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저유가'에 사업구조 한계 드러나는 정유사
입력 2020.04.29 07:00|수정 2020.05.01 08:19
    국제유가, 배럴당 10~20달러 고착화 분위기
    신용평가사 "정유업, 근본적 포트폴리오 위기"
    정유·비정유 구분으론 '코로나 이후' 대응 난관
    에쓰오일·현대오일뱅크 수익 회복 '먹구름'
    • 국제유가가 ‘역사적 저점’에 머무르자 정유업계를 바라보는 신용평가업계의 시선이 달라지고 있다. 지금까지는 석유를 기반으로 한 탄탄한 사업 구조에 높은 점수를 매겼지만, 이제는 단기 신용등급 전망을 넘어서 근본적인 포트폴리오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코로나 이후 글로벌 대체에너지 비중 변화가 예상되며 현재의 사업 구조로는 수익성 회복이 더딜 수 있다는 점이 우려 요소로 지목된다.

      23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6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배럴당 16.5달러에 거래를 마감했다. 이틀 전 장중 70% 가까운 하락세를 겪으며 배럴당 10달러 초반선에 머물렀던 가격에 비하면 일부 상승세가 있으나, 코로나 사태 이후 배럴당 10~20달러 선에서 고착화된 거래가가 여전히 유의미한 반등을 보이지 못하며 예상보다 장기화할 조짐이다.

      지난달까지만 하더라도 정유사들의 단기 실적에 대한 우려를 표하던 신용평가사들은 유가가 폭락한 이달부터 정유사들의 중장기 사업포트폴리오에 대한 평가까지 분석의 폭을 확장하고 있다. 원유를 정제해 휘발유, 항공유 등을 생산하는 ‘정유 부문’과 추가적인 가공을 통해 석유화학제품 등을 생산하는 ‘비정유 부문’이라는 양대 축은 오랜 기간 정유사들을 지탱한 주요 포트폴리오였다. 하지만 코로나를 계기로 대체에너지의 변화 추이가 부각되며, 양 부문 모두 사업 비전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요 전망이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지난 2004년 전체 에너지 수요 중 37%를 차지하던 석유 수요는 올해 31%로 축소될 것으로 분석된다. 문제는 전 세계 석유 소비의 15%를 차지하는 ‘우량 소비국’ 중국을 중심으로 한 석유 의존도 감소가 글로벌 수요 축소를 더 부추길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 중국 정부가 천연가스 위주의 친환경 에너지 정책에 시동을 걸던 가운데, 코로나로 급감한 전통적 원유 수요는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 여기엔 글로벌 정제설비의 증설도 큰 영향을 미쳤다. 중국의 ‘자급자족’식 정유산업 육성정책은 지난 2019년에만 2.0mb/d 글로벌 정제설비 순증설 규모를 증가시키며 지난 2015년부터 유지해오던 0.5mb/d 내외의 선을 훌쩍 뛰어넘게 했다. 코로나 사태 속 공급 과잉을 촉발시킨 원인이 된 셈인데, 이는 재생에너지 대체 추세에서 정유사들의 현금 창출력을 막아 사업 다각화의 선택지를 줄였다는 평가다.

      한국신용평가 관계자는 “석유 연료의 가치 저하와 재생 에너지 대체의 문제는 사실 그간 시장에서 다소 멀게 느껴왔던 내용이지만,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최신화 된 지표를을 새롭게 살펴야 할 시점이다”며 “6%대에 접어든 중국 경제성장률 저하에 따른 원유 가치 감소, 코로나 이후 대체에너지 성장세는 정유사의 단기 신용등급을 넘어 중장기적 재무지표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했다.

      지난 2015년 이후 정유사들이 기대를 걸며 투자를 집중했던 비정유 부문 역시 수요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통상 비정유 부문은 유가가 하락하면 석유화학제품의 원재료 가격이 떨어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반사 이익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주력 제품군인 PX와 벤젠 모두 앞선 미중 무역분쟁과 중국 업체의 자급률 증가로 지난해 4월부터 스프레드가가 꺾이기 시작했고, 코로나 사태가 전방산업 자체를 위축했다. 당초 2분기에 V자 반등이 있을 것이라 예상됐던 일부 전망들은 이달 들어 “불확실성이 커져 회복 시점을 가늠하기 어렵다”는 내용으로 돌아섰다.

    • 업체별로는 에쓰오일의 위기 상황이 공통적으로 거론됐다. 한국기업평가와 한국신용평가는 에쓰오일의 순차입금 대비 EBITDA(상각전영업익) 상승 전망을 내놓으며 “재무부담이 확대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지난 2018년 약 4조8000억원의 RUC/ODC 프로젝트 관련 투자자금 집행이 집행된 점이 원인으로 지적됐다. 현대오일뱅크(HPC 프로젝트, 2조 7000억원) 역시 투자 부담이 상당할 것으로 내다봤는데, 오는 2021년 말 순차입금/EBITDA이 4배를 상회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기업평가 관계자는 “양사의 투자 특징은 비정유 부문의 ‘고도화 설비’에 큰 투자자금을 소모한다는 것인데, 투자계획을 수립하던 시기에는 석유화학으로의 확장이 유의미한 전략이 될 수 있었지만 코로나 사태로 인해 얼마나 수익으로 환원될 수 있을지 가늠하기 어렵게 됐다"며 “정유사들이 한해 결실을 맺어야 하는 3분기까지 실질적인 지표 회복이 나타나지 못한다면 정제마진을 바탕으로 한 정유, 추가적인 수익을 기대하던 석유화학이라는 그간의 포트폴리오가 향후 유의미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