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 회장의 천운?...미래에셋 美호텔 인수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입력 2020.04.29 07:00|수정 2020.05.04 09:53
    매매계약 체결 전후 호텔 소유권 분쟁
    미래에셋 이사회, 분쟁 알고도 만장일치 찬성
    미국 럭셔리 호텔업 매력 그 사이 격감
    "박 회장 뷰 빗나갔지만...운 좋아 손실 피해"
    • 국내 최대 규모의 해외 대체투자로 손꼽히던 미래에셋금융그룹의 '스트레티직 호텔 앤 리조트' 인수 거래가 사실상 무산됐다. 금융권에서는 대체로 코로나19 창궐이라는 전무후무한 악재 속에 고위험 자산 인수를 피할 수 있게 된 미래에셋그룹을 두고 '운이 좋았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다만 이번 이슈를 두고 ▲해외 대체자산 중심 대규모 투자 ▲오너기업 특유의 하향식 의사결정 구조 등 미래에셋그룹의 강점이자 단점으로 지목받던 부분에 대한 점검은 필요해 보인다는 지적이다.

      미래에셋의 이번 럭셔리 호텔 인수 거래는 초장부터 잡음이 많았다. 15곳의 호텔 자산 중 6곳에 대해 유령회사가 소유권을 가로채 간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자산 실사(듀딜리전스)가 제대로 됐는지에 대한 의문이 당연히 제기됐다.

      그룹 내 가장 많은 자금 조달 부담을 안고 있던 미래에셋대우 이사회 역시 이 같은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 미래에셋대우 이사회는 지난해 8월 27일과 9월 6일 두 차례 이사회를 열고 사내이사 3명, 사외이사 4명 전원 만장일치로 호텔 인수 건을 승인했다.

      유령회사가 권리증서를 위조해 소유권을 취득한 것이기 때문에, 안방보험이 금방 소유권을 되찾을 수 있으리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사회의 판단엔 미래에셋금융그룹의 '그룹 딜'이라는 점도 작용했을 거란 게 금융권 관계자들의 평가다. 박현주 미래에셋금융 회장이 럭셔리 호텔업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투자를 잇따라 집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가장 자기자본 규모가 큰 미래에셋대우가 나 홀로 불협화음을 낼 순 없었을 거란 말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미래에셋대우 관계자들을 만나보면 증권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황건호 이사나 조성일 이사가 깐깐하고 예리해 무섭다고들 말하지만, 막상 이들은 이사회에서 반대표를 던져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물론 당시 미래에셋의 럭셔리 호텔 체인 인수 시도는 근거가 충분했다.

    • 미국 호텔업은 최근 10년간 큰 폭으로 성장했다. 2010년부터 2015년까지 가용객실당 매출(RevPAR) 성장률이 연평균 7%를 웃돌았다. 최근 10년간 매년 연평균 3% 이상씩 성장한 관광업과 함께 호텔업도 전성기를 구가했다.이 중에서도 럭셔리 호텔업은 일반 호텔 대비 프리미엄을 꾸준히 유지했다. 2008년 등 전 세계적 경기 침체기때조차도 객실 예약률은 항상 일반 호텔 대비 8~10%포인트이상 높았다.

      이번 매매의 대상이었던 '스트레티직 호텔 앤 리조트'은 2015년까지 뉴욕 증시에 상장된 상장 리츠(REIT's;부동산투자회사)였다. 2011년 860만달러(약 105억원)이던 영업이익이 2014년 1억1779만달러(약 1440억원)까지 급증했다. 시가총액 40억달러(약 4조9000억원)였던 이 리츠를 2015년 블랙스톤그룹이 60억달러(약 7조3400억원)에 매입해 상장폐지 시킨 건 이런 성장세 때문이었다.

      블랙스톤그룹은 2016년 안방보험그룹에 '스트레티직 호텔 앤 리조트'를 매각했다. 당초 16개 호텔 전부를 65억달러에 매각하기로 했지만, 미국 해군기지에 인접한 호텔 델 콜로라도에 대해 미국 정부의 매각 허가가 나오지 않았다. 안방보험은 이를 제외한 15곳의 호텔을 55억달러에 인수했다. 이번에 미래에셋이 인수키로 한 것도 이 15개 호텔이다.

      상장 폐지 후 스트레티직 호텔 앤 리조트의 실적은 외부로 발표되지 않고 있다. 다만 그 사이 RevPAR가 꾸준히 성장했고, 특히 미국 럭셔리 호텔 평균 객실 예약률이 꾸준히 80%선을 오갔기 때문에 기업가치가 크게 줄었다고 보긴 어렵다는 평가가 많다.

    • 미래에셋이 제시한 58억달러(약 7조원)가 아주 무리한 가격은 아니라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 같은 배경 때문이다. 안방보험이 인수한 가격에 3년간의 비용을 정도를 얹어준 선이었던 까닭이다.

      이 같은 변수는 미래에셋 각 계열사의 이사회에서도 논의됐던 사항이다. 문제는 코로나19로 인한 경제활동 중지였다.

      호텔업은 기본적으로 고정비가 많이 들어가는 산업이고, 일정 수준 이상의 객실 예약을 유지하지 않으면 천문학적인 적자가 쌓일 수밖에 없다. 당장 경제활동이 언제 재개될지 알 수 없는데다, 이번 대확산이 진정되더라도 올 겨울 재확산 가능성이 예고된 상황이다.

      안방보험이 미래에셋에 계약 이행을 촉구하며 소송전에 나선 것도 지금 다시 매각에 나선다면 인수자가 없거나, 훨씬 싼 가격에 울며 겨자먹기로 넘겨야 할 거라는 절박함이 작용했을 것으로 풀이된다.

      미래에셋 내부 분위기도 4월을 기점으로 다소 바뀌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코로나19가 진정되더라도 관광ㆍ여행ㆍ호텔업이 회복되려면 상당한 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럭셔리 호텔업에 애정을 보이던 박현주 회장의 의중도 다소 분위기가 바뀌었다는 후문이다. 금융권에서는 미래에셋이 안방보험의 소송 전부터 이미 계약금을 환불받기 위한 소송전을 준비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추정도 있다.

      일각에서는 미래에셋의 '운'을 지적하기도 한다. 만약 처음 예정대로 지난해 거래가 모두 완료됐다면 올해 불거진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투자 손실을 오롯이 홀로 감당했어야 했기 때문이다. 7조원에 달하는 인수 금액 중 미래에셋그룹에서 수익자로서 투자키로 한 금액만 2조4000억원에 달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미래에셋은 안방보험이 소유권 분쟁에 휘말린 덕분에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게 된 것"이라며 "결과론적이긴 하지만 호텔업 전망을 좋게 본 박현주 회장의 뷰가 결국 엇나간 것인만큼, 오너 중심 의사결정 구조에 대한 미래에셋그룹 전체의 고민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