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는 불가항력? 천재지변?...M&A '계약 파기' 머리싸움 한창
입력 2020.05.04 07:00|수정 2020.05.06 10:14
    계약 후 종결 전 코로나 맞은 거래들 골머리
    코로나를 불가항력으로 볼 수 있는지 쟁점화
    아시아나항공 M&A에선 천재지변 여부도 변수
    사정변경 주장이나 불이행 책임 감축도 대안
    •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하며 M&A 거래에서의 인수자 혹은 각종 계약의 의무를 부담해야 하는 기업들의 부담이 커졌다. 자연히 계약 이행을 연기, 취소하거나 내용을 변경하려는 움직임이 늘어나고 있다.

      관건은 이번 코로나 사태를 어떻게 규정하느냐로 귀결된다. 코로나를 불가항력이나 천재지변으로 볼 수 있는지, 계약서에 코로나를 이와 유사한 사안으로 규정해 두었는지에 따라 거래 완결 여부가 갈릴 전망이다.

      코로나가 팬데믹으로 이어지기 전 거래가 마무리 된 경우는 계약 당사자 어느 쪽이든 문제를 제기하기 어렵다. 지금 시작하는 거래는 코로나를 이미 인지한 상태기 때문에 계약서에 코로나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않는다거나, 거래를 해제할 수 없다는 내용을 담으면 된다. 푸르덴셜생명 M&A에서도 매각자가 코로나를 이유로 금액을 깎거나 계약을 물릴 수 없다는 점을 처음부터 강조했다.

      하지만 미리 협상을 시작해서 계약을 체결했고 아직 잔금납입 등 거래가 종결되기 전인데 코로나 타격을 입은 경우는 사안이 복잡하다. 인수하려던 기업 가치가 하락하거나, 계약을 이행하는 것이 당사자 한 쪽에 불리해진다. 손해를 봤다고 느끼는 쪽에선 거래를 파기하거나 조건을 바꾸고 싶지만 확정된 계약은 손대기 쉽지 않다.

      한 쪽이 손해없이 계약을 물리려면 결국 코로나가 기존 계약조건을 이행하기 어려운 불가항력(Force Majeure)이나 재난에 해당한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계약서에도 그와 유사한 내용이 포함돼 있어야 한다.

      상법 등에선 불가항력 상황이 생기고, 그로 인해 손해가 발생했다는 점을 증명한 경우 배상 책임을 면해주기도 한다. 당사자가 손 쓸 수 없는 부분에 대해 계약 상 의무를 완화해 주는 사유인 셈이다.

      그러나 계약은 그 이행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법원은 불가항력의 범위를 좁게 본다. 대법원(2001다1386 판결)은 IMF 사태로 자재를 조달하지 못한 사례를 불가항력적 사정이나 책임을 면해줄 사유로 보지 않았다. 경제적 충격으로 계약을 이행하기 어려워질 수 있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로 대우조선해양 M&A가 무산된 후 불거진 이행보증금 반환 소송에선 기업의 부실 가능성도 쟁점이 됐다. 대법원은 당시 워크아웃 기업은 미처 예상하지 못한 우발채무가 발생하거나 자산가치가 과장된 것으로 드러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코로나 사태는 겪어보지 못한 위기 상황이란 점이 변수다.

      법무법인 세종에 따르면 불가항력은 계약서에 ‘천재지변, 전쟁, 폭동 기타 당사자가 통제 불가능한 책임 없는 사유’로 기재하는 경우가 많다. 코로나를 천재지변으로 볼 수 있느냐가 쟁점이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선 태풍, 홍수 등 ‘자연재난’과 화재, 붕괴, 감염병 확산 등 ‘사회재난’을 구분한다. 코로나 사태가 사회재난이라면 천재지변을 이유로 불가항력을 주장하기 어려울 수 있다.

      아시아나항공 M&A는 사안이 조금 다르다.

      당사자들은 중대하게 부정적인 영향(MAE)이 발생하면 계약을 해제할 수 있는데 ‘천재지변’은 MAE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기로 했다. 즉 코로나가 천재지변이라면 계약을 해제할 수 없지만, 사회재난이라면 계약금 몰취 등 부담 없이 발을 뺄 수 있는 가능성도 생긴다. 매각자 쪽에선 코로나를 MAE로 보기 어렵다는 분위기다.

      계약에 별 다른 규정이 없으면 ‘사정변경의 원칙’을 주장해야 한다. 거래를 추진하려던 이유나 제반 상황이 크게 달라져 계약을 이행하는 것이 어느 한 쪽에 일방적으로 불리하다는 것이다. 다만 당사자가 사정이 달라질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었던 경우엔 사정변경의 원칙을 주장할 수 없다. 예외적인 사례이기 때문에 주장이 받아들여지는 경우는 더 드물다.

      어느 경우든 계약을 물리려면 결국 법적 다툼을 벌여야 할 가능성이 크다. 이미 그런 사례들도 여럿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얼굴을 붉히기 전에 계약을 세련되게 깨는 것이 자문사의 역량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도 어렵다면 계약 해제와 유사한 효과를 내도록 부수 의무를 줄이는 방안도 거론된다.

      한 대형 법무법인 파트너 변호사는 “체결된 계약은 물리기 어렵기 때문에 의무 불이행 시 책임을 줄이거나 없애는 방안을 협의해볼 수 있을 것”이라며 “코로나 사태가 거의 전 영역에 영향을 미치다보니 계약서 전체를 보내주면서 모든 항목을 검토해달라는 기업들이 많다”고 말했다.

      한 지방법원 판사는 “거래의 종류나, 내용, 개별적인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불가항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경우도 꽤 많을 것”이라며 “계약 이행을 늦추거나, 금액을 조정하는 안을 협의해보고 그도 어렵다면 이행불능을 이유로 합의 해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