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업 신용 하락 가시권…우려 커지는 미래에셋·메리츠證
입력 2020.04.23 07:00|수정 2020.04.23 17:10
    국내외 신용평가사 국내證 신용등급 하향 검토
    벤처투자 회의론 확산…해외 자산 투자자 못찾는 미래證
    우발채무·고위험 익스포져, 메리츠證에 냉정한 평가
    • #1. 최근 메리츠증권은 한 국내 자산운용사에 방문해 과거에 투자한 오피스 빌딩에 대한 롤오버(차환)를 요청했다. 이 운용사는 내용을 검토한 후 곧바로 어렵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이 운용사 고위 관계자는 "실물경기 회복세를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우리 뿐만 아니라 다른 투자자들도 적극적으로 나서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2. 일반적으로 신용평가 평정 과정에서 회사 측 입장은 자금팀장급이 대변한다. 하지만 최근 일부 대형 증권사의 평정 과정에 최고리스크관리책임자(CRO)를 위시해 관련 부서가 '총출동'하는 일이 빈번히 벌어지고 있다. 최근 이슈가 많은 일부 증권사의 경우 '우리를 강등하면 그땐 업계가 죽는다'며 으름장을 놓는 일도 서슴지 않고 있다. 

      초대형 투자은행(IB)을 자처한 대형사를 포함해 국내 증권사들의 신용도 하락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이미 글로벌 신용평가사들은 국내 증권사들의 신용등급 하향검토에 돌입했고, 국내 신평사들또한 눈치싸움을 시작했다.

      코로나 사태로 정점을 찍은 금융업권의 위기감은 국내 증권사들 대부분에 퍼져있지만, 특히 국내외 자산에 공격적인 투자로 익스포져를 늘려온 미래에셋대우(이하 미래에셋)와 메리츠증권(이하 메리츠) 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코로나 사태 이전으로 실물 경기가 회복하기까지 얼마나 걸릴지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두 회사에 울리는 경고음은 이전과 비교해 무게감이 다르다는 지적이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이달 초 미래에셋의 신용등급(장기물 BBB,단기물 A2) 전망을 기존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변경했다. 금융시장 변동성이 커지면서 지분투자 확대 계획과 투자자산 건전성 악화, 기업대출 등이 수익성에 상당한 부담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 무디스 또한 미래에셋을 포함한 국내 대형 증권사 6곳의 신용등급을 하향검토하기 시작했다.

    • 미래에셋에 대한 우려는 파생상품에 대한 선물 증거금 추가요청, 즉 마진콜이 시작이었다. 주가연계증권(ELS)과 파생결합증권(DLS)의 기초자산인 해외 선물이 급락했기 때문이다. 투자금융업계에선 미래에셋의 마진콜 규모가 1조원이 넘을 것이란 분석이 제기되기도 했다.

      다만 아직까진 시장의 걱정만큼 직접적인 손실이 가시화하진 않은 상황이다. 미래에셋 측 관계자는 “한달 전 증거금을 납입했고 지금은 오히려 장이 좋아져 다시 회수 중이다”며 “DLS는 만기가 길어 지금 당장 조기상환하지 않는 한 아직 손실로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아직 대규모 손실이 발생하진 않았지만, 달러화 유동성 부담이 커졌다는 것은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한다. 달러화 가치가 높아지면 단기자금을 조달해 증거금을 마련하는데 원화 강세 상황보다 많은 비용이 발생한다. 요동치는 주식시장은 예측하기 어렵고 조달 금리는 높아질 가능성이 있는데, 시장에서 달러화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까지 겹치면서 이같은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기 점점 더 어려운 상황에 몰리고 있다.

      사실 미래에셋의 실질적인 리스크는 투자 자산에서 찾을 수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미래에셋이 중국 안방보험으로부터 58억달러(약 7조원)에 사들인 미국 최고급 호텔 15곳이 대표적이다. 이미 인수금액에 10%에 해당하는 약 7000억원은 계약금으로 지급됐고, 올 상반기 내 잔금을 치러야 한다.

