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 인수 여력·의지 여전히 유효할까
입력 2020.05.11 07:00|수정 2020.05.12 09:54
    주력 계열사 실적 부진 지속 가능성
    조선업 침체에 합병 효과 의문도 커져
    '넥스트 조선' 비조선 사업 확장 행보
    기업결합 심사 지연에 재평가 기회 맞아
    • 대우조선해양 인수합병(M&A)을 두고 현대중공업그룹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당초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면서 정부의 ‘조선업 구조조정’ 최대 수혜자로 불리며 특혜 논란까지 불거지기도 했다. 하지만 유가 급락과 코로나 확산 이후 시장 환경이 급변하면서 이제는 이 딜(Deal)이 그룹에 부담을 줄 수 있는 상황으로 바뀌었다는 평가다.

      현대중공업그룹의 대우조선해양 인수 거래는 조선통합법인인 한국조선해양에 산업은행이 보유한 대우조선해양의 지분(55.7%)이 현물 출자되고, 이어 한국조선해양이 1조2500억원의 유상증자를 통해 대우조선해양을 지원(유상증자, 1조5000억원)하는 구조다.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 인수 과정에서 쓰이는 자금은 조선합작법인의 주주배정 유상증자에 필요한 4000억원 정도다.

      다소 복잡한 인수 구조를 통해 채권단인 산업은행·수출입은행 모두를 만족시키는 동시에 현대중공업도 큰 출혈 없이 시장 가치 2조원이 넘는 대우조선해양 지분을 인수하게 됐다. 장기적으로 1조원 정도의 자금 지원이 필요하지만 모두 대우조선해양이 보유한 채무 상환을 위해 쓰이기 때문에 기업가치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런데 현대중공업그룹이 처한 상황이 이전과 크게 달라졌다. 유가 급락과 코로나 확산으로 조선·해양산업 불황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에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기 위한 실질적인 부담은 커질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현대중공업지주의 1분기 실적은 증권가 컨센서스를 하회했다. 연결기준 매출액은 5조716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1.9% 감소했고 4872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영업이익 1445억원) 대비 적자전환했다. 이는 영업손실 4000억원 내외를 점치던 시장 평가보다 크게 밑돌았는데 현대오일뱅크의 대규모 손실이 결정적이었다. 현대오일뱅크는 정제마진과 재고평가손실 악화로 인해 5632억원에 달하는 적자를 냈다.

      지난해 말 유입된 현대오일뱅크 지분 매각 대금(1조3000억원)으로 현금성자산이 늘어났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소진한 것으로 보인다. 연초 5000억원에 육박했던 단기차입금을 상환하기 위해서다. 2019년말 개별기준으로 현대중공업지주가 6개월 이내 상환해야 하는 차입금이 9200억원이고 1년 안에 상환해야 하는 차입금은 1조3000억원이 넘는다.

      차입금 자체 상환을 위해선 계열사들의 배당으로 올라오는 자금이 중요하다. 그런데 연간 2000억~3000억원에 달하는 지주 배당수익을 감당하는 현대오일뱅크의 실적 급감이 현실화하면서 대규모 유동성 확보를 장담하기 어려워졌다.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따른 규모의 경제 효과를 누릴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 등 현대중공업그룹 조선부문 3사의 중간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은 지난 1분기 연결기준 매출액 3조9466억원, 영업이익은 1217억원으로 시장 기대치를 뛰어넘는 실적을 보여주긴 했다. 하지만 이런 기세가 지속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의 1분기 수주 달성률은 5~6%대로 전년 동기 대비 반토막 났다. 척당 가격이 높은 LNG운반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의 수주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2분기부터의 발주량 감소는 현저히 나타날 수 있다. 증권가에선 조선업 불황이 내년 상반기까지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렇게 되면 계약서 상의 1조원 추가 지원(Credit Line)을 산업은행으로부터 받아야 할 수 있다. 대우조선해양 인수 부담 역시 장기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현대중공업은 대외적으로는 대우조선해양 인수 의사를 명확히 밝히고 있다. 하지만 시장에선 그룹 전반으로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이 부담이 생각보다 길어질 수 있다는 점을 들면서 유가 전쟁, 코로나 확산 이전보다는 인수 의지가 약해졌다고 보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이 ‘넥스트 조선’을 육성하기 위한 광폭 행보를 보이는 것도 이런 해석을 불러 일으킨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지난 2017년 기존 현대중공업을 조선‧해양‧엔진, 전기전자, 건설장비, 로봇 등 4개 회사로 분리하며 지주회사를 출범시켰다. 실제로 현대일렉트릭, 현대건설기계, 현대글로벌서비스 등 비조선 계열사들은 순항하고 있다.

      '차세대 먹거리'로 꼽히는 현대로보틱스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현대중공업지주는 지난 1일 로봇사업부문을 물적분할해 현대로보틱스를 출범했다. 당초 지주 내 ‘로봇사업부문’으로 존재하던 법인으로, 지난해 2466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로봇 시장의 성장세에 힘입어 지주사의 배당수익을 책임질 자회사로 꼽힌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장기적으로 노동집약적인 조선업은 중국 등과의 경쟁 심화로 사양 산업이 될 수밖에 없고 캐시카우 역할을 해온 정유업도 미래가 불투명하다”며 “투자 재원은 한정적인데 대우조선 인수 부담이 커진다면 비조선 사업 확장에도 일정 부분 타격이 있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

      투자은행(IB) 관계자는 “현대중공업 입장에선 대형 조선사 탄생에 따른 규모의 경제 효과를 통해 미래산업 육성을 위한 실탄 마련을 기대했을텐데 예상과 다른 전개로 흘러가고 있다”며 “대우조선 매각이 정부 주도 거래만 아니였다면 원점에서 재검토 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 합병에 대한 각국의 기업결합 심사도 지연되고 있다. 지난달부터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코로나로 인한 정보 수집 난항을 이유로 진행중인 심층 심사를 일시 중단한 상황이다. 일본과 싱가포르에서 독과점 우려로 인한 불승인 가능성이 대두되던 차에, 가장 비중 있는 심사로 여겨지는 EU 집행위원회의 심사가 7월까지 연기될 수도 있음이 결정된 것이다. 지난해 승인된 카자흐스탄을 제외하고는 모든 심사의 일정이 불투명해졌다.

      기업결합 심사는 계약상의 선결조건이기 때문에 대상 국가로부터 거부를 당한다 하더라도 현대중공업그룹이 책임져야 할 의무는 없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일단 “각 경쟁당국의 기준에 따라 모든 절차를 진행하고 있으며, 기업결합심사와 M&A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공식 입장을 밝히고 있다.

      기업결합 심사 난항으로 거래 재평가 기회를 맞게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 증권사 조선 담당 연구원은 "EU는 경쟁법이 엄격히 적용되고 독과점에 민감한 심사 기구인 만큼 현재까지는 통과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며 "물론 상대적으로 작은 금액으로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할 수 있다는 것은 점유율 측면에서 매력적이지만, 추가 자금이 얼마가 들어갈 지 알 수 없다는 점에서 기업결합 심사를 지켜보는 현대중공업그룹의 고민이 상당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