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늦춰주면 안될까요”…‘캐피탈콜’이 두려운 PEF 투자기관들
입력 2020.05.01 07:00|수정 2020.05.06 10:14
    여전채도 못찍는데…대체투자 여력 없는 캐피탈社
    소상공인·지역기업 대출에 자금줄 마른 지방銀
    프로젝트 출자는 사실상 휴업, 블라인드 출자도 부담
    연기금 출자는 줄줄이 계획…LP 매칭 쉽지 않을 듯
    • 사모펀드(PEF)의 투자 대기자금은 유례 없이 커졌지만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은 여전히 냉기가 감돈다. 코로나 여파로 기업의 가치평가(밸류에이션)는 더 복잡해졌고, 대형·중소형 PE를 가릴 것 없이 투자보단 기존 포트폴리오 관리가 가장 중요한 현안이 됐다.

      사실 투자 집행 시기를 다소 미룰 여력이 되는 운용사(GP)들보다 사정이 급박한 것은 출자기관(LP)들이다. PEF 출자 기관들은 보통 운용사가 출자요청(캐피탈콜; Capital Call)을 하면 약정한 규모의 자금을 집행하는데, 기관들의 자금사정이 여의치 않다보니 운용사를 상대로 ‘투자를 좀 미뤄달라’는 요청을 조심스레 할 정도다. 투자처와 시기를 정해놓지 않은 블라인드펀드를 운용하는 GP보다 개별 건에 투자하는 프로젝트펀드의 자금 모집은 훨씬 더 어렵다.

      우선 PEF의 주요 출자기관 가운데 카드·캐피탈사들이 코로나 사태의 직격탄을 맞았다. 상대적으로 저신용자가 주요 고객인 캐피탈사들의 경우 코로나 사태에 따른 ‘연체율’ 증가와 이에 따른 수익성 저하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정부가 소상공인 지원 대책을 내놓으면서 당장 급한불은 껐다고 하지만 장기적으로 수익 창출력이 약화하는 것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자금조달이다. 카드·캐피탈사들은 여신전문금융회사채(여전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는데, 코로나 사태 이후 기관투자자들의 여전채 수요가 급감했다. 카드채, 캐피탈채 등 여전채는 소매·금융 업종과 고객들의 경제상황 등이 전체적으로 반영된다. 투자 수요가 급격하기 줄어들면서 기준금리는 하락했는데 시장금리보다 높은 금리로 발행에 나서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지난달 3년물을 발행한 신한카드는 시중금리보다 30bp 높은 금리를 얹어 채권 발행에 나섰다. 정부가 채권안정펀드(채안펀드)를 통해 여전채 매입에 나서고 있지만 실질적인 효과가 나타나기까진 시일이 필요하다는 평가다.

      자금줄은 말라가는데 조달금리까지 높아지면서 대체투자 분야까지 출자 할 여력이 부족해졌다. 현재상태에서 캐피탈사들의 프로젝트펀드 출자는 사실상 ‘금기어’로 여겨지고 있다. 이미 출자약정을 해놓은 블라인드펀드는 GP들이 요청을 하면 언제든지 자금을 집행해야 한다는 점이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한다.

      국내 PEF 한 대표는 “1000억~2000억원 규모의 프로젝트펀드에 캐피탈사들이 주요 LP로 참여하는데 정부에서 확실하게 밀어주는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중에서도 아주 확실한 기업이 아니면 거의 투자를 하지 않는다”며 “대형 블라인드펀드를 보유한 일부 PEF를 제외하고는 운용사들이 사실상 개점 휴업상태로 봐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외국계 PEF 한 임원급 인사는 “최근 주요 고객인 캐피탈사에서 투자 집행을 하반기 이후로 미뤄줄 수 있냐는 요청을 받았다”며 “캐피탈콜을 통해 자금을 받을 수는 있지만 주요 고객사이기 떄문에 이러한 요청을 무시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고 했다.

      PEF의 또 다른 핵심 LP인 지방은행들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정부의 소상공인 및 지역기반 중소기업 대출 확대 방침으로 인해 자금소요가 많아졌다. 대출 금리는 낮추면서 충당금까지 쌓아야하는 상황에 처하면서 PE 출자에 대해선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다.

      PEF 업계 한 관계자는 “캐피탈사들이 처한 사정까지는 아니지만 정부의 정책에 맞춰 소상공인 대출을 늘릴수밖에 없는 지방은행 또한 출자여력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며 “은행들이 단순히 PEF 투자뿐 아니라 PF를 비롯한 부동산 시장에 대한 투자도 상당히 보수적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위 매칭 자금을 마련해 줄 LP들의 자금 사정은 점점 더 어려워 지고 있는 가운데 연기금·공제회 등 큰 손들의 출자사업은 올해 줄줄이 계획돼 있다. 국민연금은 올해 총 1조9500억원 규모의 블라인드펀드 위탁운용사 선정계획을 밝혔고, 한국성장금융 또한 올해 1조6000억원의 출자계획을 밝힌 바 있다. 연기금·공제회 등 큰 손들과 민간 기업 사이에 온도차가 발생하면서 올해 PEF 펀드레이징 과정에서 GP들이 매칭자금을 마련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