      약 7조원은 안방보험이 최초 사들인 장부가액과 유사한 수준이다. 코로나 사태 이전 활황이었던 미국 경기에 힘입어 호텔·여행업에 대한 꾸준한 수요가 예상됐기 때문에 해당 투자는 박현주 회장의 ‘과감하고 결단력 있는 투자’로 평가받기도 했다. 지금 상황은 정반대다. 미국 현지에서 투자자를 모집하고 있는 골드만삭스도 선순위 투자자를 구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호텔에 대한 공실률이 늘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계약금을 몰취당하더라도 내부적으로 해당 투자를 접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미래에셋은 ▲지난해 미국 LA 웨스트할리우드 호텔 ▲2018년 라스베가스 복합 리조트와 하와이 포시즌스호텔 등에 투자하기도 했는데, 자산가치 급락으로 인해 채무불이행에 대한 우려도 떨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미래에셋 유럽지역 투자의 대표적인 포트폴리오로 꼽히는 프랑스 ‘마중가 타워’는 연 8%의 수익률을 보장하는 조건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재판매(Sell-Down)를 완료하지 못했다. 한 때 글로벌IB들이 국내 투자자를 물색할 때 가장 먼저 찾는 조직으로 알려졌던 미래에셋 해외 투자 조직 구성원의 상당수는 자리를 옮긴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투자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해외 투자자산 가격 하락은 장기적인 자기자본이익률(ROE)의 하락 요소로 작용한다”며 “다만 가격 하락이 곧 자산 부실화를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에 손상차손 인식보단 처분익 발생의 지연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아시아나항공과 SK브로드밴드 통합법인 거래가 진행 중이다. 아시아나항공은 HDC와 산업은행이 재협상에 돌입하긴 했으나, 이미 발을 담구고 있는 미래에셋 입장에선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미래에셋은 SK브로드밴드 통합법인에도 약 4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는데, 펀드 구성이 여의치 않아 론(Loan)으로 딜 구조를 변경해 투자자를 모으고 있다.

      미래에셋은 “마중가타워는 현재 임대수수료를 받고 있고, 미국 부동산은 아직 딜이 끝나지 않았다. 셀다운이 안 된다고 해서 손실은 아니다”며 “처음 딜을 추진할 땐 모두 반응이 좋았지만 코로나 사태로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단기적 이슈로 보면 안 된다”고 해명했다.

      이와 관련해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셀다운을 완료하지 못하면 익스포져가 차있는 상태가 유지되기 때문에 증권사 마다 비율은 상이하지만 투자 조직의 손실로 인식하기도 한다”며 “이는 단순히 재판매 수수료를 올릴 수 없다는 의미보단 증권사의 투자가용현금(자산)이 묶여 있는 것을 나타내기 때문에 새로운 투자를 못하고 성장 동력을 마련할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 여파로 싱가포르 그랩, 중국 디디추싱, 인도 올라 등 미래에셋이 투자한 공유경제 기업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다만 회사는 지난해 투자한 바이오엔텍(BioNTech)은 약 1년만에 약 270억원을 회수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 미래에셋과 더불어 공격적으로 부동산 투자에 집중했던 메리츠에 대한 투자자들의 시각도 냉정하다. 지금 당장 수익성에 영향을 미칠만한 이슈는 드러나지 않았으나, 메리츠를 지탱해온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과 항공기 금융 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점이 부담이다. 자기자본 대비 우발채무 비율, 자본대비 고위험 익스포져 비율 등이 대형사 평균을 크게 웃돈다.

      메리츠 관계자는 "회사의 PF가 많지만 과거 레코드를 살펴보면 부실이 있거나 우발채무가 현실화 된 경우가 없었다”며 “외부에선 메리츠가 PF관련 총량이 많기 때문에 어려울 것이라 생각하는데, 셀다운(재판매)를 통해 자금화 시킨 부분이 많다"고 해명했다.

      당장 부실이 없다고 마음을 놓을만한 상황은 아니라는 분석도 많다. 글로벌 경기침체, 좁게는 국내 실물 경기 하락과 맞물려 과거 국내외 부동산PF와 오피스 빌딩에 공격적인 투자를 벌여온 증권사들을 위협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오피스 빌딩의 경우 우량한 장기 임차인 확보가 쉽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과거 투자자산을 롤오버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투자자를 구하는데 상당히 애를 먹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증권사가 부동산PF 채권을 바탕으로 발행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과 자산유동화전자단기사채(ABSTB)는 부동산 시장의 위축으로 인해 투자자 수요가 급감했다. PF-ABCP의 경우엔 증권사들이 매입약정과 신용보강을 동시에 적용하는게 일반적이기 때문에 최근 기관투자자 수요가 급감하면서 이에 대한 부담이 상당히 높아졌다는 평가다. 정부의 자금지원 대책 직전까지 증권사 자체 자금 조달 창구가 꽉 막혀있던터라 PF 규모가 큰 증권사들을 중심으로 위기감은 빠른 속도로 확산했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이달 만기가 도래하는 증권사 PF-ABCP와 ABSTB의 규모는 약 6조4000억원에 달한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부동산 PF 대출은 무조건 셀다운을 해야 하는데, 지금 업계 상황이 확실히 얼어붙어 메리츠 등 PF 비중이 높은 증권사들의 부담이 이전보다는 커진 상황이라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라며 "셀다운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싼 값에 넘겨야 하는 상황을 맞을 수 있기 때문에 업계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