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업계 역대급 어닝쇼크에도 비껴간 공적기금
입력 2020.05.13 07:00|수정 2020.05.14 09:50
    40조원 '기간산업안정기금' 이달 말 가동
    대상 업종서 ‘정유’ 최종 배제…'기준 미달'
    고용·배당 문제탓 업계도 요청 '소극적'
    업황 추락…"다른 지원안 적극 검토해야"
    • 정부가 위기에 처한 각 산업군에 대한 지원안을 구체화하면서 초유의 ‘어닝쇼크’를 기록하고 있는 정유사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1분기 실적이 속속 발표되며 정부 기금의 필요성에 대한 요구는 높아졌지만, 정부의 ‘기간산업’ 기준에는 부합하지 못해 요청의 여지가 줄었다. 타 산업군 대비 나은 유동성이 부각돼 현실적으로 지원을 기대하긴 어렵다는 전망도 나온다.

      40조원 규모의 ‘기간산업안정기금’ 가동을 위한 시행령(한국산업은행법 시행령안)이 국무회의에서 통과했다. 지원 산업군은 당초 논의되던 7개(항공·해운·자동차·조선·기계·전력·통신)에서 항공과 해운업으로 축소 지정됐으며 지원 방식은 대출, 사채인수 출자 등을 포함한 다양한 방안이 담겼다. 금융위원회와 관계 부처는 지난 8일 입법예고를 마쳤으며, 세부 사안 조율을 거쳐 이달 말 본격적인 기금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앞서 정부가 지난달 22일 기간산업안정기금 조성 계획을 발표하면서부터 ‘지원 산업군’은 논란의 대상이었다. 당초 분류의 뼈대는 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의안 발의 자료 속 7개 산업군이었는데, 시행령의 근간 법률(한국산업은행법 개정안, 5월 1일 제정)이 국회 본회의에 통과될 때까지도 변경 논의는 계속 이어졌다. 실적 타격이 예상됐던 ‘정유업’은 금융업, 가스업 등을 포함해 주요한 추가 지원 대상으로 거론됐다.

      입법 과정에서 ‘기간산업’에 대한 정의가 새로 확립되며 정유업은 결국 최종 논의에서 배제됐다. 자금은 한정돼있는데 지원을 요구하는 업계의 목소리가 빗발치자, 금융당국은 입법안 내에서 ‘방위사업법’에 따른 산업통상자원부 지정 업종, ‘외국인투자 촉진법’에 따른 외국인 투자 제한 업종,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따른 필수공익사업 업종 등 5개 법률을 내세워 ‘기간산업 업종’을 2개(항공·해운)로 예상보다 좁게 한정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정유업을 지원 업종에 포함시키자는 논의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면서도 “입법 과정에서 현실적으로 기간산업에 모든 업종을 담을 수 없었던 탓에, ‘자금지원의 필요성이 인정되는 업종의 경우 추후 추가할 수 있다’는 부수 항목을 포함시켜 업종을 제한했다”고 전했다. 이 과정에서 적용 법률 선정과 지원의 긴급성 등을 고려하다 보니, 정유업은 당국 입장에서 상대적으로 후순위 지원대상으로 분류됐다.

    • 정유업계 역시 협회 차원의 통일된 목소리를 전달하지 못했다. 당초 국내 정유 4사(SK이노베이션·현대오일벵크·에쓰오일·GS칼텍스)는 지난달 있었던 제5차 비상경제대책회의 이전부터 어떤 정부 지원을 요구할지 논의를 지속하고 있었다. 하지만 설치되는 기금의 운용 원칙이 ‘고용안정을 위한 필요 조건 부과’와 ‘이익 배당 금지’를 명시하며 상황은 달라졌다. 고용 창출 효과가 적고 배당성향이 30~50%로 시장에서 ‘고배당주’로 분류돼왔던 정유사들은 결국 유류세 납기 연장 등 간접 지원책 요구만이 가능했다.

      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국내 정유4사를 모두 합쳐도 유발되는 고용 효과는 1만명 정도에 불과하고, 갑자기 배당 정책을 정반대로 바꿔버릴 수도 없는 상황”이라며 “일부 업체들이 기금 지원 요구를 위해 개별 검토를 지속하는 걸로 알지만, 업종 차원에서의 논의는 지난달 이후로 멈췄다”고 전했다.

      다만 시장에서는 차후 업황을 고려할 때 어떤 형태로든 추가적인 지원책 수혜가 필요하다는 분석도 대두된다. 현재 국내 정유4사의 1분기 합산 영업손실은 약 4조4000원에 달한다. 유가 급락에 따른 재고평가손실과 정제마진 악화에 SK이노베이션과 에쓰오일이 각각 1조7752억원과 1조73억원의 적자를 냈다. GS칼텍스는 창사 이래 최대 적자(1조316억)을 기록하기도 했다. 지난해 정유사들의 연간 영업이익(3조1000억원)과 비교해보면 타격이 상당하다. 문제는 당분간 원유 수요 감소가 계속될 전망이라 유가 반등이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라는 점이다.

      한 대형 증권사 연구원은 ”2분기까지 실적 영향이 있을 가능성이 큰데, 이러면 여름에 한 해 먹거리를 벌어들이던 정유사들의 연간 사업 사이클에 지장이 있다”며 “기간산업안정기금 이외에 정부의 회사채 인수 프로그램과 은행들이 동참하기로 한 대출 연장 등 지원책을 검토해가며 경영 전략을 다시 수립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