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 기업가치 뚝뚝...믿을건 'IFRS17 도입 불발' 뿐
입력 2020.04.07 07:00|수정 2020.04.06 17:58
    금리인하로 보험사 가치 뚝뚝
    IFRS17 도입 1년 또다시 연기돼
    보험사들 사이에선 이럴거면 아예 도입하지 말자
    금융당국도 이전보다 도입에 유동적인 자세
    • 코로나 사태 이후 보험사 기업가치가 뚝뚝 떨어지고 있다. 저금리 영향이 지속된데다 코로나 사태로 최근 상황이 더욱 악화했다. 이런 틈을 타 보험사들 사이에선 오랜시간 논의되어 온 IFRS17 도입을 미루는 것뿐만 아니라 무산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IFRS17 도입에 강경한 자세를 취하던 금융당국도 이전보다 유연하게 현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증시의 일부 투자자들은 IFRS17 무산 가능성을 생명보험사 주가에 반영시키기 시작했다. 저금리에 재무건전성 부담으로 주가가 그간 급락해온만큼, 규제 이슈가 사라지면 다시 주가가 튀어오를 거라는 데 베팅한 것이다.

      최근 국내 주요 상장 생명보험사 주가는 사상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주가순자산비율(PBR) 기준으로 0.07~0.2배 안팎이다.  공모가가 10만5000원이었던 삼성생명 주가는 한때 3만원대 중반까지 밀렸다. 한화생명 주가는 1000원 이하로 떨어지며 '동전주'가 되기도 했다.

      글로벌 주요 증시의 생보사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다. 일본 간포생명보험, 미국 AIGㆍ메트라이프 등의 PBR이 0.4배까지 밀렸다. 국내에서 매각이 진행중인 푸르덴셜생명의 모회사 푸르덴셜파이낸셜은 PBR 0.3배 수준에 거래되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금리 인하 기조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생보사 업황이 딱히 더 좋아질 게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최근 보험사 주가가 시장 전첵적으로 낙폭이 큰 주식이 반등한 걸 동행하는 정도의 흐름으로 보인다”라며 “생보사들은 특히 현재의 상황이 어떠한 모멘텀으로 작용하긴 어려운 상황이고 금리가 올라줘야 주가도 회복될 것으로 예상한다”라고 말했다.

      보험사들의 사정이 이러니 수면 아래에 있던 새로운 보험회계기준인 IFRS17 도입이 다시금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비단 국내뿐 아니라 글로벌 보험사들이 모두 힘든 상황이란 점에서 도입 필요성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는 분위기다. IFRS17 도입을 논의하는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는 2022년으로 예정된 IFRS17 도입을 또다시 한 차례 연기했다. 당초 2020년 도입을 목표로 추진됐지만 연이어 미뤄지면서 그 시기가 2023년으로 밀리게 됐다.

      일각에선 IFRS17 도입 자체가 무산되는 것 아닌가 하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글로벌 저금리 상황에서 IFRS17 도입을 무리하게 추진할 경우 보험사들의 어려움이 가중된다는 이유에서다. 국내에서도 저금리 영향이 큰 보험사들을 중심으로 이런 주장에 힘을 보태고 있다.

      IFRS17 도입을 강하게 추진하던 금융당국의 목소리도 이전보다는 약해졌다. IFRS17 도입을 위해선 현재의 금리 수준에선 수십조원의 자본이 필요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엄격하게 적용하면 국내 보험사 대부분이 자본잠식에 빠진다는 점에서 금융당국도 이전처럼 도입하자고만 목소리를 높일 수 없는 상황이다.

      최근의 보험사 주가가 다소 반등한 것 역시 이런 시장 상황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IFRS17 도입이 사실상 어려워졌다는 점에서 보험사들의 부담이 다소 경감될 것으로 보았다는 설명이다.

      한 증권사 트레이더는 "솔벤시II 등 IFRS17을 대비해 강력한 자산건전성 규제를 선제적으로 도입해 온 유럽에서도 IFRS17를 꼭 도입해야 하느냐에 대한 회의론이 득세하기 시작했다"며 "최근 일부 생보사의 주가 반등에는 규제 완화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돼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물론 IFRS17 도입을 안한다고 보험사들의 재무건전성이 좋아지는 건 아니지만, 당장 자본확충 부담으로 회사가 휘청거릴 위험은 줄어들 수는 있다. 제로금리와 양적완화가 일상화된 현실에서 생보사들이 IFRS17을 통해 지금보다 더 과도하게 시장금리의 영향에 노출되게 하는게 옳은 일인지에 대한 논의가 다시 진행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규제 일변도였던 글로벌 금융정책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그간의 위기는 대부분 타락한 금융이 시스템의 허점을 노출하며 위기를 맞이하고, 이 위기가 실물로 전파되는 모양새였다. 이번 위기는 코로나19 펜데믹으로 인한 실물의 침체가 금융의 경색을 불러왔다. 실물경제 위기 상황에서 과도한 금융 규제는 돈이 흐르는 길을 막아 위험을 더 키울 수 있다.

      최근 국제결제은행(BIS)이 새 규제 기준인 바젤III의 글로벌 적용을 1년 미루기로 한 것 역시 이런 맥락으로 풀이된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확실한 보험사 구조조정을 통해서 건전한 보험사들을 중심으로 시장을 재편할 것인지 아니면 시장의 충격을 줄이면서 현재의 과도한 보험사 숫자를 유지할 지에 대한 선택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