.

      두산그룹은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자구안을 마련 중이다. 부실규모가 가장 큰 두산중공업을 투자회사와 사업회사로 분할 해 ㈜두산과 두산중공업(투자회사)를 합병하는 방안도 유력하게 거론된다. 이 경우 ㈜두산은 두산인프라코어를 직접 지배하는 회사가 된다. 두산인프라코어의 현재 사업 환경만 두고 본다면 배당을 통해 ㈜두산에 최대한 현금을 끌어올릴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될 수 있지만, 우발채무 현실화로 인한 자금 지출이 발생할 경우 지주회사에 그 여파가 미칠 수 있다는 부담도 존재한다.

      재계 한 관계자는 “두산그룹이 당장 돌아오는 차입금을 막는 것도 급선무지만,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우발채무에 대한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상당히 시급하다”며 “이제까지 해당 소송에 대해 그룹 차원에서 상당히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진 않았지만, 시일이 지날수록 불안감은 커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두산그룹에 유동성 위기가 닥치자 산업은행은 1조원의 긴급자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다만 이 과정에서 DICC와 관련한 우발채무에 대한 검토와 대응책 마련이 충분했었는지는 미지수라는 지적도 나온다.

      채권단 한 관계자는 “산업은행의 지원은 기본적으로 두산그룹의 상황이 급박한 것을 알고 고통 분담을 전제로 한 것이다”며 “(DICC 우발채무와 관련해) 채권단 회의와 산업부·경제관계장관회의 등에서 고려는 했을 것으로 보이지만, 확인해 줄수는 없다”고 말했다.

      두산그룹의 자구안이 제출되기도 전에 채권단의 조단위 선제적 자금 지원 등 상당히 이례적인 현재 상황이 대법원의 판결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두산그룹의 위기설이 하루이틀 거론된 것도 아닌데, 때마침 탈원전 정책이 추진되며 (두산그룹이) 정부에 책임을 전가할 수 있는 상황이 조성됐다”며 “정부의 대마불사(大馬不死)식의 지원책이 발표되면서 앞으로 정치적 이슈로까지 확대하면 대법원의 고민도 상당히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