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평사 "해외 대체투자 세부자료 공개하라"...증권사는 '난색'
입력 2020.05.11 07:00|수정 2020.05.12 09:43
    '화수분'서 '뇌관'으로 변한 해외 대체투자
    신평사 "證이 양과 질의 자료 제공해야"
    증권사는 난색…"영업기밀이라 어려워"
    • 증권사들이 저금리에 수익률을 높이려 덩치를 키웠던 '해외 대체투자' 자산이 부실 가능성에 직면했다. 재판매(셀다운)가 잘 안 되고 있는 등 우발채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부 신용평가사가 해외 대체투자 관련 리스크 관리를 등급 평가에 반영하겠다고 밝히며, 크레딧 리스크의 뇌관으로 커지는 모양새다.

      일단은 '투명한 정보 공개 여부'가 화두가 되고 있다. 신평사는 증권사들이 그동안 공시와 IR 자료를 통해 대체투자 규모를 알려왔지만, 이것만으로는 리스크를 평가하기에 불충분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증권사들은 영업상 기밀인 만큼 공개는 어렵다는 반응이다.

      나이스신용평가(이하 나신평)은 최근 8개 증권사(미래에셋대우·삼성증권·한국투자증권·NH투자증권·KB증권·하나금융투자·신한금융투자·메리츠증권)의 해외 대체투자 관련 우발채무 차환 위험이 커지며 유동성 위험이 과다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 해외 대체투자 관련 위험요인을 파악하려면 투자자산 회수가능성과 관련한 상세한 정보가 필요하지만, 양과 질 측면에서 부족하다고 평가하며 자산의 회수 가능성에 대한 상세한 자료 확보를 통해 심층적 분석을 진행할 계획을 밝혔다.

      이를 위해선 증권사의 상세한 자료 제공이 필수적이라는 지적이다. 대체투자 자산은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에 정확한 리스크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나신평도 "정보 비대칭성이 심화할수록 시장에서는 이를 심각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 엑시트가 어려워질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증권사들이 최근 유동성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기업어음(CP)를 발행하고 있는 만큼 신평사의 요구를 완전히 무시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증권사들은 해외 대체투자 관련 정보 제공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입장이다. 영업기밀이 노출될 부담이 있기 때문이다. 증권사별로 어떻게 영업을 하고 있는지가 경쟁사에게 공개될 수 있어 자율 경쟁이 불가능해질 수 있다.

      한 시장관계자는 "워낙 영업기밀이라서 신평사 측에서 권고하더라도 증권사들은 개별 대체투자 종목에 대해 자세한 정보 제공을 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일부 해외 대체투자 건은 자산운용사와 함께 투자에 나선다. 특히 증권사들이 주로 많이 투자하고 있는 '부동산 펀드'는 운용사가 펀드를 설정하고 증권사가 자금을 지원해 다른 기관에 셀다운을 하는 형태다. 지난해 9월 금융사고에 휘말렸던 호주 부동산 펀드도 KB증권이 판매하고 JB자산운용이 설정한 펀드다. 이 경우 자산운용사와의 협업 관련 자료도 노출해야 할 부담이 있다.

      한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금융감독원에서 부동산 펀드들의 건전성을 한 번 점검해 기본적으로 정보가 있을 것"이라며 "자산운용사가 기밀유지를 지켜야 하는 부분은 '수익자 정보' 로 신평사가 요구하는 정보가 무엇인지가 관건이다"고 밝혔다.

      증권사에 대한 신용등급 평가 방법론에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꾸준히 있어왔다. 증권사들이 IB와 대체투자 등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장하는 데 반해 해당 자산의 리스크 요인 등을 평가에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서다.

      실제로 국내 증권사들의 해외 대체투자 자산 규모는 2년만에 2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나신평에 따르면 8개 증권사의 2017년 말 합산 자기자본의 해외 대체투자 자산규모는 15% 정도였지만 2019년 말 34% 규모까지 늘어났다. 저금리와 경쟁심화로 수익성이 저하되며 국내에서 해외로 눈을 돌린 탓이란 분석이다.

      최근 셀다운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며 미매각 물량이 재무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다. 증권사는 퀄리티가 높은 자산이라도 염가로 팔아야 할 상황이지만 인수자는 인수 이후 자산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우려하는 실정이다. 이 경우 증권사 우발채무의 현실화 가능성도 높아진다. 특히 증권사들이 나선 대체투자는 후순위나 지분투자가 대다수라 자산가치 하락에 취약하다고 알려져 있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신평사 측에서 아직 구체적인 요청이 없어서 입장을 밝히긴 애매한 상황"이라며 "기밀유지 조항과 자산운용사와의 협업관계도 문제가 될 수는 있지만 요청하는 자료의 경중에 따라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